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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인과법

(실수로) 죽인 구렁이가 아들로 태어난 이야기 (묘허 큰스님 음성법문)

작성자圓通寶殿|작성시간20.04.24|조회수415 목록 댓글 9


묘허 큰스님 유튜브 음성법문

https://www.youtube.com/watch?v=GWzwFDa6d2I


옮긴이의 말


우리나라 현대의 대선지식인 전강(田崗)  영신(永信) 큰스님께서 젊었을 때 직접 경험한 것을 법문하신 것을 묘허 큰스님이 들으시고 다시 법문한 내용입니다. 


전강 큰스님께서는 선의 깨달음을 얻어 선지(禪旨)에 아주 밝은 스님으로서 지혜제일로 통했으며 인천 용화선원 송담 큰스님의 은사스님이시고 송담 스님께서는 전강 큰스님 입적후에도 전강스님을 용화선원 조실로 모시고 송담스님 당신은  용화선원장으로 계시며 스승께 극진한 예우를 다 하고 계십니다.


전강 큰스님께서 젊어서 해인사에서 열심히 정진하고 계실 때 어느 중년 보살님이 젊은이를 데리고 와서 뵙기를 청한다길래 나가보니 자신의 아들인데 출가시키려고하니 꼭 받아달라고하였습니다.  


당시 전강 스님께서는 한참 정진중이시어서 상좌를 받을 상황이 안되어서  인근 일화 큰스님께 소개해서 일화 큰스님 밑에 출가시켜 그 젊은이는 행자생활을 하게되었는데 행자생활도 잘하고  잘 지내다가  몇 달 안되어서 그만 병이 들어서 사미승도 되기 전에 유명을 달리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이 보살님과 아들에 얽인 인과와 윤회법이 있는데 전강 큰스님께서 들으신 바에 의하면....


이 보살님은 닭을 몇 마리 기르면서 살았는데 알을 매일 쑥쑥 잘 낳던 닭의 계란이 어느 날부터 없어져서 어찌된 일인지 살펴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계란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 놀라서 구석 어디에 숨었더니 구렁이도 인기척을 느끼고  많이 놀라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지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보살님이 숨었던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보살님도 많이 놀라고 구렁이가 해치려고 다가오는지라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던 큰 돌로 구렁이의 머리를 쳐서 죽게 만들었는데 죽이고 난 후에는 마을 사람들의 이목도 있고해서  집 안에 있던 살구나무 밑에 잘 묻어주었습니다.


한 달쯤 지난 후 보살님이 꿈을 꾸는데 살구나무 밑에 묻었던 그 구렁이가 나타서서 안 방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을 피해서 이 방으로 가면 이 방으로 따라오고 대청으로 가면 대청으로 따라오고해서 피해다니다가 결국 안방에서 보살님 몸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그 이후로 태기가 있어 남자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염려와 달리 아이가 건강하고 말도 잘듣고 문제없이 잘 크고 있었는데 하루는 또 꿈을 꾸는데 웬 노인이 살구나무 근처에서 오더니 "이 집에 재앙이 있을 것을 막아주려고 왔는데 싫으면 안 알려주고.."하더니 다시 살구나무 있던 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또 어느 화주승이 탁발을 와서 공양물을 드리고 그 구렁이와 아이와 관련된 꿈과 여러 이야기를 했더니 그 스님 말씀하시길 비록 그 구렁이를 어쩔 수 없이 죽이고 잘 묻어줬다고 하더라도 그 구렁이 입장에서는 큰 한을 품게되는 일이고 그 한을 풀기위해 아들로 온 것이니 비록 지금은 말 잘듣고 건강하게 잘 자란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원한갚음이 있을지니 그 아들을 부처님께 출가시키면 좋을 것이고 그것도 덕이 높은 스님밑으로 출가시켜 수행시키면 그 안좋은 인과가 소멸되어 좋은 일이 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 스님 말씀을 듣고 해인사 계신 젊은 전강스님이 공부를 아주 열심히 잘 하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전강 스님 밑으로 출가시키려려고 아이를 데려왔다는 것이고 결국 일화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시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처님 공부하면서 그 인과의 업연을 풀고 명을 마쳤으니 다음 생에는 그 행자가 좋은 몸을 받고 그 모자간도 나쁘지 않은 인연으로 만날 것이라 전강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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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 태어난 부관  (일타 큰스님 법문)


1971년 여름, 인도불교대학의 초청을 받은 나는 영어회화를 익히고자 잠시 대구의 한 영어학원에 다녔습니다. 주변에 알리지않고 몰래 다닌 것이었건만, 학원 수강생중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어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대구에 나온 김에 법문을 해달라며 여기저기서 마구 졸라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연한 계기로 2군 사령부 장교들 모임에 가서 저녁마다 한시간씩 일주일동안 법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법문을 듣는 사람들 중 2군사령관의 불심은 특히 깊었습니다. 그는 2군사령부 안에 무열사(武烈寺)라는 T자형 군법당을 짓고 종각도 세우고 탱화도 봉안하는 등 많은 불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법회를 마치는 날 사령관의 집안에는 매우 불행한 사건이 불어닥쳤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사령관의 외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감포 앞바다로 해수욕을 갔다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2군사령부 전체는 초상집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사령관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방 안에만 들어앉아 있었으며, 거의 실신상태에 빠진 부인은 엎친데 덮친 격으로 2층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이윽고 팔공산 동화사에서 아들의 49재(齋)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스님들의 독경과 염불을 들으며 아들의 명복을 빌던 사령관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위패를 모신 영단(靈壇)을 향해 벽력같이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이 놈의 새끼! 모가지를 비틀어 죽여도 시원찮은 놈! 이놈- !..."

감히 보통 사람으로는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을 있는대로 퍼붓고는 재(齋)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법당을 뛰쳐나가 버렸습니다. 독경하던 스님과 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없는 돌발적인 소동에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습니다.

그날 밤 1시경, 2군사령부 헌병대장이 나를 데리러 왔습니다. 낮에 있었던 소동도 소동이지만 통행금지 시간이 넘은 야밤중에 헌병대장을 시켜 나를 데려오라고 한 데에는 필시 까닭이 있으리라 짐작하며 사령관 공관으로 갔습니다. 가는 도중, 헌병대장은 사령관의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소상히 일러주었습니다.

"이 번에 죽은 아드님은 저희 사령관님의 금쪽같은 외동아들입니다. 친구 둘과 감포 해수욕장에 갔다가, 사람들이 많은 해수욕장을 피하여 주위의 높은 바위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바위에서 다이빙을 하였는데, 친구 둘은 금방 물 위로 나왔으나 사령관의 아들만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싶어 황급히 수색해보니 그 아들은 뾰족한 바윗돌에 명치를 찔려 숨져있더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말 잘듣고 착하던 외아들이 그렇게 죽었으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겠습니까?"

잠시 후 나는 사령관이 기거하는 내실로 안내되었습니다. 방 안에 촛불을 밝혀놓고 따로이 자리 하나를 마련하여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령관은 내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제가 지금까지 불교를 믿기는 믿었어도 헛껍데기만을 믿고 있었습니다. 오늘부터는 불교를 진짜로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하는 나에게 자리를 권한 사령관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 한 편을 들려주었습니다.

"6.25사변 당시 저는 30여단장이었습니다. 늘 자신감에 넘쳐 흘렀던 저는 백두산 꼭대기에 제일 먼저 태극기를 꽂기위해 선두에 서서 부대원들을 지휘하며 북진에 북진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전문(電文)이 날아왔습니다. '지휘관 회의가 있으니 급히 경무대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경무대를 향해 출발하면서, 평소 아끼고 신임하던 부관에게 거듭거듭 당부하였습니다.

'지금 들리는 바 소문에 의하면 중공군 수십 만 명이 내려오고 있다고한다.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하면 안된다. 내일 내가 시간 내에 돌아오지 못하면 부관이 나 대신 백두산 꼭대기에 태극기를 꽂아라.'

그런데, 가는 날이 바로 장날이라더니, 그날 저녁 중공군 30만명이 몰려와서 산을 둘러"싸고 숨쉴 틈없이 박격포를 쏘아대는 바람에 우리 부대원들은 거의 대부분 몰살당하였습니다. 뒤늦게 급보를 받고 달려가보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급히 부관을 찾았습니다.

'부관은 어디에 있는가?'

얼마동안 찾다가 '어찌 그 와중에 부관인들 무사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한가닥 희망조차 포기한 채 허탈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당연히 죽었을 것으로 여겼던 부관이 쫓아 들어왔습니다.

"살아있었구나. 어떻게 너는 살아남을 수 있었느냐?"

"죄송합니다. 실은 이웃 온천에 있었습니다."

"온천? 누구와?"

"기생들과 함께..."

"너같은 놈은 군사재판에 회부할 감도 되지 못한다. 내 손에 죽어라."

어찌나 부아가 치미는지 그 자리에서 권총 세 발을 쏘았고, 부관은 피를 쏟으며 저의 책상앞에 고꾸라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21년 전의 일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 낮 아침의 위패를 놓은 시식상(施食床) 앞에 그 부관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였으므로 엉겁결에 일어나 고함을 치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보니, 바로 그날 죽은 부관이 이번에 죽은 아들로 태어난 것이 틀림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부관이 죽은 날과 아들이 태어난 날짜를 따져보아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 야밤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을 모셔오게 한 것입니다."

당시의 2군사령관이었던 육군 중장 박 은용 장군은 이렇게 이야기를 매듭지었습니다.

부관은 자기의 가슴에 구멍을 내어죽인 상관의 가장 사랑하는 외동아들로 태어났고, 가슴을 다쳐 죽음으로써 아버지의 가슴에 구멍을 낸 것입니다.

출처: 일타큰스님의 윤회와 인과응보이야기-시작도 끝도 없는 길(도서출판 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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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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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혜의 숲 | 작성시간 20.04.25 나무아미타불 ()()()
  • 작성자떠도리 | 작성시간 20.05.13 나무 아미타불나무 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 작성자무량복덕 | 작성시간 20.06.04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기쁨의근원 | 작성시간 20.07.10 감사합니다()()()
  • 작성자서예촌 | 작성시간 24.07.11 나무아미타불 _()_
    관세음보살 마하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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