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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명상음악

[스크랩] Buddha Spa Music -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 - 불교에서 가르치는 마음자세

작성자천수심|작성시간20.10.29|조회수96 목록 댓글 0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 - 불교에서 가르치는 마음자세

 

부처는 (만약 그를 대중적 의미에서의 종교의 창시자라 불러도 된다면) 종교의 창시자들 중에서 순수하고 소박하게, 사람이 아닌 다른 것이길 바라지 않은 유일한 스승이었다.
다른 스승들은 신神이거나, 사람 모양을 한 신의 화신이거나, 신에게서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이다. 부처는 다만 사람이었고, 무슨 신이나 외계의 권능으로부터 성령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깨달음과 이룸, 성취를 인간적인 노력과 지성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람은, 아니 오로지 사람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
바라고 노력한다면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든 사람이 제 스스로 지니고 있다.
우리는 부처를 "아주 뛰어난 이"(殊勝한 이)라 부를 수 있다.
그의 '사람됨'은 너무나 완벽해서 후대의 대중적 종파에서는 거의 '초인'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불교에 의하면 사람의 지위는 최상이다. 사람은 스스로가 주인이라서 그 사람의 운명을 심판할 윗 존재나 권능은 없다.
'자기가 자기자신의 피난처이다. 어찌 다른 누가 피난처일 수 있겠는가?'라고 부처는 말하였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기자신을 피난처로 삼아라', 그리고 다른 이에게서 피난처를 구하거나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말라고 훈계하였다.
[주1] 부처는 개개인이 스스로를 개발시키고, 자기 해방에 힘쓰라고 가르쳐 고취시켰다. 사람에겐 스스로 노력하고 지성을 닦아 모든 속박에서 해방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는 '그대의 일은 그대가 해야되느니. 여래[주2]는 다만 길을 가르쳐 줄 뿐'이라고 말했다.
만에 하나라도 부처가 '구원자'라 불려진다면 그것은 오로지 해방, 즉 열반涅槃의 길을 발견하여 보여주었다는 의미에서 그러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길"을 제 스스로 쫓아가야만 한다.


주1]
<역주> 여기서 '피난처'(refuge)라는 표현이 좀 어색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의미이다.
도참圖讖에서 말하는 승지勝地가 바로 그것이다.
《정감록鄭鑑錄》같은 술서에서 말하듯, 난세를 피하여 보신保身할 수 있는 곳이 '승지', 즉 피난처이다.
그러나 앞으로 여섯째 가름에서 자세히 보게 되겠지만, 부처의 가르침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는 피난처를 소박한 자신에게서 구할 따름이고, 그외에 덧붙여 종교적 의미로서
부처(佛)와 가르침(法)과 동아리(僧)에서 피난처를 구할 따름이다.

[주2]
여래如來(Tathagata)의 문자적 의미는 '진리에 도달한 이', 즉 '진리를 발견한 이'이다.
이것은 부처가 자신을 가리킬 때나 일반적으로 부처를 가리킬 때 쓰이는 용어이다.







부처가 제자들에게 자유를 허용한 것은 바로 이, 개인이 책임져야 한
다는 원칙에서다.

《마하빠리닙바나-ahaparinibbana-sutta》(D.16;{遊行經},長阿含2)에서 부처는 결코 승가(승려들의 동아리)[주3]를 다스리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승가가 자기에게 의존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기 가르침에는 비밀스런 교리가 없다고 말하며, 아무것도 '스승의 움켜쥔 주먹'(acariya-mutthi;師拳)속에 감추지 않았고, 또는 다른 말로 '소매속에' 들어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하였다.

[주3] 승가僧家(Sangha)의 뜻은 '공동체'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이 용어는 승려 조직체인 '불교 승려들의 동아리'를 가리킨다.

부처(Buddha;佛), 가르침(Dhamma;法), 동아리(승가;僧)는 "세 의지처"(Tisarana;三歸依處)나 "세 보물"(삼보三寶;빨.Tiratana,산.Triratna)로 알려져 있다.

<역주> 대승적 의미에서는 승가가 출가승려들만이 아니라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는 사람 모두의 동아리를 뜻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즉 비구比丘(bhikkhu;남자 승려), 비구니比丘尼(bhikkhuni;여자 승려), 우바새偶婆塞(upasaka;남자 평신도), 우바이偶婆夷(upasika;여자 평신도)가 하나된 동아리(和合衆)를 승가라고 한다.




부처가 허용한 사고의 자유는 종교사宗敎史적으로 다른 종교에서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부처에 의하면, 자유는 필수불가결 하다.
인간의 해방은 진리를 제 스스로 깨닫는데 좌우될 뿐이지 어떤 신神이나 외계의 권능이 순종적인 선행에다 보수를 주는 식으로 자비로운 은총을 내려주는데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번은 부처가 꼬살라Kosala 왕국의 께사뿟따Kesaputta라는 작은 읍에 갔었다.
이 읍의 주민들은 깔라마Kalama라는 성씨姓氏로 알려져 있었다.
부처가 자기네 읍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손님으로 맞아 경의를 표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님, 께사뿟따에 찾아온 사문과 바라문[주4]이 몇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교리만을 설법하고 교화시킵니다.
그리고 남의 교리는 깔보고 헐뜯고 냉소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문과 바라문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역시 자기네 교리만을 설법하고 교화시키고 남의 교리는 깔보고 헐뜯고 냉소합니다. 하지만 선생님, 저희들은 도대체 누가 바른말을 하는 존경스런 사문과 바라문인지, 그리고 누가 틀
린 말을 하는지 몰라서 항상 의혹과 혼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주4]<역주> 여기서 바라문婆羅門(Brahmana)은 카스트에서 바라문 계급의 성직자, 사문沙門(recluse)은 그 밖에 계급의 출가자이다.
사문은 나중에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출가자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부처는 종교사에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이런 충고를 해 주었다.
'예,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의혹에 사로잡혀 있는 것, 그대들이 혼
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의심스러운 것에서 의심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자아, 깔라마들이여, 전해들은 이야기나 관습이나 풍문에 이끌리지 마십시오.
여러 종교들의 성경이 갖는 권위에 이끌리지 마시오.
논리나 추론에도 이끌리지 마시오. 피상적인 사고에도 이끌리지 마시오.
사변적인 견해를 즐기는 것에도 이끌리지 마시오. 그럴 듯한 것에도 이끌리지 마시오.
'이것이야말로 우리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이끌리지 마시오.
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어떤 것이 건전치 못하다(akusala;不善), 그릇되다, 나쁘다고 알게 된다면 그것을 버리시오. .....
그리고 그대들이 어떤 것이 건전하고(kusala;善) 좋은 것을 알게 된다면 받아들이고 따르도록 하십시오.'[주5]

[주5]<역주> 여기에서 선善한 것은 받아들이고 악惡한 것은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고 건전한 것(善)은 받아들이고 건전치 않은 것(不善)은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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