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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명상음악

[스크랩]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 / 불교에서 가르치는 마음자세 - 2

작성자🌈화양연화(華樣年華)|작성시간20.11.02|조회수97 목록 댓글 4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 / 불교에서 가르치는 마음자세 - 2

 



부처는 한층 더 나아갔다.
심지어 제자들이 여래(부처) 자신까지도 조사해 보아야 하며, 그래서 제자가 그가 따르는 스승의 진정한 가치를 완전히 확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처의 가르침에 의하면 의심(vicikiccha;疑)은 "다섯 장애"의 하나이다.
"다섯 장애"[각주1]란 진리를 명확히 이해하고 정신적 진보를 하는
데 있어서 (또는 어떤 진보에 있어서도)장애가 된다.
그러나 의심은
'죄'가 아니다. 불교에는 믿음이라는 계명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불교에 '죄'라는 것 자체가 없다. 몇몇 종교에서 가르치는 원죄같은 것이 불교에는 없다.
모든 해악의 뿌리는 무명[각주2]과 그릇된 견해(miccha ditthi;邪見)이다.
의혹, 혼란, 흔들림이 있는 한 진보가 가능치 않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이해거나 명확히 보지 않은 이상, 의심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진일보하기 위해선 의심을 제거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심을 제거하려는
이는 명확히 보아야 한다.

[각주1] "다섯 장애"(nivarana;五蓋)는 ⑴감각적인 애욕(貪慾), ⑵악의
(瞋애), ⑶정신적, 육체적 마비와 권태(昏沈睡眠), ⑷근심과 걱정(悼擧惡作), ⑸의심(疑惑)이다.

[각주2] <역주> 무명無明(avijja)이라는 불교용어는 더없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지은이가 'ignorance'라고 영역한 것과 같이 우선 '모르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무명은 모든 삶과 존재가 계속되게 하는 근본 원인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명을 단순히 '무지無
知'라고 옮겨서는 그 의미가 너무 빈약해진다.
이 번역에서는 '無明'이라는 한역어를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의심이 없어야만 한다든지, 믿어야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
다.
그냥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하고 본다는 것을 뜻하지 않
는다.
한 학생이 수학문제를 공부할 때 어떻게 풀어나갈지 모를 경우가
닥친다.
그 학생이 미심쩍어 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곳에서 그러하다.
그 학생이 이 의혹을 가지고 있는 이상, 풀어나갈 수 없다.
풀어나가기를 바란다면 이 의혹을 해결해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 의혹을 해결하는 길
이 있기 마련이다. 그냥 '믿습니다'라던가 '나는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말해서는 문제가 풀릴 리 없다.
억지로 믿고, 이해도 못하면서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지 정신적이거나 지성적인 것이 아니다.
부처는 항상 의심을 쫓아 버리는 일에 열심이었다.
심지어 죽기 몇 분전까지도 제자들에게 자기 가르침에 의심나는 데가 있으면 나중에 의심을 씻어낼 수 없었다고 후회하지 말고 질문하라고 몇 번씩이나 당부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말한 것은 감동적이었다.
'만약 너희들이 스승이 어려워서 질문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런 사람은 친구에게 알리도록 하여라.'(즉, 질문할 것이 있는 사람이 친구에게 말하여, 친구가 그를 위해 대신 질문토록 하라.)

<역주> 한역경전에는 '너희가 만일 스스로 부끄러워하여 감히 묻지 못하겠으면 마땅히 친한 벗을 통해 빨리 와서 물으라'(汝等若自참愧不敢問者 當因知識速來諮問) [{遊行經},長阿含2,大正藏1.26b]로 되어있다.










사고의 자유만이 아니라 부처가 허락한 포용은 종교사를 배우는 학생에겐 놀라운 것이다.
날란다Nalanda에 우빨리Upali라는 유능하고 부유한 호족이 있었다.
그는 니간타 나따뿟따(자이나 마하비라)의 유명한 평신도였다.
한번은 마하비라가 우빨리를 일부러 보낸 일이 있었다. 부처를 만나, 업業의 이론에 대해 몇 가지 논쟁을 벌여 부처를 굴복시키기 위해
서였다.
왜냐하면 그 주제에 대해서 부처의 견해는 마하비라와 달랐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논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우빨리는 부처의 견해가 옳고 자기 스승의 견해는 틀렸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처에게 자기를 평신도(偶婆塞)로 받아들여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부처는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그대 같은 유명인사는 신중히 생각하는 것이 유익하니까', 서두르지 말라고 하였다.
우빨리가 다시금 자기 의사를 표시했을 때, 부처는 이전에 믿던 종교의 스승들을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계속 존경하고 공양하라고 당부하였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의 위대한 불교 황제 아쇼카는 포용하고 이해하는 이 거룩한 일화를 받들어 광대한 자기 왕국안의 다른 모든 종교들을 존중하고 지원하였다.
바위에 새겨진 그의 칙령은 오늘날에도 원문을 읽어볼 수 있는데, 황제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자기 종교만을 숭배하고 다른 이의 종교를 비난하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이며, 이러저러한 도리에 따라 남의 종교도 존중할 지어다. 그렇게 하면 자기 종교의 성장에 도움이 되며, 남의 종교에도 똑같이 봉사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종교의 무덤을 파게 되며, 또한 다른 종교에도 피해를 주게 된다.
자기 종교를 숭배하며 다른 종교를 헐뜯는 사람은 누구나 "나는 내 종교를 찬양하리라"는 생각으로 자기 종교에 헌신하느라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그와 달리, 그렇게 해서는 자기 종교를 더욱 심히 상하게 한다.
그러하니 화합은 좋은 것이다.
모든 백성은 들을 지어다. 다른 이가 가르친 교리에도 귀를 기울일 지어다.'
우리는 여기서 이 서로 이해하는 정신을 오늘날에도 적용해야 될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해야겠다고 부언해야겠다.
이 포용과 이해의 정신은 처음부터 불교문화와 불교문명에서 가장 소중한 이상의 하나였다.
사람들을 불교로 개종시키는데 있어서나 2500년의 긴 역사에 걸친 전파 과정에서 단 한 번이라도 사람들을 박해하던가,
피 한 방울을 흘리게 한 일이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불교는 평화롭게 아시아 대륙 전체로 퍼져서 오늘날에는 5억이 넘는 신도를 갖고 있다.
폭력은 어떤 형태이건, 어떤 구실 때문이건 간에 부처의 가르침에
완전히 반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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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무아집 | 작성시간 20.11.02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 답댓글 작성자🌈화양연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03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조우 | 작성시간 20.11.06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부처님의 가르침 좋은 불법 가슴에 새기며 김란영님의 찬불가 마음에 담아갑니다._()_
  • 답댓글 작성자🌈화양연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06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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