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 : 안녕하세요^^().. 날이 더워서인지.. 생각이 잘 정리가 안되네요. 그래서 여름방학이 있나 봐요.^^
효진 : 여름방학이다.. 바캉스 시즌이다 하니 마음이 들뜨는 게 아니구요?^^.
여름이다. 바캉스다. 덥다.. 를 반복하면 점점 더 게을러지고 놀러 갈 생각만 풍선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선한 행동은 선함을.. 악한 행동은 악에 질리게 하지 않고 오히려 악함을 더욱 키운다는 거지요.
한번밖에 없는 2022년 여름.. 후회 없이 보내길 바랍니다.()^^..
서연 : (난 이미 후회 없이 보내고 있는데요..)^^
효진 : 서연님은 잘 보내고 있나 봐요. 말없이 웃으시는 걸 보니.^^
지난 시간 관셈보살님은 5온이 공함을 보았다 했는데..
앞에 앉아있던 사리자 비구님에게 설명을 시작합니다.
사리자님!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아,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합니다.
사리자는 산스어[범어]로 사리불, Śāriputra라고 하며,
석가 부처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분이며, 지혜제일로 칭송받는 훌륭한 아라한이십니다.()..
그런 분을 호출하여 마치 갓 수행을 시작한 비구처럼 연출하고 있는 게 <반야심경>이지요.
이것 하나만 보아도 대승의 반야부는 상좌부 입장에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게 됩니다.
그런데 사리붓다 장로를 <심경>에서 호출한 이유는
<금강경>에서 역시 부처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분이신 공제일 수보리 장로님을 호출한 이유와 같지요..
서연 : 상좌부 불교를 멕이는 거지요. ㅋㅋㅋ^^
효진 : 물론 그런 면이 있지만.. 대승 불자 선지식들은 자기들이 전하는 불교는
상좌부에서 전하는 것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10대 제자를 호출하고 있는 겁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아주 삐딱하게 보이는 것은 미국의 잣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듯..
<잡아함경>에는 5온을 설명할 때 무상, 고, 무아 그리고 공이라고 설하시니..
<잡. 1.1. 무상경> 마무리 부분을 보면..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만일 스스로 증득하고자 하면 곧 스스로 증득할 수 있으니,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느니라.
[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라고 되어 있지만..
<니까야>에는 5 온은 무상, 고, 무아라고 설하시지만.. 5온이 공이라는 설은 빠져 있습니다.
서연 : 그것은 설일체유부라는 후기 주류 상좌부에서 '공'을 삽입했다고 보는 게 냉정한 판단이 아닐까요?.
효진 : 그럴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역으로 다른 상좌부에서 '공'을 빼버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부처님 당시 공은 소수만이 이해하는 어려운 개념이었는데.. 반야부가 나올 지음에는 나름 공에 대한 일반 인식이 생겨 있었거든요.
공이 나오는 <맛지마 니까야>를 보면..
공(空)에 대한 짧은 경
MN121. MAJJHIMA NIKâYA III 3. 1. Cålasu¤¤atasuttaü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있는 동쪽 숲에 있는 미가라마뚜(녹자모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나가라까라는 삭까의 성읍에 머무셨습니다.
세존이시여, 거기서 저는 '아난다여, 나는 요즈음 자주 공에 들어 머문다.'라고 이렇게 세존의 곁에서 들었고 곁에서 받아들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것을 바르게 듣고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마음에 간직하고 바르게 기억하는 것입니까?"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하다. 그대는 바르게 듣고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마음에 간직하고 바르게 기억하고 있다.
아난다여, 나는 전에도 그랬듯이 요즈음도 자주 공에 들어 머문다.
아난다여, 마치 이 미가라마뚜 강당은 코끼리, 소, 말, 노새들에 의하여 공하고,
금이나 은에 의해 공하고,
남자와 여자의 모임에 의해 공하지만
오직 이 비구 승가를 연(緣)한 한 가지만은 공하지 않다.
그와 같이 비구도 마을이라는 인식(想)을 마음에서 끊어 버리고, 사람이라는 인식을 마음에서 끊어 버리고,
숲의 인식을 연한 한 가지만을 마음에 집중한다.
그의 마음은 숲이라는 인식에 깊이 들어가고 유연해지고 확립하고 확신을 가진다. 그는 이와 같이 철저히 안다.
'마을의 인식을 연한 산만함들은 여기에 없다.
사람의 인식을 연한 산만함들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숲의 인식을 연한 한가지만큼의 산만함은 있다.'라고.
그는 '마을의 인식에 속한 인식은 공하다.'라고 철저히 알고, 사람의 인식에 속한 인식은 공하다.'라고 철저히 알고,
'숲이라는 인식을 연하여 일어난 한가지만큼은 공하지 않다.'라고 철저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을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철저히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됨이 없고 청정한 공에 들어감이 있다."
... (생략) ..()..
라고 합니다.<맛지마 니까야>에서 공이란.. 있기는 한데 여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 하십니다.
아울러 여기에 있는 것은 분명히 있다고 하십니다.
즉 공과 존재를 선명히 구별하지요.
그런데 존재라 불리는 것이 무상이요 무아임을 철저히 알고 있다면..
있지만 없는 것과 다름 아니니.. 그것이 바로 공 아닙니까?^^.
그럼에도 <니까야>에서는 '존재가 곧 공'이란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시 제자들은 공 개념을 모르면서도 아라한을 성취한 것으로 보아야 하구요.
그럴 수 있는 이유로는 구전을 통해[듣고] 이해하는 것과 문자를 통해[보고] 아는 것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
듣고 이해하는 것과 보고 이해하는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서연 : 라디오를 들으면 내 이해력이 포함되지만.. 티브이를 보면 내 이해력이 들어갈 틈이 거의 없지요.
효진 : 멋진 예입니다.^^. 그런데 구전되는 경을 들으며 이해하는 것은 자기 이해이기에 주관인 위험이 포함되지만..
문자로 이해한 것보다 훨~ 강한 이미지가 생기게 되잖아요.
더 나아가 그 이해력이 튼튼한 기반 위에 생긴 것이라면.. 아난다 존자처럼 존재는 무상하고 무아임을 분명히 알고 있는 이라면..
세존께서 가리키는 요점이 바로 '색즉공'이라고 이해하지 않을까요?^^.
그러기에 <심경>의 사리자나 <금강경>의 수보리 장로님은 듣는 그 자리에서 깨치는 것이지요.
서연 :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닌지요?.^^
효진 : ㅎㅎㅎ.. 그런가요.^.^. 아무튼 문자로 이해하는 반야부 제자들은 마을, 사람, 숲,.. 모두 색즉공이라고 이해하거든요.
그렇지만 아라한이 되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아요.
그리고 부처님 당시 아라한이라 불린 분들은.. '색즉공'이란 단어는 모르고 있다 해도 분명히 깨치고 있지요.
사리자님!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아,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합니다.
대승의 논사들이 당시 성문승[상좌부]의 리더인 상좌들을 까기 위해 사리자[사리불] 존자 이름을 빌려왔지만..
아라한인 사라불 존자는 색즉공을 깨치고 있다는 겁니다. 깨치지 않았다면 지혜제일이라 하더라도 아라한이라 불리지 못하지요.
그에 반해 <심경>이 나올 당시 상좌[아라한]라 불리는 이들은 '색은 색, 공은 공'으로만 알고 있다고 반야부에서는 파악하고 있는 거구요. 왜냐면 당시 주류 상좌부였던 설일체유부는.. 일체법은 실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우고 가르치면 색은 색, 공은 공일 뿐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역사적 사실보다 지금 내가 색즉공을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서연 : 당연히 몰이해하고 있지요 ㅋㅋㅋ^^
효진 : 언제부터 서연님이 남을 대변하고 있었나요?. 혹 자신을 남처럼 말하는 건 아닌지요?^^
서연 : ^^..
효진 : 그리고 색즉공을 알기 전에 분명하게.. 당연히 그리 알고 있겠으나
색은 색이고, 공은 공임을 의식적으로 알아야만 합니다. 강조하는 이유는
숨 쉬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워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지내듯..
색은 색임을 너무 의심하지 않으니.. 색이 공이라는 접근이 불가능하게 하거든요.
무슨 말인가?..
여기에 나(서연님)는 있지만, 제나(딸)는 없다고.. 분명히 의식해야 합니다. 이어서
나는 색,수,상,행,식 5온 존재인데.. 색에 대한 지각은 없어지고 수(상행식)는 존재한다.. 고 의식을 분명히 합니다. 이어서
수,상,행에 대한 지각은 없어지고 나의 의식만 존재한다.. 이어서
나는 없어지고 의식만 존재한다.. 이어서
의식은 사라지고 숨만..
이렇게 나아가는 걸 사마타[지(止)] 수행이라 하는 거지요.
그런 깊은 사마타 상태에서 깨어나.. 그 상태에서 진리인 법 '색즉공' 사색하는 것을 위빠사나[관(觀)]라고 합니다.
서연 : 색이 공함을 알면 삶에 도움이 있나요?
효진 : 허참.. 바로 앞에서 말했잖아요. 5온이 공함을 보아 일체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아, 서연님은 남을 대변하고 있다고 했지^^
일본 소설 <대망>에.. 기독교를 혐오하는 성주가 십자가를 땅에 놓고 주민들에게 그것을 밟고 지나가라고 합니다.
밟고 지나가지 못하면 천주교인이라 하여 그 자리에서 목을 칩니다. 대부분 밟고 지나가지만..
끝까지 밟지 않고 결국 목을 잘리는 이들이 있었다지요. 나무 관세음보살..()()..
그런 이들에게는 '나는 없어지고 의식만 존재한다' 고 하듯이..
보이는 건 십자가를 통한 안심으로.. 자신[5온]의 죽음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들이 어리석은 건가요?..
1980년 전두환 군사 정권이 들어서고.. 정치 자금이 필요하자 그들은 유명한 사찰을 중심으로 머니 사냥을 벌입니다.
그것을 '10.27 법난'이라 하는데.. 이 사건에는 참담한 비극이 담겨 있죠.
법난을 주도한 군부 세력이 전두환을 포함한 불자들 모임이었다는 겁니다.
이런 재앙인 법난을 당하고서도 목숨을 걸고 대항한 승려나 불자가 있었다는 뉴스가 없었어요.
있었는데 뉴스에서 검열당한 걸까요?.
오히려 명박 시절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분신으로 목숨을 희생한 문수 스님이 계셨는데.. 나무아미타불..()()..
그런 문수 스님에 대한 기념은 하고나 있는지..
만일 기독교를 전두환 일당이 군홧발로 짓밟았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대항했을까요?..
불교가 그렇듯이 결코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불교는 색즉공이라서 그런 건가요?..
'나는 없어지고 의식만 존재한다'는 단계는 아라한에는 못 미치는 단계라 하겠는데..
그 수준에 이르지도 못했으면서 무슨 수행 지도자[선지식]라 행세를 할 수 있습니까?
상좌부를 비판하며 대승보살들이 나오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고 봅니다.
입만 살아서..
서연 : (...)
효진 : 본론으로 돌아와.. <심경>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감이 잡히죠?^^.
일체 고에서 벗어났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구조로..
고액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그것이 실천될 때는 모습인지도 보여주는 구조입니다.
색즉시공만 듣다 보니.. 아 몸은 실은 공이구나 하고만 아는데.. 그거 아니죠! 5온인
수 역시 공이요,
상 역시 공이요,
행 역시 공이요 나아가
식 역시 공이라 하고 있습니다.
저는 행즉시공 공즉시행으로 행즉공이 마음에 듭니다.^^().
서연 :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지요?..
효진 : 으읍! 들켰네요!..^^..
색즉공이라는 바른 견해[정견]가 생겼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바르게 행할 수 있는 행즉공[정업]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모든 게 인연 때문인 걸.. 하고 있다면.. 자기 합리화요, 비굴이니..
지식 팔아먹고사는 지식인이나 권력에 굴종하는 검사와 무엇이 다르며..
어찌 보살도를 말할 수 있겠어요.
오늘은 색즉색이나 행즉행에서 색즉공이나 행즉공이 된다는 것은..
정견을 세워 무엇이 옳고 그름을 분명히 보고 있다면..
힘이나 권력에 의해 정견을 무시하고 시세에 따르지 않고..
정견을 지켜 나아가는 게 색즉공이요 행즉공이 되는 것으로..
'나는 없어지고 의식만 존재한다'는 아라한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