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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불자게시판

열반과 자승

작성자효진 홍윤표|작성시간24.03.22|조회수92 목록 댓글 0

생멸 연기는 연기법칙라 하여..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이다.

 

그렇습니다. 저것이 연기법칙이며, 생멸 연기입니다.

누군가 불교는 12연기법이 전부다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불교는 12연기법인 생멸 연기에 모두 담겨 있는 게 됩니다.

 

그런데 저 말을 인용하는 글 제목으로

"자승 스님 열반을 어떻게 봐야할까" 

하는 게 가능하느냐는 겁니다.

 

열반이란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는 12연기법의 환멸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살인지 타살인지 왜 자연사가 아닌지.. 그 원인이 아직까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고..

그 스님이 살아온 흔적을 보며.. 열반이란 단어를 사용해도 괜찮은가 하는 겁니다.

 

그가 조계종 총무원장할 때 칭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겠지만.. 많은 불자 특히 젊은 불자들이 많은 실망과 분노를 표했습니다.

그것이 대학생 불교를 왜소하게 만든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말년에 대학생 불교를 부흥시키겠다는 뜻을 세우고 돈을 모았다고 하는데.. 이 무슨 아이러니입니까?.

그의 행적을 보면서 열반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다고 봅니까?.

 

불교에서 사용하는 고귀한 언어를 천하게 만드는 짓은 불자가 특히

법을 전하는 법사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구업이라고 봅니다.

 

열반이란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는 12연기법의 환멸문입니다.

이때 나오는 멸은 일상적으로는 큰 스님이 돌아가시면 사용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열반은 육체적 죽음과는 관계없는 언어이며, 큰스님이 돌아가셨다고 하여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닙니다.

 

물론 부처님 진설이라는 <잡아함경>을 보아도 부처님과 아라한이 죽으면 무여열반이라 하여 살아서 성취하는 열반을 유여열반이라 하여 구별하였습니다. 

이때 알아야 하는 것은 살아 있음과 죽음을 구별하는 것으로 유여와 무여를 말하는 것이지..

살아서 성취한 열반과 죽은 후 열반 내용이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부처님은 나고 죽는 오고 감이 없는 열반에 이르렀기에 여래라 하는 것인데..

중생의 눈에는 분명 오고감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 유여와 무여로 구분할 뿐입니다.

 

그런데..

자승 스님을 두고서 출세간이나 세간에서 얼마나 말들이 많았나

 

자승 스님은 다만 멸하는 길을 택했다 

그 다만 멸하는 길은 윤회를 멸하는 길이다 / 퍼옴

 

위 문장은 자승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길은 윤회를 멸하는 열반의 길이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정말 저 내용대로라면 평소 행한 행적으로 보아 소신공양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죽은 이는 될 수 있으면 욕을 하지 않는.. 설사 살아서 잘못을 저질렀어도 예를 지키는 민족입니다.

그렇다면 자승 승려에 대한 우리 민족으로 지킬 수 있는 최대의 예는 침묵입니다.

조용히 마치 총무원장을 하지 않았던 스님처럼 보내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승려에 대하는 재가자는 불자로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은 후..

출가자이지만 호불이 섞여 있거나 잘 모르면 '승려'라 호칭하며, 일 배를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출가자로 사회에서 그의 고약한 행적이 알려졌다면 '(땡)중'이라 호칭하며, 재가자와 같은 대접을 하면 된다고 봅니다.

출가자로 사회의 스승이 되는 분으로 알려졌으면 '스님'이라 호칭하며, 삼배를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보면 출가자 가운데 스님으로 불리는 이들은 소수가 되고, 대부분이 승려이며, 땡중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출가자 스스로는 승려라 부르는 게

21세기 우리 정서에 맞다고 봅니다.().

 

삼귀의례를 보면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하는데..

스님이란 말은 스승님을 줄인 것이라 하듯.. 거룩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요.

 

21세기가 말세라면.. 할 수없이 승려 스스로는 스님이라 불러야 하겠지요.

말세 중생은 호칭에 의해 사람을 평가하므로..

 

그러니 '자승 승려'라 하면 모를까 '자승 스님' 하면 정직하지 못한 행위요, 삿된 말로 불교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가 열반의 길로 갔다구요?.

 

그가 열반의 길로 간 것이라면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온 이래 출가한 이들은 모두 열반의 길로 나아간 게 됩니다.

그것은 열반은 많은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하고, 스트레스를 준 자가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자리가 됩니다.

열반이 그런 뜻인가요?.

 

아무리..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게 중생이라 하지만 어찌 열반을 자승과 연결시켜 말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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