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보니 하늘이 생겼다.
눈이 제법 많이 내렸지만 오래 쌓여 있지 않고 수일 내 녹을 것 같으니 여간 다행히 아니다.
눈이 내리고 쌓여 있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지만.. 눈을 치우는 일을 포함한 그 다음 일은 고약하다.
이제 2025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일년을 마무리해야겠지.^^
<손바닥 위를 걷다>를 출간한 이유는
석가모니가 출가하여 명상과 고행을 닦았지만 구경열반에 이르지 못하다..
보리수 아래에서 열반을 성취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것을 깨닫고[이해하고].. 그것을 깨쳤는지 누구도 선명히 보여주지 않았다..
그게 무얼까?.
그 해답이 바로..
열반을 성취할 수 있었던 핵심은 그간 존재인 6근6경으로 알고 수행하다.. 홀연히 그게 아닌
심연생인 12처임을 발견하고.. 그것을 깨쳐 부처님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 기쁨은.^^..
하여 그것을 이 책에서 보여주었는데..
아직은 누구도 맞다 틀리다는 등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
12처가 심연생이라 함은..
12연기의 시작인 무명이 12처를 존재인 6근6경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고,
8정도의 정견은 12처를 존재가 아닌 마음을 연해 생긴 것으로 보는 것이 된다.
이쯤 되면 불교를 잘 안다는 학인들의 견해와 다르다는 지점이 분명히 보이련만..
아직은 책 내용에 대해 말이 없구나.^^..
12처가 존재가 아닌 심연생임을 분명히 자각하면..
이제까지 알고 있던 <반야심경>이 다르게 보이는데..
제일 먼저 걸리는 게 공 가운데 "(6근인) 안이비설신의와 (6경인) 색성향미촉법이 없다"는 곳이다.
12처의 안과 색 등은 <심경>에서 처럼 근과 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게 아닌
2법6쌍으로 보아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근6경으로 나누어 보는 것은 그것을 존재로 볼 때 가능하다.
물론 우리 일상은 12처를 6근6경으로 보아야만 가능하다.
곧 내가 사물을 보듯, 나와 사물이 따로 존재하고 있다고 알아야만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그게 일반인 재가자 삶이다.
그런 12처를 심연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재가자 삶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기에 부처님께서는 출가자 사회를 만든 이유 하나로 본다.
<반야심경>은 석가세존이 가르친 심연생인 12처를 6근6경 존재로 보는 상좌부의 견해를 바탕으로 삼고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
존재를 부정하면 곧 심연생이 되는가?.
아니다. 그러기에 <심경>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식들이 설명을 하지만..
재가자에게는 여전히 이해가 어려운 경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구구단을 외우듯 처음에는 낯설어 잘 외워지지 않지만 한 번 또 한번 외울수록 입과 머리에 익어가 나중엔 도사처럼 구구단을 기억는데.. <심경>은 수 년, 수십 년을 독송하지만 여전히 뜻을 모른다. 아니 겉 뜻은 알지만 참 뜻은 모르고 있다.
대승부 가운데 반야부는 일체를 존재로 설명하는 상좌부를 부정하여 일체는 공이라 하면서 나온 대승불교가 된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존재를 부정한다 하여 곧 심연생이 되는 게 아니다.
반야부는 공을 심연생으로 연관시키지 않고 존재론 입장에서 설명하려 애쓴다.
12처를 존재로 보면서 그 안에서 공을 설명하고 있는 게 된다.
석가모니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를 이룬 후 세상을 살펴본 후
"이 법을 깨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혼란만 더하게 될 것 같구나" 하신 내용은 바로
존재를 기반으로 하며 공을 가르치는.. 반야부의 시도였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불교를 공부할 때 먼저 12처는 존재가 아닌 심연생임을 배우고..
12처를 따라 18계, 5온이 심연생임을 이해한 후..
6근6경인 이 세계에서 불교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바른 길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