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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찰

보물 제121호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과 우담바라

작성자현림|작성시간21.02.12|조회수248 목록 댓글 6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석불과 마애불 그리고 석탑은 조성되었지만

그중에서도 사면석불은 드물고 더욱이 현재 남아 있는 사면석불의 예는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최초 사면불이라 불리는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보물 제794호)는 형체는 남아 있지만,

마모가 심한 데 비하여,

경주 칠불암의 사면불은 그런대로 완연한 형체가 남아 있어

국보 제3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둘의 사면불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 사면불로 꼽히는 것이

바로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이다.

 

역사적 기록으로는 『삼국유사』 권3 탑상(塔像)

사불산굴불산만불산조(四佛山掘佛山萬佛山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경덕왕(재위 742∼765년)이 백률사(柏栗寺)에 행차하여 산 밑에 이르렀을 때,

땅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그곳을 파게 하였더니 큰 돌이 나왔다.

그 돌 사면에는 사방불이 조각되어 있어서

그곳에 절을 세우고 굴불사(掘佛寺)라 이름을 지었는데,

지금은 잘못 전하여 굴석사라 한다.” 이 상이 바로 굴불사의 불상이다.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慶州掘佛寺址石造四面佛像)

시대;고대/남북국/통일신라

문화재 지정: 보물 제121호

크기: 높이 3.5m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굴불사지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은

경주 동천동 굴불사지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조사면불상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1호

굴불사지석불상(掘佛寺址石佛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높이 약 3.5m의 커다란 바위 사면(四面)에 불상이 조각된

굴불사지사면석조사면불의

서쪽 면의 양협시 보살은 별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본존은 머리 부분만 따로 조성하여 바위 면에 조각된 몸 위에 얹어 놓았다.

몇몇 상들의 두부가 파손되었으며, 북쪽 면의 향 좌측 상은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고,

상 자체는 결실된 상태이다. 동쪽 면의 불상은 보주를 들고 있으며,

북쪽 면의 우측 상은 그 도상을 명확하게 볼 수 없으나

다면다비(多面多臂)의 보살상이 얕게 선각 되어 있으며,

그 옆은 존명을 확인할 수 없는 불입상이 위치한다.

남쪽 면은 불입상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보살상이 있었던 삼존불로 추정되나

우측 보살상이 결실되어 있다. 현재는 두부가 모두 파손된

여래입상 한 구와 보살입상 한 구가 위치한다.

 

동서남북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것은 사방정토(四方淨土)를 상징한 것으로,

대승불교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한 사방불 신앙의 한 형태로 보인다.

불교 경전이나 불상에 나타나는 사방불의 명칭은 매우 다양하므로,

이 불상의 경우 어느 특정 경전에 의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당시의 대승불교에서 가장 널리 모시던 불상들을 배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동면 (東面)​

동면에는 약사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있으며,

여래좌상의 얼굴 부분은 고부조로 조각되었으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저부조로 되어 있다. 이는 바위의 윗부분이 돌출되고

아랫부분이 들어가 정면에서 바라보면 안쪽이 쑥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오른손을 들어 올려 시무외인(施無畏印)을 결하고 있으나 손은 깨져 있고,

왼손은 약합을 지물로 들고 있다.

이와 같은 수인은 칠불암 사방불 동면과

경주 남산 미륵곡 석불좌상 광배 뒷면 상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8세기 중반 이후의 대부분 약사불상은

대부분 왼손에는 약함을 들고 오른손을 무릎 위로 올리고 있어서

시무외인을 결한 형식의 약사불상은 초기 형식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西面

1981년 실시된 발굴조사로 그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불상들의 대좌와

주변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사면석불의 상들은 크기가 다양한데

서면의 아미타삼존불이 가장 크다. 본존상은 고부조로 새겼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올렸다. 양협시 보살상은 다른 돌에 환조해 세웠는데,

왼쪽 보살상의 보관에 화불이 있고 정병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서면의 조상 형태를 보면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두부가 파손되었지만,

왼쪽의 보살입상 보관에서 화불(化佛)이 확인되고 있어

서방(西方) 극락세계(極樂世界)를 관장하는 아미타삼존불로 여겨진다.

중앙의 아미타여래는 신체만 돌기둥에 조각했고 다른 불상들보다 크며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리는 별개의 돌로 조각하여 얹었으며,

머리가 얼굴보다 크게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양어깨에 걸쳤고,

앞에는 U자형의 주름이 계단식으로 조각되었는데,

표현이 조금 딱딱하게 되어 있다.

 

南面

남쪽 면의 불상은 석가삼존불로 추정된다.

남면에는 원래 삼존불이 부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오른쪽의 보살상은 흔적뿐이고 현재는 머리가 없는 본존불입상과

보살입상만이 있다. <문화재청>의 설명에 의하면

「남쪽 면은 원래 3존상으로 되어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오른쪽 보살을 완전히 떼어 가고

가운데 본존상의 머리마저 떼어 갔다고 한다.」라고 한다.

이는 떼 난 자리에 징으로 쫓은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인 듯 보인다.

 

北面

북면에는 두 개의 보살상이 있는데, 좌측 보살은 부조된 보살상이고,

우측의 보살상은 선각(線刻)으로 처리되어 마모가 심해 판독하기가 어렵다.

<문화재청>의 해설에 의하면

「양쪽 귀 옆으로 보살 2면이 있고, 머리 위에 5면,

그 위에 2면, 맨 위에 1면이 있어, 모두 11면의 얼굴을 가진

십일면육비(十一面六臂)의 관음보살을 표현하였다.

이는 관음상의 변화형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능력을 발휘하여 다방면의 신통력을 보여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보살상은 돋을새김으로 부조(浮彫)되어 있고,

높이 틀어 올린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다.

손을 든 자세나 천의를 두른 모습이 남면의 보살상과 매우 비슷한 형식이지만,

보존 상태는 별로 좋지 않다. 형태상의 특징은 없으나

보살 중 장차 부처가 될 미륵보살로 추정하고 있다.

 

우담바라

굴불사지의 관리인이 북면 불상 쪽에 우담바라가 피였다고 하여

사진에 담아보려 했지만 너무 작아서 사진으로 담기가 어려웠고,

또 현장에서는 별 것이 아닌 것으로 보고 넘어갔는데

집에 와서 확대해 보니 꽃이 분명하다.

불교의 경전에는 '우담바라'가 3000년에 한번씩 피어나는 꽃으로,

석가여래나 지혜의 왕 전륜성왕(轉輪聖王)과 함께 나타난다고 적고 있고,

인도의 전설에도 여래(如來)가 태어나거나 금륜왕(金輪王)이

이 세상에 출현할 때에는 커다란 복덕의 힘으로 이 꽃이 피어난다고 하며,

불교의 과거칠불(過去七佛) 가운데 다섯째 구나함모니불(Kanakamuni-buddha)은

이 나무 밑에서 성불했다고 한다.

우담화가 이처럼 상서로운 조짐으로 인식된 것은

이 꽃이 꽃받침에 싸여 있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은화식물(隱花植物)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굴불사지의 이 꽃이 우담바라인지는 모르나

너무 작아서 눈으로 분별하기는 사실 어려웠다.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우담바라'라고 불리는 꽃은

'풀잠자리 알'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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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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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현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2.14

    고맙습니다. 좋은 닐 보내세요
  • 작성자신광거사 | 작성시간 21.02.13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_()_
  • 답댓글 작성자현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2.14 감사합니다. 한 소식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 작성자梵心(범심) | 작성시간 21.02.15 오늘도 즐겁고 복된날 되세요.
    귀한 작품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만부리 | 작성시간 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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