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를 사람들과 함께 가다 보면 대개 실망을 하게 된다. "사진보다 별로다." 혹은 "볼게 없다."는 말을 왕왕 듣곤 한다. 처음에는 그런 말들이 참담할 때가 있지만, 이제는 이력이 붙었는지 그냥 한 마디 툭 던진다. '암자를 가려거든 마음으로 가세요'
비단 암자 뿐만 아니라 여행을 가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여행을 혼자가기를 즐기거나 정말 여행을 아는 이들과 가고자 함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길을 떠나는 과정보다 목적지에 관심이 더 많고, 느끼기보다는 볼거리를 더 찾는 이들이 많다. 이전에는 나하고 여행을 따라 나선 이들에게 내가 최고로 꼽는 장소로 안내를 하였다. 처음에는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도 은근히 기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작용은 금방 드러났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여행지를 추천해주고 가다 보니, 내가 10번 이상 가본 곳을 또 가는 것도 지루하지만, 다음 여행지에 대한 은근한 부담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루함을 벗어나고자 가끔은 내가 가고픈 곳을 가다 보면 실망의 목소리들이 종종 나온다. 나 또한 가본 적이 없으니 사전에 알 수가 없지 않은가? 또 하나의 부작용은 너무 좋은 곳만 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눈이 높아만 간다는 사실이다. 웬만한 풍경도 눈에 차지 않는 법이다. 그들을 본의 아니게 '눈뜬 봉사'로 내가 만들었다는 자책감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내가 최고로 뽑고 소개하는 여행지는 사실 내가 몇 번에서 많게는 수십 번을 다녀와서야 얻은 열매이다. 내소사가 언제 가장 좋은 지를 느끼고 싶어 계절별로, 시간별로, 심지어 비오는 날 일부러 그 먼 곳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에 따라, 일기에 따라, 시간에 따라,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열매만 내가 던졌으니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여행은 과정을 중요시하면서도 여행을 나누는 마음은 나 역시 결과 중심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천자암을 가기로 한 것은 우연이었다. 셋이서 모여 어디를 갈까 머리를 맞대다 일행 중 한 명이 송광사 뒤 암자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법정스님이 기거한 암자가 있다고 하였다. 나는 거기가 천자암이 아닐까 해서 목적지를 천자암으로 잡았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법정스님이 기거한 암자는 천자암이 아니라 불일암이었다.

송광(松廣)사는 문자그대로 소나무가 많아 조선 초기 '솔뫼'라고 불리던 송광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송광산이 지금은 조계산으로 바뀌었으니 산은 이름만 내어준 셈이다. 무지개 다리 위의 아름다운 누각 청량각에서 시작되는 이 숲길은 편백나무 등의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으로 인해 절에 이르기까지 내내 상쾌하다.

# 임경당과 우화각
송광사는 몇 번이나 다녀가서 일주문 바로 옆 계곡에 있는 우화각과 임경당만 한 컷하고 천자암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이 곳은 송광사 제일의 풍경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광사 관련 포스트는 본 블로그 '산사를 떠나다.' 를 참고하세요)

# 세월각과 척주당
왼쪽에 위치한 능허교(우화각)를 건너지 않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있다. 척주(滌珠)는 '구슬을 씻는다'는 뜻의 남자의 영혼을, 세월(洗月)은 '달을 씻는다'는 뜻의 여자의 혼을 각각 세속의 때를 깨끗이 씻는 장소이다. 왜 남자를 '구슬'에 여자를 '달'에 비유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여자가 '달'이라면 남자는 당연히 '해'가 되어야 하지 않은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천자암 가는 길의 안내문에 있지만, 굳이 인용은 하지 않기로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다. 세월각 앞에는 고사목 한 그루가 있다.(사진 왼쪽에 장대 같이 서있는 나무) 보조국사가 꽂은 향나무 지팡이라고 한다.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다시 찾을 때 살아날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세월각을 벗어나자 왼편 송광사쪽으로 화려한 오솔길이 나타났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오솔길에 들어설 뻔 하였다.
'스님 외 출입금지' 를 보는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왠 등산복 차림의 사람이 휑하니 들어가는 게 아닌가! '어, 스님 외는 안되는디...' 외치고 싶었으나 입안에만 맴돌았다. 그렇게 아무 꺼리낌 없이 들어가는 모양새를 보고 나니 '아, 절하고 관련있는 사람이겠지, 내가 괜히 사람을 의심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 얼마 전 청송 주산지 사진찍는 이들의 추태를 고발(?)한 블로그를 본 적이 있다. 수 십만 건의 조회수을 넘을 정도로 Daum에서 떠들썩한 적이 있다. 좋은 사진을 찍는답시고 출입금지 구역을 무시하는 건 예사이고 심지어 나무 위에 올라서는 이들, 담배피우는 이들로 정말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과 같은 사람들로 인해 요즈음 카메라 들고 다니면 사람들의 보는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다. 무얼하든 지킬 건 지켜야 한다.

짙푸른 대밭이 암자 가는 길의 첫 안내인이다. 오늘 나의 사진 모델이 되어줄 일행 중 한 분....

대밭을 지나면 산 중의 넓은 채마밭이 나온다. 채마밭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왼편의 계곡길로 가면 굴목재(보리밥집) 방향이고, 채마밭을 돌아 똑바로 가면 천자암 가는 길이다. 그런데,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갈림길에서 왼편 계곡쪽을 택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잘못된 선택이 우리에게는 엄청난 복으로 돌아 왔다. 내려오는 길은 정상적으로 왔는데, 처음의 호젓한 오솔길을 빼고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 비해 앞으로 글이 이어지겠지만 왼쪽의 계곡길은 두터운 낙엽과 단풍, 산죽, 맑은 계류, 전설과 함께 하는 내내 즐거운 산행길이었다. 소요 시간은 굴목재 방향이 30여 분이 더 걸렸다.

# 홍골
산길에 낙엽이 두툼하니 쌓여 있어 마치 붉은 융단 위를 걷는 듯 했다. 사각사각 낙엽 밟히는 소리에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웠다. 김영동씨의 '산책'연주가 잘 어울리는 산행길이다.
마을 사람들은 '홈(대)골'이라 불렀는데, 골짜기의 생긴 모습이 물을 대기 위해 마디를 없앤 대나무관(홈대)을 닮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어여쁜 이름을 식자라는 사람들이 홈통 홍(?)자를 써서 '홍골'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식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하게 한다. '나무실'을 '목곡(木谷)'으로 부르는 것과 같이 허망한 일이다. 물론 한글이 보급되기 전 문자 표현상의 어려움이 있어서 그러했다면 수긍할 문제이겠지만, 가능한한 아름다운 우리말 그대로 표현하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 보소(褓沼)
계곡 절벽 아래 있는데, 산길에서는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보소는 대들보늪으로 풀이되는데, 여기에 얽힌 전설이 있다. 조선조에는 척불정책으로 불교 탄압이 심했는데, 송광사 승려들도 조계산 산중노역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매일 노역에 지칠대로 지친 승려들이 관아를 짓는데 대들보용 나무를 운반하다 이곳 소에 대들보를 밀어 넣었다고 한다. 소에 빨려간 대들보는 영영 사라지고 이 사실을 안 감독관이 스님들에게 나무들을 찾아오라고 갖은 협박을 했다고 한다. 견디기 힘든 스님들이 기도를 하자 10리 밖 곡천 다리 밑 소에서 나무가 떠올랐다고 한다. 이에 스님을 괴롭히던 감독은 두려운 마음에 도망가고 이때부터 대들보가 빠진 소라 하여 '보소'라고 불렀다고 한다.



# 걸친 바위
오랜 옛날 조계산의 효(호)령봉 피아골에는 스님들을 시기하는 마군과 도승이 살았다. 마군은 도승을 쫓아내고 자리를 모두 차지하려고 도승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런데 송광사와 선암사를 수시로 오가는 스님들 때문에 마음 놓고 해볼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길을 막아버리면 왕래도 없고 사이도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골짜기로 산체만한 바위를 굴렀단다. 도승은 이를 알아차리고 작고 재빠르게 생긴 괸돌에게 일러 반드시 가로 막을 것을 부탁하며 괸돌을 밀어 보냈다. 괸돌은 무섭게 굴려가서 큰 돌이 길을 가로막기 직전에 몸을 날려 큰 돌에 부딪혔다. 이로 인해 마군은 쫓겨나고 송광사와 선암사 스님들은 여전히 사이좋게 왕래를 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 바위를 길을 막으려다 괸 돌에 걸쳤다고 하여 '걸친 바위'라 불렀다 한다.(조계산 안내문 조계산인의 글 요약)

산죽과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인 산중 휴게소이다.
불현듯 조정래 작가의'태백산맥'이 떠 올랐다. 염상진, 염상구의 아버지가 조계산에서 숯을 굽던 숯막이 이러한 곳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굴목재에서 보리밥집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 숲길을 잡아 잡목 터널을 10여 분 걷자 갑자기 시야가 탁 트였다. 그야말로 하늘이 열렸다. 천자암! 이 봉우리에 서니 그 이름이 더욱 와 닿는다. 여기서 내려가면 천자암이 나타날 것이다.

# 천자암
암자 이름이 왜 天子庵인지는 모르겠다. 글자의 의미로는 유추가 될 법도 한데.... 블로그님들의 정보 부탁드립니다.

# 쌍향수(천연기념물 제88호)
이 두 그루의 향나무는 실제로 보면 그 크기가 장대하다. 천자암의 뒤뜰에 있는 이 쌍향수는 보조국사와 그의 제자인 중국 금나라의 왕자 담당이 꽂은 지팡이가 뿌리내린 것이라고 한다. 나무의 나이는 800살이 이미 넘었다고 한다. 마치 스승과 제자가 서로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법왕루
천자암 들어가는 누각이다. 차나무와 대나무, 바위가 잘 어우러진 누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