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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불보살님

정토법문의 신심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작성자반문문자성|작성시간20.01.31|조회수94 목록 댓글 4

정토법문의 신심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정전스님 법문입니다.

‘그 명호를 듣고 신심 내어 기뻐한다聞其名號,信心歡喜’, 신심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명호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원행을 말하고 있지만 모두 본인이 어떻게 노력하여 믿어야 하고, 지성으로 왕생을 발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입니다. 사실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명호를 듣는 것으로부터 나옵니다. 명호가 곧 무량광·무량수이며, 바로 부처님이시니까요.

아미타불께서 “내가 성불하고 나서 나의 무량광수의 공덕을 시방중생에게 회향해주겠다”고 말씀하셨기에 우리가 그 명호를 듣고서 신심 내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신심 내어 기뻐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명호에 우리들의 왕생에 필요한 공덕을 구족하고 있고, 우리로 하여금 왕생하여 성불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우리가 신심 내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명호를 듣고 나서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도 “모릅니다”고 대답하고, “얼마를 불러야 왕생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도 역시 모른다고 한다고 말한다면, 그러면 신심 내어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염불인들이 염불하면서 매우 힘들어하고 염불하면서 매우 번뇌하고 걱정을 합니다. 장애가 있어서 왕생할 수 없을까봐 걱정하고, 자신의 마음이 청정하지 않아서 왕생할 수 없을까봐 걱정하며, 자신이 교리를 몰라서 왕생할 수 없을까봐 걱정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명호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명호를 듣지 못한 것이고 명호의 진실한 공덕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 명호를 듣고’란 바로 명호의 진실한 공덕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호의 진실한 공덕을 이해한다면 자연히 신심 내어 기뻐하게 됩니다. 이런 신심은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라 불력의 가피와 명호공덕의 섭수로 인해 우리가 자연스럽게 ‘신심이 없는’ 상태에서 ‘신심이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왕생을 걱정하고 있을 때,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면서 염불중생을 섭취하여 버리지 않으신다”는 말씀만 들어도 신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신심은 자발적인 것이어서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은 싹을 틔울 수 있지만 조건을 만나야 합니다. 예컨대 햇빛·수분·온도·토양 등등이 필요한데, 인연이 성숙하면 싹을 틔우게 됩니다. 만일 이 씨앗을 메마른 땅위에다 놓는다면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어떻게 노력하여 싹을 틔우게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신심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요? 역시 명호공덕의 가피, 불력의 가피에 의지하여 우리의 신심을 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익대사님께서는 “능히 체성을 개발하게 한다能令體性開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공덕은 능히 우리 마음의 불성·체성의 공덕을 개발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심이 없던 사람이 부처님의 명호를 들으면 신심이 일어나게 되고, 신심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게 됩니다. 신심과 의심은 대립적인 것이어서 우리에게 의심이 있다면 왕생이 확실치 않다고 걱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의혹이 생기게 되고, 의혹이 생기면 우려와 걱정이 있게 되고, 환희심이 없게 되지요.아미타불의 무량광수는 우리의 왕생을 보증할 수 있기에, 이런 신심만 있으면 저절로 기뻐하게 됩니다. 이런 기쁨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난 것인데, 불력의 섭수로 인해 우리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심성의 공덕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따라서 정토법문은 우리 자신이 ‘내가 노력해서 그분을 지극정성으로 믿어야겠다. 나는 간절해지고 정성스러워지려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범부들이 정말로 노력하여 간절해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만일 부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른다면 우리의 지성심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면 부처님을 믿으려 해도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모릅니다. 진실한 믿음은 불력의 가피에서, 부처님의 18원 “만일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으로 우리의 왕생을 보증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명호를 들으면 자연히 신심 내어 기뻐하고, 그 다음에 ‘내지 일념만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원하면 즉시 왕생하여 불퇴전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심 내어 기뻐할 때 자연스럽게 ‘내지 일념만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하게 되므로, 이것이 바로 ‘지심’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생사고해 속에서 이고득락의 길을 찾으려 하는데, 이때 아미타불의 명호가 우리의 왕생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안다면 자연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지덕지 하게 될 것이며, 그 뒤로 ‘내지 일념만이라도 지심으로 회향함’으로써 일념 사이에 마음이 돌아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래 윤회하는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의지할 수 있는 극락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이때 한 생각 돌이켜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발원한다’면, 마음은 자연히 돌아오게 됩니다. 앞에는 아미타불께서 “욕생아국”, “너희들은 나의 정토에 왕생해야 한다”고 부르시고 계시고, 우리는 부처님의 부르심을 듣고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발원’하게 되는데, 이것은 불력의 가피이고 부처님께서 부르시는 힘이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심 내어 기뻐하며 내지 일념만이라도 저 나라에 태어나기를 발원’ 할 때, ‘즉시 왕생하여 불퇴전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곧 왕생의 자격을 얻게 되는데, ‘즉득即得’이란 바로 즉각 얻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왕생은 임종 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왕생하려면 임종 시 장애가 없어야 하고, 마음이 청정해야 하고, 마음에 걸림이 없어야 하고, 정념이 분명해야만 한다고 하는데, 마치 이래야만 왕생을 보장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사실 임종 시의 모든 것은 전부 하나의 결과이지 조건이 아니므로, 임종할 때 반드시 정념이 분명하고 마음이 전도되지 않아야만 비로소 왕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임종 시 정념이 분명하고 마음이 전도되지 않는 것은 이미 불력의 가피를 받은 결과이지 조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명호를 듣고 신심 내어 기뻐’할 때 이미 왕생의 결과가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불법에서는 심법을 말하기 때문에 시간을 보는 게 아니고, 현재 혹은 임종을 따지는 게 아닙니다. 언제가 임종입니까? 만일 정토법문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우리가 불력을 받아들이고, ‘그 명호를 듣고 신심 내어 기뻐’할 때가 바로 임종입니다. 우리의 생사윤회는 여기서 그치므로, 이때 이미 왕생의 자격과 왕생의 신분이 정해졌기 때문에 ‘즉시 왕생하여 불퇴전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단 마음을 돌려 불력을 받아들이고 일심으로 귀명할 때 우리는 부처님의 마음과 상응한 것이고, 서로 마음이 통한 것입니다.

『염불원통장』에서는 “어머니가 자식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미타불의 제18원이 바로 ‘어머니가 자식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부처님의 자비심이 우리 시방에서 유랑하는 중생들을 억념하고 있기에 우리가 그 명호를 듣고 나서 ‘신심 내어 기뻐하며 내지 일념만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하여 저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입니다. 그 다음 ‘모자가 서로 그리워하면 서로 상대방을 버리지 않는 것’이지요. 부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도 부처님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즉시 왕생하여 불퇴전에 머물게 되는데’, 이때가 바로 부처님의 마음과 상응할 때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서로 부합하고 상응할 때가 바로 왕생이 결정될 때인데, 이는 임종의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임종은 단지 생명이 끝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은 즉각 해결되는 것이므로, 이것을 ‘평생업성平生業成’이라 부릅니다.

정토법문의 왕생은 언제 결정될까요? 시간을 보는 게 아니라 당신이 언제 부처님 명호의 공덕을 믿고 받아들이고, 언제 불력이 당신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가에 따라, 믿을 때 왕생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임종이 되어서야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도 임종 시 반드시 왕생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지금 바로 믿는다면 지금 바로 왕생이 결정되고 지금부터 안심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신심 내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염불을 하면서 몹시 번뇌하고, 왕생할 수 없을까봐 걱정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염불을 한다면, 이는 명호의 공덕에 대해 알지 못한 것이어서 다시 ‘그 명호를 듣고’ 정토의 교리를 이해해야 하고, 48원은 우리를 위해 세우신 것임을 알아야 하며, 특히 제18원은 우리 범부중생들의 왕생을 성취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의 신심은 증장하게 되고 마음속에 기쁨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중생의 신원행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능동적으로 시방중생을 부르고 계시고,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신 이래로 당신의 신원행으로써 우리 중생들에게 신원행이 있도록 한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앞의 18원에서는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를 말하고, 뒤에서는 “신심 내어 기뻐한다”고 말하는데, 이 두 가지는 약간 다릅니다. ‘지심’은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아미타불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믿는 것은 어떻게 표현될까요? 바로 ‘신심 내어 기뻐하는 것’이지요. 마치 우리 세간 사람들이 한 사람의 덕행과 지혜와 능력에 대해 확실히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해 매우 감은하고 매우 기뻐하는 것처럼, 자연히 매우 기뻐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부처님에 대해 정말로 마음이 놓인다면 자연스럽게 ‘신심 내어 기뻐하게’ 되겠지요.

이처럼 ‘신심 내어 기뻐하는 것’은 다른 종파에서 말하는 신심과는 다릅니다. 기타 법문에서도 신심을 말합니다. 예컨대 생사윤회를 믿는다든가, 인과응보를 믿는다든가, 수행을 통해 공덕과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 등입니다. 또 예컨대 『지장경』을 독송하면 28종의 공덕과 이익이 있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고 나서 반드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이론일 뿐이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우리가 인과윤회를 믿지만, 우리가 어떻게 믿든 간에 우리는 그것을 의지해서 윤회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타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수많은 이론들을 믿습니다. 그러나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말하지만 우리는 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단지 공허한 ‘믿음’만 있을 뿐이지요.

정토법문의 ‘믿음’은 다릅니다. ‘그 명호를 듣고 신심 내어 기뻐하면’ 힘이 있게 되는데, 이는 아미타불께서 중생들에게 ‘진실한 이익’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출세본회문’을 말할 때, 우리는 석가모니불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중생들에게 ‘진실한 이익’을 베풀어주시려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진실한 이익’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우리로 하여금 신심 내어 기뻐하게 하고, 안심을 하게 하고, 생사에 대한 두려움을 없게 하는, 이른바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크게 편안케 하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있는데, 이런 기쁨은 번뇌를 끊고 얻은 게 아니고, 우리의 수행을 통해 얻은 것도 아닙니다. 불력의 가피로 생사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하고, 생사가 이로부터 끊어졌다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기쁜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신심은 불력의 기초위에 세워진 것이고, 기타 법문의 신심은 수많은 이론의 기초위에 세워진 것이므로, 신심의 본질이 다릅니다.

불력으로 신원행을 성취하시고, 불력의 가피로써 능동적으로 시방중생을 부르시어 우리 중생들이 귀명을 하고 믿고 받아들일 때, 우리도 자연스럽게 신원행이 있게 됩니다. 중생의 신원행은 불력의 가피로 얻은 것이므로, 부처님께서는 능동적으로 우리를 구제하려는 것이고, 중생은 피동적으로 부처님의 구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정토법문은 능동과 피동의 관계이고, 바로 ‘어머니가 자식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모자가 서로를 억념하여 서로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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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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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사텍코리아 | 작성시간 20.01.31 고맙습니다
  • 작성자正覺道 | 작성시간 20.01.31 정전스님 법문은 쉽고 간결하여 저같은 하근기의 중생에게는 늘 가슴 깊이 다가 옵니다.감사합니다.
    나모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_()_
  • 작성자장우중 | 작성시간 20.01.31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 작성자반문문자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2.01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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