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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 감상

[불교회화]14. “정토에 왕생했어도 사바세계에 돌아와 중생을 구제하리라”-정토교의 대성자 선도

작성자무진당|작성시간15.05.04|조회수182 목록 댓글 1

조정육의 그림, 스님에 빠지다 14. 작자미상, 관경16관변상도

 

14. “정토에 왕생했어도 사바세계에 돌아와 중생을 구제하리라”-정토교의 대성자 선도

 

작자미상, 관경16관변상도(觀經十六觀變相圖), 고려, 비단에 색, 202.8×1297.8cm, 일본 서복사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어둠이 뒤덮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등불을 밝혀야만 겨우 사방을 분간할 수 있는 깊은 밤이었다. 선도(善導,613-681)가 골목길을 걸어오는 동안 담장너머에서 들리는 염불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아낙네의 목소리인가 싶으면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노인의 목소리인가 싶으면 장정의 목소리였다. 뒷집에서 시작된 염불소리는 앞집으로 이어졌다. 벽돌 담장을 타고 넘어온 남정네의 염불소리는 흡사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묵직했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서 흘러나온 노파의 염불소리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듯 다급했다. 염불하는 소리 사이사이로 탁탁거리는 작은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콩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사람들은 염불을 할 때마다 염불 횟수를 헤아리기 위해 작은 콩을 옮겨 담았다. 염불하면서 헤아린 콩의 숫자가 80석을 넘은 사람도 있었다. 집집마다 흘러나온 염불소리는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꾸면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벌떼가 날아가듯 때로는 강렬하게 꽃잎이 흩날리듯 때로는 부드럽게 염불소리는 밤하늘을 윙윙거리며 떠다녔다. 장안 전체가 한 목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고 있었다. 성을 다 빠져 나온 선도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그리고 밤을 잊은 채 염불에 빠져 있는 성안의 부처님들을 향해 지극한 마음으로 합장했다. 불법(佛法)만 있고 수행과 깨달음이 없는 말법(末法)시대에 염불은 부처가 부처를 부르는 행위였다. 어리석고 죄 많은 범부 중생이 그 모습 그대로 부처임을 표현하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염불삼매에 빠져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부처님들이여! 평안하시기를!

 

선도는 중국 정토교(淨土敎)의 대성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정토교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 출가하여 법화경유마경을 독송하던 어느 날 서고에서 관무량수경을 읽다 16관법(十六觀法)에 감동받아 정토왕생을 기원하게 되었다. 그는 염불만으로도 서방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여산(廬山) 혜원(慧遠,334-416)의 유적지를 찾아갔으며 종남산의 오진사(悟眞寺)에서 반주삼매를 수행했다. 그후 도작(道綽, 562~645)에게 가서 관무량수경강의를 듣고 염불왕생법을 전수받았다. 도작스님은 담란(曇鸞, 476?~542)에 이어 정토교 신앙을 독립시킨 스님으로 콩으로 염불 횟수를 헤아리는 소두염불(小豆念佛)도 그에 의해 시작되었다. 14세에 출가한 도작은 원래 열반경(涅槃經)에 정통한 학자였다. 그런데 48세 때 현중사(玄中寺)에 있는 담란의 비석을 읽고 감동을 받아 그때부터 정토문에 귀의했다. 담란은 원래 불로장생을 구한 도가(道家)였는데 보리류지에게 관무량수경을 받고 정토교리를 전파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용수와 세친의 사상을 받아들여 중국적인 정토사상의 체계를 세우는 데 앞장섰다. 그의 정토사상은 오탁악세가 아닌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청정한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사상이었다. 어리석고 나약한 범부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없다. 따라서 아미타불의 본원력(他力)에 의지해야만 한다. 담란은 법장보살의 48대원을 성취한 아미타불의 원력을 타력이라 하고 모든 중생은 이 타력으로 왕생과 불퇴전의 경지와 보살도를 완성한다는 타력본원설을 주장했다. 모든 중생은 48대원의 18번원인 염불왕생원 즉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왕생하기 위해 지극한 마음으로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아미타불을 다만 열 번만 불러도 극락에 태어난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타력은 증상연(增上緣)이라 불리는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스스로 노력해서 구하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다. 염불이 타력이면서도 자력인 이유였다.

 

담란은 덕이 높아 양왕은 그를 난보살(鸞菩薩)’이라고 존칭했고, 위왕(魏王)도 그를 신란(神鸞)’이라 존경했다. 그는 67세에 요산사(遙山寺)에서 입적했다. 물론 도작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도작은 직접적인 만남이 아니라 담란의 비문을 통해 그의 가르침을 따른 위패제자였다. 사상을 이어받은 도작은 하루에 아미타불의 명호를 7만 번씩 외우고 관무량수경200번이나 강의할 정도로 정토론에 매진했다. 도작은 날마다 현중사에서 아미타불이 거주하는 서쪽을 바라보며 하루에 여섯 번씩 예배하고 공경했다. 서쪽으로는 침과 콧물을 뱉지 않았고, 대소변도 보지 않았다. 도작은 불법을 수행하는 대중들이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을 돕기 위해 안락집(安樂集)을 지었다. 도작은 남북조시대에서 수당으로 교체되던 정치적 혼란기를 살았는데 소년기 때인 574년 북주 황제 무제(武帝)이 자행한 폐불(廢佛)으로 불상과 경전이 파괴되던 일을 겪으면서 자신이 말법시대에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말법사상은 북제(北齊)의 혜사(慧思)가 쓴 입서원문(立誓願文)에 처음 등장한다. 혜사는 불멸(佛滅)후 최초 5백년은 정법(正法)시대,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시대, 그 후 일 만년을 말법(末法)시대라고 규정했다. 정법시대는 불법과 수행과 깨달음이 갖추어진 시대, 상법시대는 불법과 수행만 있고 깨달음이 열리지 않는 시대, 말법시대는 불법만 있고 수행과 깨달음이 없는 시대라는 것이다. 남북조시대인 북제 천보7(566)에 천축승 나련제야사(那連提耶舍)’가 번역한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에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제1의 오백년은 불법을 닦아 해탈하고, 2의 오백년은 불법을 닦아 선정삼매를 얻고, 3의 오백년은 독송하고 듣기만 하고, 4의 오백년은 탑 쌓고 절 짓는 일이 성행하고, 5의 오백년은 사람들이 투쟁을 좋아하여 서로 다투어 부처님 법이 은몰한다는 내용이다. 도작은 이를 근거로 말법시대에는 정토문이 가장 적합한 교리라 생각하고 정토교학의 체계적인 이론을 정립하는데 매진다. 도작이 일으킨 정토사상은 그의 제자인 선도에 의해 계승됐다.

 

선도는 정토법문이야말로 말법시대의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법임을 깨달았다. 정토문에 대한 확신을 다진 그는 장안으로 돌아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교화에 힘썼다. 그 결과 3년 만에 성내에 가는 곳마다 염불소리가 가득했다. 선도는 불상제작에도 뛰어난 기술이 있어 679년에 당 고종의 명을 받고 낙양 용문(龍門)에 있는 대노사나불상(大盧舍那佛像) 제작과 봉선사(奉先寺) 건립 감독을 맡았다. 선도는 정토문을 보급하면서 시각적인 자료도 적절히 활용했다.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사경한 것이 10만 권에 이르렀다. 관무량수경에는 극락세계의 장엄함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극락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범부 중생들에게 극락은 상상조차도 힘든 곳이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선도는 극락정토의 세계를 담은 정토변상도를 3백포나 그려서 사람들의 신심을 북돋웠다. 또한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되는 지옥변상도도 함께 그려 서민들의 가슴속에 인과응보에 대한 가르침을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관무량수경의 극락정토는 흔히 왕사성의 비극으로 알려진 위데희 왕비의 간청으로 부처님이 한량없는 시방세계의 불국토를 비춰준 내용을 설한 경전이다. 빔비사라왕의 아들 아사세는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고 왕권을 찬탈한다. 남편이 아들에 의해 투옥되는 참담한 상황을 접한 위데히 왕비는 부처님께 아미타여래의 찬란한 극락정토를 보여 달라고 간청한다. 부처님은 위데히 왕비의 요청을 받아들여 위신력으로 16가지의 극락세계를 보여준다. 그 내용을 그린 그림이 관경십육관변상도(觀經十六觀變相圖):이하 변상도이다. 변상도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극락세계 16관 중 1-13관까지는 극락의 장엄함과 불보살을 관할 수 있게 구성했고 나머지 14-16관은 극락에 태어나는 왕생자(往生者)를 위한 세계다. 아무리 생각해도 극락세계가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그림을 보며 부처님이 설하신 극락세계의 13관을 살펴보자. 고려시대에 제작된 변상도는 선도의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토대로 제작한만큼 선도가 3백포나 그려 중생구제에 활용했다는 정토변상도를 추정해볼 수 있다.

 

변상도에서는 중앙 상단의 원을 시작으로 양쪽에 선을 그어 구획을 지은 다음 6관씩 13관을 배치했다. 1관은 해를 생각하는 일상관(日想觀 혹은 日沒觀)이다. 해가 지는 서쪽을 보고 극락정토의 아름다움을 관상한다. 2관은 물을 생각하는 수상관(水想觀)이다. 맑은 물을 보면서 극락의 대지를 관상(觀想)하는 수행법이다. 유리와 같은 정토의 대지가 넓고 편편하여 높고 낮은 데가 없으며 또 그 광명이 안팎에 두루 비친 모양을 관한다. 3관은 땅을 생각하는 지상관(地想觀)이다. 정토의 땅이 유리와 대지 위에 있는 황금의 도로, 누각, 화려한 의장기 등을 분명하게 관한다. 4관은 보배나무를 생각하는 보수관(寶樹觀)이다. 정토에 있는 칠보의 수목과 그 수목으로부터 나오는 광명에 대해 관한다. 5관은 보배연못을 생각하는 보지관(寶池觀)이다.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춘 팔공덕수(八功德水)가 충만한 칠보의 못을 관한다. 못의 물은 흘러 여러 갈래의 시내가 되고 흐르는 물소리는 괴롭고() ()하고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인 도리를 설한다. 6관은 보배 누각을 생각하는 보루관(寶樓觀)이다. 온갖 보배로 장엄된 국토의 경계마다 오백 억의 보배로 된 누각이 있으며 이 누각에서 수많은 천인이 천상음악을 연주한다. 이 음악은 모두 삼보(三寶)를 염하도록 설하고 있음을 관한다. 7관은 연화대를 생각하는 화좌관(華座觀)이다. 아미타부처님이 앉아 계신 연화좌대는 오백 억의 보배 구슬로 찬란하게 꾸며져 팔만 사천의 광명이 빛나고 있는데 이것은 아미타부처님께서 법장비구였을 적에 세운 서원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8관은 형상을 생각하는 형상관(像想觀)이다. 부처님은 법계를 몸으로 하는 법신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이 바로 법신이다. 부처님을 생각하고 관조하는 사람은 무량 억 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악업을 없애고 현재의 이 몸으로 염불삼매를 얻게 된다. 9관은 부처님의 몸을 생각하는 진신관(眞身觀)이다. 자마금색과 같고 다섯 수미산을 합한 것과 같고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추며 염불중생을 받아들이며 모든 중생을 섭수하신 아미타여래의 몸을 생각하는 관이다. 10관은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관음관(觀音觀)이다. 아미타불을 분명하게 본 다음에는 키가 팔십만억 나유타유순인 관세음보살을 관한다. 헤아릴 수 없는 자비와 광명을 지닌 관세음보살을 관한 사람은 어떤 재앙도 만나지 않고 업장이 말끔히 소멸되어 무량한 복을 얻음을 관한다. 11관은 대세지보살을 생각하는 세지관(勢至觀)이다. 대세지보살은 온 몸에서 지혜의 금색광명이 발해 무변광이라 한다. 대세지보살은 오백 가지 보배꽃으로 장식된 보배관을 쓰고 다닐 때마다 시방세계의 일체 모든 것이 진동한다. 12관은 두루 생각하는 보관(普觀)이다. 자기가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연꽃 속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는데 그 연꽃 봉오리가 오므라졌다 활짝 피어나는 생각을 해야 한다. 13관은 섞어 생각하는 잡상관(雜想觀)이다.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부처님이 연못 위에 있는 것을 관조해야 한다. 아미타불이 시방세계의 모든 국토에 나타날 때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도와 두루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관하는 것이다. 1관부터 13관까지는 부처님이 위제희 왕비를 위해 설한 극락정토의 세계다.

 

그런데 선도는 관무량수경을 관불삼매(觀佛三昧)와 염불삼매(念佛三昧)의 두 가지 법을 밝힌 경전이라 설했다. 1관부터 13관까지의 정선(定善)은 관불삼매에 관한 것으로 위제희왕비를 대상으로 한 경전인 반면 14-16관까지의 산선(散善) 3관은 염불삼매에 관한 것으로 미래세상의 산란한 마음을 가진 모든 범부를 위해 부처님이 스스로 설하신 경전이라 했다. 산선 3관은 왕생자의 수행이나 근기에 따라 아홉 종류의 극락(九品往生)으로 구분했다. 즉 상품삼생(上品上生,上品中生,上品下生)과 중품삼생(中品上生,中品中生,中品下生), 하품삼생(下品上生,下品中生,下品下生)의 극락이다. 변상도에서는 그림 중앙에 왕생자가 태어날 극락을 상배관(上輩觀), 중배관(中輩觀), 하배관(下輩觀)으로 단을 지어 묘사했다. 어찌 보면 이 그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전각 속의 불보살님과 기화요초로 가득한 연못의 연꽃에서 왕생자가 태어나는 모습을 그린 산선 3관은 변상도의 진짜 본론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이 설법하신 불회(佛會)장면과 더불어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다. 보는 것으로 이해되는 극락세계. 그것이 그림의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맨 아랫단의 연못 옆에는 마정수기(摩頂授記) 장면이 그려진다. 부처님으로부터 다음 생에 부처가 될 인연을 가진 사람에게 예시를 내리면서 행하신 수기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렇게 행복한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을까. 선도는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독송, 관찰, 예배, 칭명, 찬탄공양의 다섯 가지 정행(正行)을 제시했다. 즉 일심으로 정토삼부경을 독송하는 것, 일심으로 정토와 아미타불의 장엄을 관찰 억념하는 것,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예배하는 것,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것,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찬탄공양하는 것이 극락왕생의 다섯 가지 수행방법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칭명이야말로 올바른 왕생의 요인인 정업(正業)이고 나머지 네 가지는 칭명을 돕는 조업(助業)이라 했다. 즉 극락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일심으로 오로지 미타의 명호를 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도가 주장한 칭명염불이야말로 말세에 죄 많은 범부중생이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기대어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수행법이다. 급하면 굳이 많이 외울 필요도 없다. 그저 지극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충분하다. 그러나 목숨이 끊어지는 위급한 순간에 열 번을 온전히 부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평소에 연습이 되어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선도의 칭명법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극락정토 왕생은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정토교의 가르침은 날마다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었다. 그런데 선도는 범부중생의 극락왕생에서 멈추지 않았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 정토에 왕생했으면 그곳에서 혼자 행복을 누리고 즐기는 대신 다시 사바세계로 되돌아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해야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이것이 회향발원심(廻向發願心)이다. 회향발원심이야말로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겠다는 대비심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평생을 민중 교화에 힘쓴 선도는 681년에 69세로 입적했다. 그의 가르침은 중국과 한국을 넘어 일본에까지 건너가 일본 정토종의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은 법보신문 1289호(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6477)에 실렸습니다.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읽기(http://blog.daum.net/sixgardn/15770803)에서 가져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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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법안(法眼) | 작성시간 15.05.04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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