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와 봄바람
숲 속 마을에 아주 커다란 도깨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도깨비는 우리 몸의 열 배나 될 정도로 엄청 컸습니다.
눈은 왕방울만 하고, 입도 커다란 항아리 같았어요. 다리나 팔은 웬만한 집의 기둥처럼 크고, 머리에 달린 뿔도 무척 컸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큰 것은 동굴처럼 뻥 뚫린 콧구멍이었어요.
그 코에서 나오는 콧바람은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
도깨비가 숨 쉴 때마다 콧바람은 언제나 '씽. 씨잉' 바람 소리를 내면서 사방으로 흩어지곤 했습니다.
도깨비 콧바람이 지나가는 곳에는 눈보라가 일고, 얼음으로 얼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도깨비가 사는 마을은 언제나 겨울이었습니다.
산봉우리는 늘 두꺼운 눈 얼음이 쌓여 있었고, 골짜기의 물도 꽁꽁 얼었습니다.
골짜기에 놓인 물레방아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물 속에 살고 있는 붕어나 송사리들도 얼음 속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니까요.
꽃나무들도 싹을 틔우지 못했어요. 행여나 싹을 틔우려고 꿈틀 했다가도 도깨비의 콧바람을 맞아 그대로 버썩 얼어버렸거든요.
도깨비가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봄의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봄바람들이 살고 있어서 언제나 따뜻했습니다.
이 마을은 언제나 꽃으로 덮여 있었어요.
빨강, 노랑, 주황, 분홍, 보라, 자주, 하양.......
갖가지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 꽃 숲을 이루었고, 그 위로 오색 빛 무늬를 가진 나비들이 팔랑팔랑 춤추며 날아다녔습니다. 새들은 날마다 찾아와 커다란 날개로 하늘을 깨끗이 쓸어주었어요. 이 마을에 사는 이들은 꽃빛깔과 꽃향기, 새들의 고운 노래로 몸과 마음이 모두 예쁘게 물이 들어 있었지요.
봄의 마을 꽃 숲에는 아기 봄바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기 봄바람은 호기심이 많아 늘 한 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사방을 날아다녔어요.
“오늘은 봄의 숲 바깥에 어떤 마을이 있는지 구경해 봐야지.”
어느 날, 아기 봄바람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살그머니 봄의 마을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꽃 숲을 가로질러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여름 마을을 지났습니다.
여름 마을은 뜨거운 햇살이 짜랑짜랑 내려 쬐어서 지나가는데 온 몸이 후끈거렸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물장구를 첨벙청벙 치면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야, 신나겠다. 물보라가 구름처럼 일어나네.”
아기 봄바람도 아이들처럼 물놀이를 하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렸습니다.
여름 마을이 끝나는 곳에 가을의 마을이 있었어요.
가을의 마을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숲이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이 들어서 비단 옷을 입은 것 같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과일마다 달콤한 냄새가 퐁퐁 쏟아져 나오고 있었어요.
“참 고와요. 어쩜 이렇게 고울 수가.......”
아기 봄바람은 사과나무 가지에 잠시 앉아서 빨갛게 익어 가는 사과의 볼을 가만히 만져 보았어요. 빨갛던 사과 얼굴이 더 빨개졌어요.
아기 봄바람은 가을의 마을을 지나서 도깨비가 살고 있는 마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유, 추워! 이렇게 추운 마을도 있었나?"
아기 봄바람은 온몸이 그대로 얼어버릴 것 같아서 몸을 움츠렸어요. 그리고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는 숲과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모두들 눈을 감고 자고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어서 일어나 보세요!"
아기 봄바람은 하얀 눈이 쌓여 있는 나뭇가지를 흔들었습니다.
"누구냐?"
나무가 눈을 부스스 떴습니다.
"봄바람이에요. 어서 일어나 꽃을 피우셔야지요."
"봄바람? 봄바람이 뭐지?"
나무는 귀찮다는 듯이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