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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불교방

성벽 바위 틈에 이야기가 채곡채곡 1 - 스님 장군과 매 바위

작성자이슬기|작성시간22.08.27|조회수87 목록 댓글 0

왕은 부랴부랴 왕자들을 강화도로 피난 보내고 일부 완성된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벽암 스님은 스님 병사들 천 명을 모아 쳐들어오는 청나라 군사들을 향해 진격을 했습니다.

드디어 적과 마주쳤습니다.

이때 적진에서 달려 나오던 대장이 앞장서서 진격하는 스님을 보고 갑자기 멈칫했습니다.

“혹시 김벽암 장군이 아니십니까?”

“아니, 당신은?”

“그렇습니다. 지난 날 과거장에서 칼을 떨어뜨리고 목숨을 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적장이 되어 나타난 게요?”

“사실 나는 그때 조선의 정세를 염탐하러 왔다가 과거 시험을 치른다기에 한 번 응시를 해 본 것이지요. 하마터면 장군에게 목이 달아날 뻔했었지요. 그 때 내 목을 쳤어도 어쩔 수 없었는데 살려주어서 고마웠소.”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다시 승패를 가립시다.”

“좋습니다. 내일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요.”

이튿날 아침.

스님은 의병들을 이끌고 다시 적진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들판에 진을 쳤던 그 많던 적군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편지를 매단 창이 하나 꽂혀 있었습니다.

“김벽암 장군! 지난날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냥 돌아가오.”

이렇게 하여 스님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산성으로 돌아온 스님은 성 안에 장경사라는 절을 지어서 스님 의병들의 본부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청나라의 공격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왔던 임금은 전쟁이 일어난 지 45일 만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남한산성은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2>

 

만주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후금(나중에 청나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명나라는 물론 우리 조선까지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라에서는 수도를 방어하는 남한산성과 강화성을 쌓기로 하고 남한산성 쌓는 일에 북쪽으로는 벽암대사(각성 스님)에게 맡기고 남쪽으로는 이회 장군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북쪽 성벽을 맡은 벽암대사는 승려들을 동원해서 예정 기일보다 앞당겨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공사비용도 남아서 반납까지 했습니다.

남쪽을 맡은 이회는 절반도 쌓지 못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사비용까지 부족해졌습니다.

언제 외적이 군사를 동원하여 쳐들어올지 모르는 정부는 초조해졌습니다.

“아니, 북쪽은 이미 완성하고 남은 공사비까지 반환했는데 남쪽을 맡은 이회는 왜 이렇게 느려빠진 것이냐?”

나라에서는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공사를 맡은 부서 책임자와 관계자들은 엉뚱하게도 그 책임을 이 회 장군에게 떠넘기기 위해 없지도 않은 말을 꾸며냈습니다.

‘이회 장군이 술과 여자를 좋아해서 나라에서 준 공사비를 빼돌려 공사가 부진하다.’

이런 소문은 공사 현장에까지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이회 장군의 부인 송 씨까지 나섰습니다.

“대감, 나는 당신의 성격을 잘 알아요. 절대로 술과 여자에 빠져서 공사를 늦추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요. 너무 염려 마시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서 추진하세요. 모자라는 공사비는 제가 나서서 구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송 씨 부인은 3남 지방(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성을 쌓는 데 필요한 비용을 모금하기 위해서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회 장군에게 책임을 물어 참수형(칼로 목을 치는 형벌)에 처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억울합니다. 저는 공사비로 술이나 먹고 꾀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을 튼튼하게 쌓기 위해 최선을 다 했을 뿐입니다. 한 번만 더 참고 맡겨 주십시오.”

이회 장군은 눈물로 하소연을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회 장군은 남한산성 안에 있는 서장대 뜰로 끌려 나갔습니다.

“나는 정말 억울하다. 내가 죽은 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죄가 없다고 믿어 다오.”

이회 장군은 참수를 당하기 직전 하늘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잠시 후 망나니들의 칼이 이회 장군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습니다.

이회 장군이 쓰러지자 장군의 목에서 매 한마리가 날아 나오더니 근처 바위에 앉아 목 놓아 슬피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런.......장군의 목에서 매가 날아 나오다니.”

근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매는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매가 앉았던 바위를 보니 매 발톱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이회 장군은 억울하게 죽었다.”

사람들은 비로소 이회 장군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회 장군이 책임을 맡았던 지역의 성곽을 살펴보니, 아주 견고하게 쌓아져서 빈틈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공사를 하면서 부정한 일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심혈을 다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사연을 모르고 송 씨 부인은 공사비로 모금한 쌀을 배에 싣고 공사장으로 서둘러 오고 있었습니다.

“이회 장군이 억울하게 죽었대.”

배를 타고 오던 송 씨 부인은 배 안에서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나랏일을 위해 밤낮으로 애쓰던 장군에게 그렇게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일 수가 있습니까?”

울음을 터뜨린 송 씨 부인은 한참을 통곡하다가 그대로 강물에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이회 장군의 목에서 나왔던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 바위라 불렀습니다.

원래 이 매 바위에는 실제로 매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였습니다.

어느 일본인 관리가 남한산성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그도 매 바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 참 신기한 일이로군. 저 발자국을 떼어다가 우리 집 정원 장식품으로 써야지.’

매 바위를 본 일본인 관리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망치와 정으로 매 발자국이 찍힌 부분을 떼어냈습니다.

쾅!

그가 남한산성을 막 벗어날 때였습니다.

멀쩡한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더니 소낙비가 쏟아지면서 요란한 벼락 소리가 났습니다.

일본인 관리는 피를 토하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지금도 남한산성 수어장대 마당에 가 보면 그 때부터 전해지던 매 바위가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채 오고가는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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