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원 (時間과 生死의 장 8)
시간과 생사의 장 8
중국 도교나 유교의 이념 원류는 대승사상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도 이들과 교류를 통하여 道를 접함으로 단순화 되어 3승을 잊어 버리고 道를 1승화하여 표면적 형식상의 1승을 취함으로 불교의 깊고 묘한 취의(聚義)를 떠난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밀하자면 무극이나 태극은 道의 단순한 경지를 근간으로 하여 전승되어 그것으로는 불법의 심층 교의에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화엄의 법리를 태극 무극에 접합시켜 임기응변의 적용을 하였습니다. 불법의 교의는 연기법만 해도 전체 우주의 전개가 한눈에 펼쳐져 직접 불안(佛眼)으로 확인 되는 경지입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를 일별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텅빈 상태를 구경으로 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극을 쉽게하여 음양 理氣로 나누면 현대 과학자들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천지개벽으로 이기 음양이 분리 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호융합하는 원리는 부처님의 연기법이 간직하고 있으며 理事의 연합된 상징의 징표(徵標)는 매우 난해한 철리(哲理)를 통과해야 합니다. 즉 대승의 법리를 거쳐야 합니다.
지혜의 속성을 실현하는데 내재하는 理는 理事를 공유하나 다만 理의 입장에서 이를 실현해 현상계인 우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법계는 事인 물질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즉 많은 물질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 자기 공간을 이미 확보하고 있습니다. 현상계가 펼쳐지자 事가 되어 시간과 공간은 이미 자기 것이 아니며 시공간에 지배되는 한정되는 物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시공은 理가 물질화되어 전부 물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영혼의 씨도 겉에 옷을 걸쳐 物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모두는 저쪽에서 넘어올 때 축소된 굴과 같은 통로를 지나왔기 때문에 회귀할 때는 반드시 같은 경로를 거쳐야 복귀할 수 있습니다.
이 쪽에서는 理界에서 빌려온 한정된 시공간이 있기 때문에 生死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현상계는 원래 시공이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 임시로 생겨났다가 없어지기 때문에 幻과 같습니다. 그래서 중생인 현상계는 비록 幻과 같은 세상이라도 현실적인 시공간에 의해 자기 몸이 구속되기 때문에 즉 말하자면 물질인 에너지는 운동력의 제한성으로 기운이 소멸되면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사후세계의 적용을 받습니다. 사후세계는 이법의 세계이나 기운이나 다른 몸을 걸치고 있기 때문에 다시 기운이 소멸되면 죽음이 닥아와 현상계와 다름없는 고통의 세계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현상계는 현실이므로 이것이 우리에게는 무서운 현실입니다.
생과 사, 병고(病苦)는 물질인 육신과 영혼이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아직 과학도 어쩔 수 없는 분야입니다. 고성에 있는 절에 다닐 때 할머니 들은 시간이 많아 절에 살다 시피하므로 주지스님으로 부터 영혼체 이야기를 많이 들어 이미 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점심 공양 시간에 우리들도 많이 옆에서 들어 배웠습니다.
생사 삶 시간 이런 문제는 영혼을 떠나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의 원류는 無明과 진화라는 과정에 따라 지혜가 착각을 일으켜 점점 물화를 통하여 범주가 축소됨으로 현상계에서 생명과 사람으로 진화를이루어 이때 영혼은 물속의 사람 영상처럼 영혼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는 理法체이나 무명으로 압박되어 자기을 전혀 발휘할 수 없습니다. 지혜체이므로 육체가 가진 사람 장기는 모두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병으로 고통을 당하여 약사여래를 염불하면 인연있는 중생에는 즉각 오셔서 먼저 영혼체의 장기를 치료하든지 심하면 약사정토의 장기로 교체하여 주십니다. 영혼체의 장기 까지 병이 침투하면 매우 위중한 상태입니다. 영혼체가 치유되면 육신은 점점 호전되어 치유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치료는 원인인 업장을 제거해주시므로 재발하지 않습니다. 命이 경각을 헤메거나 혼절 상태로 지속되어 질 때 완전한 회복은 세존(世尊)의 승락이 있으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 일 때 佛果를 증한 분의 간청으로 절차가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생명이나 시간과 공간은 원래 이법계의 소속으로 이 를 성취한 분은 세존인 석가여래 이십니다.
어떤 수행자는 全無한 상태인 순수한 無로 진입함으로 이세상과 저세상에서 소멸되어 사라져 없어지려는 노력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한편 보통의 무종교인 들은 사람이 죽으면 無로 돌아가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장애로 부터 자유로워 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관념의 오류와 착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존재와 구성요소는 상호의존과 연계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므로 독자적인 자신과 존립은 없는 것으로 오류와 착각입니다. 따라서 全無한 것은 잘못된 관념입니다. 지구상의 인류중 절반이 이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법의 정립에 대한 확립의 미비로 개인적 경험의 증험을 기반으로 각가지 법리를 주장하여 일반 사람들은 혼란하여 차라리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無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理法界와 현상계는 무슨 연결고리가 있으며, 해법을 강구하는데 생명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 주목하면, 우리 세상 자체가 여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제부터 理界와 事界를 논의하면서 먼저 理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 있어야 합니다. 이 理는 글자 그대로 이치입니다. 우주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원리이자 근거가 되는 설명서 입니다. 즉 말하자면 이치중 가장 수승한 원리를 말하며 그래서 이 原理는 살아있는 지혜가 되어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理界와 事界는 변동없는 한몸입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저 먼 理界에서 黎明의 태동으로 현상계를 이루었다라고 볼 수있지만 理의 입장에서는 현실을 통해서 理가 성립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理와 事는 항상 같이 있습니다. 즉 智慧가 있으면 無明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이치입니다. 어둠이 있어 밝음이 있습니다. 현상계는 역사의 열림이며 空인 이법계는 역사의 닫힘입니다. 이는 事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며 理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소유하고 있어 역사라는 개념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과 시공간에서는 역사가 성립됨으로 마땅히 순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理界와 현상은 양면으로 함께하므로 현상계의 법칙에 순응하나 이를 조종하여 변화를 취할 수 있어 층층의 上界人이 존재함으로 신통으로 법리를 역류할때 사람몸을 받아 올때는 반드시 염라대왕(열시왕)의 문책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사람몸을 걸치면 3차원 세계에 갇히며 태속의 아기는 지혜가 없으며 뇌 자체가 미숙하여 점차 성장하면서 전생의 업이 작동하여 理法을 파괴한자에게는 나쁜 환경이 따라와 결국에는 죄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는 理界 자체가 현상계가 있음으로 존립할 수 있음으로 이법의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자는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즉 과학적으로 말하면 미세 세계를 잘못 활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통은 부처님의 인정하시는 범위내에서 가능)
현상계와 이법계가 같이 있으므로 理와 事가 한 묶음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理界에서는 事의 법칙이 적용되며 事界에서는 理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즉 천지개벽 이전에 이미 물질 같은게 전부 마련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와 무명의 공존)
여기서 먼저 理의 구도와 성립을 조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생명과 삶은 있기는 하되 방향은 잡히지 않습니다. 理事가 같이 있으므로 지수화풍과 같이 攀緣(반연)하여 연기법입니다. 이러한 理는 이치적 원리와 사물이 같이 있으나 事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理界에서의 理는 숨어있어며 事界에서 事가 완전히 정립될 때 자기 활동을 보이지 않게 펼치고 있습니다.
理는 2가지 내용의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理事가 있어 연기법이나 실질적으로는 空이며 기대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2번째 의미는 이 理事가 12연기와 같이 전개 발전됨으로 일정한 理法이 우리의 생명과 삶에 영향을 미치며 또한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제되어지는 법리로 이를 무시할 때는 그 과보로 괴로움을 당한다는 범주속에 있다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우주는 다차원을 보유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연계하여 흐르며 상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치와 합리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논리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理法의 차원성으로 3차원의 고착된 物化적 현실로 다차원의 경계를 우리의 관념으로는 넘나들 수 없습니다. 이러한 智的 환경 변화를 수용함으로 우리의 미래는 散積된 難題를 벗어나 새 삶을 열 수 있습니다.
지금 현실의 事的 우주 공간은 1중 인다라망의 物化로 펼쳐진 세계입니다. 중생과 붓다님이 변동이 없이 일정한 것은 진리의 시공간을 理的으로는 측량할 수 없으나 현실적인 事로 판단으로 할 때는 즉 理를 인다라의 구슬을 事로 사용할 때 테두리 내에서 數理는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빅뱅시의 인다라망(3,4중)은 그 그물망 줄이 와해 된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연화장을 벗어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관념으로 본래는 변동이 없어 스스로 회귀하는 데는 이상이 없습니다. (중생이 본래 없으나 그 이름이 중생이며, 항하사수의 중생 마음을 모두 다 안다는 금강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현실의 시공간은 만들어진 물질 생명의 時空으로 假想의 관념입니다. 실질적인 진실의 時空은 물질적인 육안으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가령 원이나 점이나 하늘이나 지구나 이렇게 나타나 보이는 것은 우리가 움직이는데 그만큼 장애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時空은 3차원에서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이 3차원에서 출발하여 一乘인 붓다님 경지에 이르므로 전 차원을 아울러 관통하는 경지는 흔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時空은 차원에 따라서 高次元 일수록 적은 흔적으며, 큰물질은 低次元으로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의 미세 세계로 들어 갈수록 광범위한 時空間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理界에서 우리가 올 때 이런 공간을 거쳐 왔기 때문에 지금 세계와 저쪽 세상은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緣起法입니다.
사실 우리들 생명은 3차원 남섬부주인 지구에서 탄생되었습니다. 인식하고 생각하는 의식은 복잡한 뇌기능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것의 뿌리는 저쪽에서 건너온 지혜체입니다. 이는 진화의 과정으로 物化되었기 때문에 한정되어진 상태에서 누적된 경험으로 영혼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의 실체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누군가 물질의 몸을 나라고 한다면 그는 영영 물질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은 지혜인 영혼으로 우주의 본원인 지혜의 意中과 熱望을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因果와 業報가 맞물려 돌아가며 지혜의 국토가 자연히 형성되어 스스로 만든 환경에 스스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화를 통해 인간이 되는 과정과 인간에서 사회적 理性의 인격을 이루기 까지는 惡毒한 연출이 스스로 惡道와 지옥을 만든 것이며 이것 없이는 교화의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희생의 재물들이 모두가 똑같은 지혜체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如意珠로 요술 방망이 입니다. 따라서 척이나 원한을 맺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不義로 지혜를 해치고 압박할 때는 자타 구별 없는 것이 지혜입니다.
經에서는 보이는 사물이나 생명체를 一合相이라고 합니다. 3차원 현상계는 원자라는 입자가 구성요소로 이것 밖에 없습니다. 理法계는 지혜체가 기본 요소로 이것 밖에 없습니다. 그 중간에 나타나는 입자는 4차원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혹은 경계지역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상계를 근거한 기체인은 3차원입니다. 4차원은 현상계를 벗어난 세계입니다. 물론 모든 차원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一合相은 구성요소의 결합으로 이것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 몸도 해체되면 없어지고 의식도 5관과 뇌가 정지되면 없어 짐으로 물질과 의식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經에서는 一合相 자체는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단 범부들이 여기에 매달려 탐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영혼과 범부가 연관되어 의존함으로 연기법이라 합니다. 다만 죽음으로 차원이 전환되면 미세물질에 의한 의식이 영혼에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미세는 3차원이 아님)
생명의 진원 (時間과 生死의 장 ) 2부
시간과 생사의 장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