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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

[스크랩] 시간과 생사의 장 4부 7

작성자ohry|작성시간15.07.23|조회수84 목록 댓글 3

시간과 생사의 장  4부 7      
우리는 유한한 것에서 출발하여 바라는 욕구는 무한을 추구하여 필연적인 충돌과 경쟁, 쟁탈로 거의 질식상태에 이르러 즐거운 사람이나 불행한 사람이나 오십보 백보이며 거기서 거기입니다. 한 백년 행복한 삶이나 고생의 백년이나 죽음후에 차이가 없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의 가치를 우리 생에다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  苦集滅道 4성제가 唯一無二한 최고의 진리로 뜨오르는 것은 고통의 원인을 규명하기 때문입니다. (법성과 연기)
대승경전의 시공간이나 여러 성현들의 세계 특히 불보살님의 활동 영역에 대해서 물질의 3차원 현상계에 사는 우리는 사람의 관념을 갖고는 이해하고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뿐만아니라 당장 현상계 우주에 함께 살고 있는 기체인에 대해서도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영가(靈哥)에 대해서는 五里霧中입니다. 佛法에서는 三藏 경율론을 통하여 우주의 진리를 피력(披瀝)하고 있습니다. 특히 論藏은 어려운 經을 조사나 법사들이 쉽게 풀이해 놓은 것입니다. 이 분들은 주로 불보살님의 후신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원전의 經을 많이 번역하신 구마라집은 붓다님의 후신이라고 합니다. 이런 분은 자기 佛身을 연화장에다 두고 오셨기 때문에 다시 연화장에 복귀하십니다. 가령 보살일 경우에는 자기 菩薩身에 복귀하여 극락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처럼 경과 논장의 저술은 불보살님이나 고승의 각고의 노력으로 편찬된 것으로 매우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화엄경은 용수보살이 용궁에서 내용을 익혀서 나와 집필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5여래의 한분인 보명붓다님은 용궁의 용왕들을 관장하시면서 붓다님의 출세후 說하신 법설 1부를 보관한다고 하십니다. 화엄경의 내용이 워낙 난해하고 어려워 화엄조사들이 경에 들어가기 전에 선독하는 것으로 화엄현담을 만들었습니다. 즉 말하자면 차원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풀이 라고할 수 있습니다.
특히 조계종의 중천조(重闡祖)인 보조 스님은 이통현 장자의 화엄경론을 보고 경책을 머리에 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했습니다. 그리고 화엄4조 징관(청량)이 지은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에서 화엄경현담 8권으로 요약해 玄談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화엄경론 모두는 현담입니다. 청량조사의 것이 방대하고 상세하기 때문에 이것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의상대사의 동문인 법장은 60화엄, 징관(738-839)은 80화엄을 본경으로 사용했으며 징관은 원효대사의 저술인 대승기신론소를 그당시 배웠습니다. 이 당시 황제 측천무후께서는 화엄의 전역과 홍포에 많은 공헌을 한바 있습니다.
이처럼 화엄에 대한 서술의 나열은 이 경의 중요성과 화엄철학이 인생과 우주적 진리를 이해하는데 너무나 중요한 비중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현담은 몇가지 내용의 안목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四法界(이법계,사법계,이사무애,사사무애), 十玄門(동시구족상응문,인다라망경계문등), 六相圓融(총상,별상,동상,이상,성상,괴상), 그외 12연기나 법성등이 있습니다. 앞서 조계종 중천조인 보조(지눌)스님이 이통현 장자의 신화엄경론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은 붓다님의 능력과 연화장세계의 중중의 전개 그리고 원융과 융섭으로 하는 조화세계, 이러한 妙理가 화엄철학에 있음을 보고 參禪의 대가로서 실천적 행위의 향방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시간과 공간, 생명과 삶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진리에 대해서 事理에 합당한  무언가를 선언할 수 있습니다. 이치와 논리에 맞아야 함으로 먼저 화엄철학인 현담에도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과학적 인문의 정보와 해석을 같이 병행해야 사회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공간 우주 생명 기 삶에로 들어가야합니다. 
찰라생 찰라멸하는 것이 무한의 능력으로 항상 현재하여 어떤 사람은 마음이라 하지만 이는 유한이라는 생명의 매개체로서 氣가 있어 피안과 차안을 잠시동안 이어주고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몸체와 영혼체, 3차원과 4차원을 연결하여 物이 아니면서 物과 같이 하여 반차원체(半次元體) 즉 중간물질이라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각 차원에서도 氣가 있어 마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령 4차원의 영가의 환경은 모두 영혼의 물질을 이루지만 여기서도 4차원의 氣가 있어 몸과 영혼을 연결하면서 마음을 이루고 있습니다.
法性의 한계는 우리 인식 밖에 있어 측량할 수 없으나 다만 우리와 함께할 때만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찰라생 찰라멸 함으로 十玄門이 성립하여 인다라망경계문이 있어 여기서 3세 과거 현재 미래라는 고유의 시간이 있으며, 성주괴공이라는 자연법칙이 만들어져 인과응보와 연기법이 생명과 융섭되어 있습니다.
氣라는 것은 物의 역할을 하는 이법체입니다. 여기는 물론 영혼의 종자는 없습니다. 빅뱅이 일어날 때 서로 참가하는 무리의 인자들은 물질과 영혼의 종자로 분리되며 이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인자들은 그들의 착각과 관념으로 또한 이 운동의 영향으로 모두 3차원의 요소로 변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法性의 본질적 요소인 과거 현재 미래는 어디에나 무엇에나 항상 있습니다. 가량 사람에게는 현재 살아 있어 현재이며 죽으면 과거이나 영혼체가 있어 미래입니다. 한편 理法의 因子는 생명이 아니어서 3차원의 인식 즉 내가 없으므로 빅뱅이 일어난 인다라에서는 3세가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재 빅뱅이 일어나 현상의 3차원으로 인다라는  모두 비워졌으며 이것은 이미 과거에 해당하며, 현실의 실질적 빅뱅은 참가한 인자들에 한해서 인자나 구슬이 가량 한 30%라면 30%는 없고 나머지 70%만 있습니다. 너머지 70%는 3차원 氣라는 것으로 3차원에 내려왔으며 이는 이미 과거이며 현재는 인다라에 그대로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인다라는 30%는 없는 70%가 있습니다. 한편 미래의 인다라 인자는 그대로 있으므로 인다라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비었다고 합니다. 이 70%의 氣의 인자는 理法體입니다. 현상계에서 물질 역할을 함으로 영혼과 물질을 연결하며, 영혼체의 물질과 기능은 같으나 3차원에 내려온 영혼의 물질입니다. 사람 몸에는 피가 생명이며 영혼에게는 氣가 3차원의 생명입니다. 머리속에 있을 때 먼저 서술했습니다.    
여기서 알수 없는 신비의 理法 세계가 있습니다. 수행자가 理法속으로 역류해 거슬러 올라갈 때 처음 도달하는 곳은 저 넘어의 理法세계가 아니고 이쪽 3차원의 氣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氣라는 것은 3차원 물질의 기능을 갖춘 理法體이므로 이것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갖춘 理法의 시간속으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이미 저쪽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과거의 理法이므로 그리고 4층인다라는 원래 자기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빅뱅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층인다라는 구조적으로 역류가 차단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30% 인자의 현상계는 현재에 해당하는 인자로 저쪽의 理法界에는 30%에 해당하는 인자는 비워져 있습니다. 나머지 70%인자는 현재 인자로 존재하고 있으나 과거의 인자는 이미 현상계로 내려가 여기에는 없습니다. 세상이 멸망할 때 과거의 인자인 氣는 있을 곳이 없어 의미가 사라져 그 氣의 세계는 저절로 소멸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현상계 자체가 시공간이 없는 가상의 세계입니다. 4중인다라는 원래 자기 시간이 없는 理法세계에서 한시적 시간을 가져 有限한 생명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관에 대한 지혜의 견해로 직관적 지적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理法觀으로 즉 현상과 理法이 어떻게 어울려 있는가에 따라서 그 이치를 따라서 생명을 운용할 때 영혼체가 나타나며 숨어 있던 4개 영혼체 세계가 차원계로 전개될 때 우리는 모든 차원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3세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따로 있다고 치면 이치적으로도 볼 수 없습니다. 法性이 이를 본다는 것은 3세의 구분이 없고 생명과 중생이 法性과 무관하기 때문에 상대를 비출 수 있습니다. 범부의 마음을 살피는 것은 法性이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法性과 마음과의 관계 설정이 대두(擡頭)하고 있습니다.
법성과 사물의 관계에서 그리고 인과적 관계에서 起而不起, 不起而起로서 법성은 理體이기 때문에 일어나 활동했으나 그 증거를 찾을 수 없고, 또한 움직임이 없이 가만있으나 여러 작동을 다 했습니다. 가령 2중인다라는 완성되어있으나 그 기반이 되는 1중인다라는 있는지 알수도 없으며 1중 자신은 그대로 있습니다. 일어 났으나 일어난 바 없으며, 일어 나지 않았으나 벌써 일어 났습니다. 즉 이것은 사물이 형성되어지는 과정을 말하며 진화를 뜻하고 있습니다. 주변함용(周徧含容), 事事無碍,동시구족상응문등 모두가 법성의 작용으로 적용할 때는 하나로 융합 통섭되어 어긋나거나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있는 것은 법성 밖에 없습니다. 마음이나 생명현상도 진화의 과정에서 도출되어 일종의 집착이 영구이 작동되어 자기화 된것이며 진화의 무의식으로 부터 진행되어 고착되어 있어 생명이란 것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상관관계를 이루어 자연히 이런 관계가 형성되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법성은 무한대를 이루고 있으나 생명이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즉 유한한 마음과 생명으로 인하여 법성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유한하다는 것은 생명을 뜻하여 마음 자체가 유한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집착으로 이것의 본성이자 본질을 뜻해 법성과 마음은 항상 함께하나 같은 것은 아닙니다. 즉 법성과 무명이나 생명에 의미있는 것은 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부터 四聖諦가 있으며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유한과 무한은 대칭을 이루어 유한은 무한 옆에 항상 붙어있어 선택은 자기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나 이전의 마음은 지혜를 가질수 없기 때문에 그냥 無明입니다. 
따라서 氣를 떠나 理의 세계로 가야한다는 즉 事를 버리고 理라는 불멸의 세계로 향한다는 一念이 현재할 때 막힌 4중인다라는 본체로 연결되어 3중인 아라한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此彼, 理事를 불문하고 시간과 공간은 항상 있습니다. 원소나 인자가 있다는 것은 시공간을 뜻하며 1중인다라는 즉 그 공간의 세계는 무한대를 뜻해 인자가 나타나거나 형성되지 않았으며 출현하는 고유의 지혜자체 이므로 진화를 통해 모든 지혜를 涉獵(섭렵)함으로 인자가 성립되어 점점 유한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법성은 무한대로 주변함용(周徧含容) 상즉상입하여 1이 100이며 100이 1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화를 통하여 2중인다라를 만들어 즉 여러 구슬들을 비추어 理界 무의식의 自他를 만들었습니다. 무의식의 1점으로 나타나 연화장의 구슬을 모두 포함하는 극락의 인자는 이 인자의 발생으로 공간인 환경이 축소되어 미래라는 시간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2층의 구조로 1층과 같이 바로 구슬을 영입할 수 없어 미래라는 고유의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1층과 연결되어 있어 기존의 과거와 현재는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不動地 보살과 같습니다.
원소인 인자가 생기므로 시간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시간의 구분 원인은 2중인다라이며, 3중인다라망은 3층으로 다시한번 1중인다라를 벗어나 기본인 기초를 떠나게되어 과거라는 시간을 잃어 현재라는 자기 고유 시간만 갖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2중은 1중의 기초를 갖고 있으나 3중은 1중이라는 기초를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그리고 3중인다라망은 아라한에 배대하며 3번 영혼체의 경계로 3중의 인자가 3번 영혼체의 배경이 된다고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3중의 각 원소인자에다 생명이 하나로 각인되어 인다라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1에서 4중 모두 중중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자들의 활동 영역이 차원세계입니다. 3중에서 과거가 없다는 것은 인자 개별들이 독립하여 서로가 일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두가 개별적으로 1점을 이루어 하나의 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3중의 1원소는 2중 원소의 전체이므로 그만큼 행동 반경의 축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각 인다라망은 主伴을 이루어 하나의 인다라이나 서로 다른 인다라를 나타내고 있음으로 결국 공간이나 환경은 같습니다.

3차원의 원자가 차별이 있는 것처럼 氣流도 압력의 영향에 따라서 차이가 있어 영가의 몸을 이룰 때는 기체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거처에 따라 특성이 다를 수 있습니다. 생명은 시간과 시간으로 결합되어 있어 연결된 밖이 소진되면 다른 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는 업행이 법성에 기록되어 있어 이미 法性은 생명으로 각인된 순수 독립된 성품이므로 법성인 생명에 영향력을 준것에 따라서 생명체에 되돌아 갈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한대의 지혜로 스스로 상호간에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 생명이 된 이상은 法性은 독자적인 생명입니다.
이것은 인자와 관련이 있으며 법성과 마음은 별도이므로 같이 있으나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자 자체가 主伴하여 이것이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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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법안(法眼) | 작성시간 15.07.23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우~~옴~~~~ | 작성시간 15.08.20 감사합니다
  • 작성자오직실천 행 | 작성시간 17.09.09 나무아미타블.나무아미타블.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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