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불교와 과학

[스크랩] 유식으로 관하는 인간과 세계 7 (9식 아타나식 유부무기 전변)

작성자ohry|작성시간18.06.02|조회수134 목록 댓글 0

유식으로 관하는 인간과 세계 7

 

次第二能變 다음은 제2능변이니

是識名末那 이 식은 말나라고 이름한다

依彼轉緣彼 그것에 의지해서 전전하고, 그것을 반연하며

思量爲性相 사량함을 성품과 양상으로 한다

四煩惱常俱 4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 하니

謂我癡我見 곧 아치와 아견

幷我慢我愛 아울러 아만과 아애이다

及餘觸等俱 그리고 나머지 촉 등과도 함께 한다

有覆無記攝 유부무기에 포함되고

隨所生所繫 생겨난 것에 따라 매인다

阿羅漢滅定 아라한과 멸진정과

出世道無有 출세도에서는 없다 567

 

처음 초능변은 8식 장식으로 전변하는 기본 자성으로 종자입니다.

다음 7식 말나식으로 관찰의 주체로 8식의 종자를 바라보아 현행을 이루어

전변함으로 2능변입니다.

7식은 8식을 의지하면서 반연하여 무기이라 지혜의 성품이 강하여 사량할 수 있습니다.

또한 7식은 유부무기이라 오염된 때가 있어 아상을 가져 촉에도 반응할 수 있습니다.

8식의 종자가 전변하는 것에 따라서 7식과 8식의 종자가 현행을 이루어

거기에 메여서 생사윤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6식의 촉각에 의해서도 7식의 사량으로

전변하여 이숙식을 이루어 8식에 저장되고 있습니다. 이 때 8식은 7식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7식은 물질의 7식과 지혜 즉 무기로의 7식이 있습니다. 6식의 7식은 현상계로 유령과 비슷한 입장입니다. 8식의 7식은 염정의 법으로 理界이나 지혜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8식이 염오법에서 벗어나면 멸진정의 아라한과 출세도에 이르게 되어 해탈입니다.


p349 ((이 제7식은 그 제6의식에게 가까운 의지처가 되기 때문에, 다만 라고 이름한다. 가까운 의지처라고 함은, 서로 수순하기 때문이고, 같이 계탁하기 때문이고, 6이 경계를 반연할 때에 7이 힘을 주기 때문이다. 까닭에 7이 무루일 때에 6은 무루이지만, 7이 유루일 때에는 6은 무루가 아니다. 7이 경계를 반연할 때에 6이 힘을 주는 것은 아니니, 그래서 6에는 식이 있고, 7은 다만 의라고만 이름한다. 8도 역시 제6에게 힘을 주는 것을 구별하기 위하여 다시 가까운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먼 의지처가 되는 것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 제51권에 이르기를, 8이 있기 때문에 말나가 있고, 말나를 의지처로 해서 의식이 전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제8은 먼 의지처가 되고, 이것은 가까운 의지처가 된다.))


7식은 물질이 아닌 법성의 성품으로 이루어진 영혼의 생명이라 사람의 6식은 5식을 종합하여 요별하는 것이라 6식에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즉 색성향미촉은 끊어지는 것이며 계속하여 상속하지 않습니다. 7식은 계속하여 이어지는 행상이라 생명력이 있어 6식의 행상과 성상에다 진실의 현실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가령 6식이 없고 7식만 있다면 살아있는 현실성이 없습니다. 7식의 본질은 무루이나 행위의 성상은 유루입니다. 6식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6식에 수순 계탁 반연하고 있습니다. 6식의 식은 요별작용이고 7식의 의는 지혜를 바탕으로 하기에 사량이라는 작용이 있습니다. 따라서 유식의 근본식은 현상계의 6식입니다.

 6식과 8식의 관계에서 8식의 종자와 7식은 현행식을 이루기 때문에 7 8식은 가까운 사이이고, 6식은 종자들이 뭉쳐서 이루진 물질이라 물질은 전부 종자와 종자로 구성되어 있어 현행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8식에 저장된 이숙식의 업도 6식의 현상계에선 바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색법과 근에 저장된 8식의 업도 6식의 근과 색법에 따라서 현상의 법이 먼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호법 등의 견해가 있다. 는 그 식의 종자 및 그 현행식 모두를 의지처로 삼는다. 비록 중단됨은 없지만, 전역(轉易)함이 있으므로 전식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에, 반드시 현행식을 의지하여 구유의로 삼아서 비로소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나라고 함은 이다. 유가사지론63권에서 이르기를 모든 식을 심 의 식이라고 이름하지만, 뜻의 뛰어남에 의하여 설하면, 8식은 심이라고 설하고 제7식은 의라고 이름하고, 나머지 식은 식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한다. ‘항상 살피고 사량하는 것이 나머지 식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8식의 종자는 유전 상속하여 7식의 입장에서는 현행과 그리고 8식의 종자가 연속적으로 구비되어 있어 구유의(俱有依)의 뜻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7식의 성립은 물질인 사람 생명과 영혼체로의 생명으로 6식과 7식의 공존하는 입장입니다. 또한 8식의 종자의 상속으로 7식과 현행을 이루어 7식이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8식은 법성이라 7식인 영혼은 6식인 사람이 8식의 법성에다 비추어 사람의 형체를 갖추었습니다.

 이것이 7식이기 때문에 의 물질인 지혜의 형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7식인 영혼은 8식의 현행과 종자의 연속인 구유의를 이루어 생겨날 수 있어며, 그리고 7식은 6식을 완성시키고 6식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실재화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의 6식 사람을 지혜의 7식 생명으로 있게할 수 있습니다.

 

((流轉이라 함은 상속해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제8식의 혹은 종자, 혹은 현행에 의지하여 상속해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 제7식은 항상 그 제8식에 의지하여 일어나서, 소연으로 취한다고 하는 것을 나타낸다. 7식의 행상은 소연의 경계를 취하는 것이 상속해서 끊어지지 않고 일어난다는 뜻이다.))

 

7식은 유부무기이라 염오에 물들어 있어 6식의 경계를 취하나 8식과 현행을 이루어 6식의 경계를 종자의 형태로 8식에다가 저장하고 있습니다. 7식은 인연의 대상으로 8식을 그 장소로 이용하기에 즉 7식인 영혼의 신체에다가 그 행상인 마음의 행로를 모두 저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8식의 종자가 끝없이 상속하여서 6식의 행상이 7식의 몸에다 끝없이 저장되고 있습니다. 멸진정에 이르면 현상계를 벗어나 출세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p273 ((곧 그 경전에서 다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모든 법을 거두어 저장하는

일체종자식에 의하기 때문에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하니

수승한 이(勝者)에게만 내가 열어 보인다.“))

 

아비달마경중의 게송으로 여기서 모든 법은 현상계의 윤회하는 유루의 물질입니다.

일체종자식은 8식이므로 현행 7식의 8식이라 7식이 유루이라 8식도 염오법이라 오염되어

있습니다. 한편 6식의 8식은 현재 인생의 삶에 적용되는 업보의 연기법이기 때문에 6식의 8식 속에 7식의 8식이 숨겨져 있습니다. 즉 한 차원 높은 단계입니다.

아뢰야는 장식이므로 근본은 자성이라 능장 소장 집장입니다. 종자식은 물질을 이루는

원이 되어 장소와 같은 소장과 이것을 이루는 주체가 능장이 되며, 집장은 이것을 보존하는

신체인 근과 온()입니다. 즉 일체종자식은 소장, 영혼체는 능장, 신체는 집장입니다. 승자가 되어야만 아뢰야를 알 수 있습니다.

 

((자성이 전변하여 붓디() 등으로 되는 것과 같지 않으니, 종자와 결과는 자체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고, 의지 하는 것(能依)과 의지되는 것(所依)이 모두 생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카야가 계승하여 승성(勝性)이라고 하는 것을 차단한다. 곧 자성의 체가 작용을 일으킴을 승성이라고 이름하는데, 그것이 하나인 것과 같지 않다. 이 아뢰야는 제법의 결과와 하나인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우선 그것에 대해서 체성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한다.다음은 제법과 식은 능의와 소의로서 모두 생멸하기 때문에, 그것이 항상한 것과 같지 않다. 그래서 상카야가 계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게송 중에서는 단지 승성을 원인으로 한다는 것만을 파해서, 오직 능장에 의지함으로써 아뢰야를 해석한다.“

외도 수론자 상카야 등은 자성이 움직여 작용하는 것에 의하여 붓디 즉 가 일어나 상주하는 것이라 생각함으로 이것이 지수화풍 4대의 근원입니다. 8식 아뢰야는 자성 자체을 뜻하는 것으로 7식과의 현행으로 전변하는 것으로 제법의 결과인 현상과 하나도 다른 것도 아닙니다.

즉 연기로 인하여 제법의 쌓임을 뜻하는 것으로 외도가 주장하는 승성인 지수화풍의 속성과는 다르며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성과 승성의 체는 본질적으로 의미에서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 능장은 7식인 영혼의 인식작용이라 제법의 구성인 자성으로의 8식과 제법의 특성으로의 속성인 4대와는 체에서 다름이 있습니다.

여기서 능의와 소의는 7식과 8식의 관계, 6식과 7식의 관계,56식의 관계, 6 7 8식의 관계입니다. 7식은 생명의 주체이며 8식은 생명의 환경인 무대입니다. 따라서 주체가 변하거나 죽으면 환경도 다른 환경으로 변하여 항상 같이 있습니다. 외도에서는 4대인 지수화풍의 원인인 가 상주하여 항상한 것으로 주장하나, 불법은 연기로 상호 의존하여 전변하나 자성인 공의 내용이므로 실재성은 없습니다. 따라서 상주는 실재있는 것이라 이것은 공의 뜻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다만 영혼체는 가상 속에서 즉 理事 중에서 는 환이지만 는 불변인 무루이라 상주불변이라는 조건을 갖추어 영혼체도 이러한 현실적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인 가상 세계 속에서 우리는 현실적 실재의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영혼의 로 이루어진 신체이라 실재로서 영원한 생명입니다. 8식을 마음이라 하는 것은 종자식이라 일체법을 저장하고 있으며 여기에 6식과 7식의 생명 주체가 8식과 한 짝으로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6식과 78식은 자성인 지혜라는 공을 통하여 이사인 생명을 이루어 본질인 법신으로써 佛眼 法眼으로 연기 작용을 통하여 생명의 현실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법계입니다. 따라서6 7 8식 안에 모든 법리 작용이 숨어 있습니다.

 

((해심밀경에서도 역시 다음과 같이 설한다.

아타나식은 매우 깊고 미세하며(甚深細)

일체종자식은 폭류(暴流)와 같다

나는 범부와 어리석은 이(凡愚)에게는 열어 보이지 않느니

그들이 분별하고 집착해서 자아라고 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모든 전식에는 이와 같은 뜻이 있지 않다.“

 

아타나식은 8식의 일종으로 8식 보다 미세하여 그 종자가 8식보다 깊이 있어 즉 8식의 구성요소가 9식인 아타나식입니다. 8식이 물질을 이루는 근본입자이라 공의 경계입니다. 따라서 물질을 세분 추적해 분해하면 8식의 종자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폭포의 물방울처럼 유전 상속해 흐르는 것이 8식입니다. 여기서 9식 아타나식은 물질이전 단계의 입자 요소이라 그 한계성을 단정지울 수 없습니다.

 8식이 입자이면서 공간을 이루는 2중의 양면성을 띄고 있습니다. 한편 8식을 형성하는 9식은 8식의 기능성을 보유하면서 9식 자체가 여럿의 8식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8식은 공으로 현재를 나타내나 9식은 8식으로 형성되어 있어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8식 중에서 흐름이 8식보다 더욱 빠른 존재가 9식인 아타나식입니다.

즉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불퇴전의 부동지인 8지 보살입니다. 여기서 범부는 존재가 현실적으로 실재로 인정하여 허망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해탈할 수 없는 무성입니다. 한편 어리석은 사람은 2승으로 8식이 최후의 물질인 공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자타가 동일한 하나를 이룬다는 것에 실질적인 법리에서 모르고 보살행에 대한 실천적 수행을 수반해야 한다는 대승의 사상을 간과하고 있어 아라한을 띄어 넘는 9식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래님은 8식에 대해서 열어 보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8식은 여러 겹으로 되어 있어 알 수도 없지만, 어느 하나를 가지고 자아라고 하기에 분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전식에는 이와 같은 뜻이 있지 않다.“

여기서 전식은 5 6 7식입니다. 5식은 심왕인 6식의 소속이라 전식은 6 7식입니다. 6 7식은 주체적 관찰자이라 공간적 배경을 이루는 8식처럼 자체의 종자라는 개념을 보유하지 않습니다. 8식은 주체적 관찰자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그러나 8식이 있으면 반드시 주체적 관찰자가 있습니다. 9식도 마찬가지로 8식의 역할이므로 9식이라는 주체적 관찰자가 있습니다.

한편 8식은 자성의 뜻이라 무부무기로 청정성을 유지하나 7식은 유부무기이라 염오에 물들어 청정하지 않습니다. 6 7식이 함께하여 7식의 사량은 6식을 통하기에 깨끗하지 않습니다.

 

 

((모든 법의 종자를 능히 집지(執持)하고, 그리고 승의근과 부진근을 능히 집수(執受)하며, 또한 결생(結生)과 상속을 능히 집취(執取)하기 때문에 이 식을 설하여 아타나식이라고 이름한다.))

 

((여기에서는 3가지 뜻으로 해석한다. 섭대승론에는 둘만 있고, 처음의 종자는 없다. 만약 종자에서 바라보면 곧 집지라고 이름한다. 종자를 잃지 않게 하지만, 각수(覺受)는 없기 때문이다. 색근과 의지처는 이름하여 집수라고 한다. 근을 무너지지 않게하고, 각수를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에 결생하고 후에 상속하는 것이면 이름하여 집취라고 한다. 모든 존재(諸有)를 취착하기 때문이다.))

((이미 견도에 든 모든 보살들은 진실한 현관을 얻었으므로 이름하여 수승한 이(勝者)라고 이름한다. 그는 능히 아뢰야식을 깨달아 알기(證解) 때문에, 우리 세존께서 바로 열어 보이신다.))

((이는 아뢰야라는 이름의 뜻을 바로 서술하는 것이고, 다음은(勝性)은 외인의 집착을 가려내는 것이다. 곧 이는 능장으로써 장식을 해석하는 것이지만, 오직 능장만으로써 아뢰야식을 해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8지 등의 후에는 장식이라고 이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는 (수론의)승성등에 대해서 논하므로, 다만 능장만을 들어서 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입지의 보살을 이름하여 승자라고 한다. 그들은 유식에 계합하기 때문에 능히 아뢰야식을 깨달아 알므로, 비방을 일으키지 않고 분별하여 자아라고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세존께서 바로 열어 보이신다. 자기의 지위를 이미 얻은 이에게는 그들로 하여금 거듭 명정(明淨)케 하려고 지금 다시 이를 보이고, 후지(後地)를 아직 얻지 못한 이에게는 그들로 하여금 진수(進修)하게 하려고 지금 여는 것이다.))

((무성(無姓) 유정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매우 깊다고 말한다. 취적(趣寂) 종성은 통달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미세하다고 이름한다.

범부이라 함은 곧 무성이고, 어리석은 이라 함은 곧 취적이다.

5종성 중 무성의 유정은 그 근원을 끝까지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깊다고 설한다. 이것은 오직 범부이다. 나머지 2승의 종성으로 결정된 자는 통달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증득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미세하다고 이름한다. 통달이라 함은 무루도로써 진실로 이를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범부는 성도가 없기 때문이고, 어리석은 이는 성도가 생겨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각 한쪽 뜻으로 설한 것이다.”

유식으로 관하는 인간과 세계 2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아무나오기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