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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

[스크랩] 유식으로 관하는 인간과 세계 6부 12-2 (6 7식의 감수 차이점, 희수와 낙수, 지옥고수와 捨受,客受의 뜻)

작성자ohry|작성시간18.11.23|조회수55 목록 댓글 0

 

((“모든 성교에서 의식의 영역(意地)의 근심의 감수(感受)를 우근(憂根)이라고 이름한다.“

유가사지론에서 설하기를 지옥에 태어난 모든 유정의 부류에게는, 이숙식의 무간(無間)에 이숙생의 고수와 우수가 상속한다.라고 한다. 또 설하기를 지옥에서의 심구와 사찰의 심소는 우수와 함께한다. 일부 아귀세계와 축생에서도 역시 그러하다.라고 한다.)))


이 유식은 법의 모양으로 법상종입니다. 유식30송에 대한 해설서가 성유식론입니다. 성유식론술기는 현장법사의 수제자 자은규기가 유식 10대 논사의 복잡한 해설에 대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이것의 모체는 유가사지론으로 무착보살이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는 미륵보살님으로부터 직접 도솔천에 가서 배운 것으로 내용이 방대합니다. 유식30송은 세친보살의 작품으로 30게송으로 요약하였으나 10대 논사의 다양한 견해로 이들은 모두 당시에 무착 세친보살처럼 보살로 칭해지고 있습니다. 세친은 무착보살의 동생이고 10대 논사는 제자들입니다. 유가사지론은 무착의 저술로 기록되어 있으나 원저자는 미륵보살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식 영역의 意地7식으로서의 분별 작용인 7식 전반적인 우근으로, 근심하는 심적 작용입니다.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유정의 부류는, 8식에 저장된 이숙식이 이숙생인 지옥의 환경으로 변하여 나락가인 苦器로 고통을 주는 것이라 이는 심적 활동이 아니라 영혼의 신체인 몸에다 고통의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7식은 8식 종자를 현행으로 저장되기에 간격이 없는 무간이라 지옥의 고통은 쉼이 없는 연속적입니다. 우리 몸은 8식 종자로 채워져 전체를 이루기에 고통은 몸 전체로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심구와 사찰은 정해지지 않는 부정심소로 무언가를 살피고 찾는 것으로 심적 작용이라 근심하는 우수입니다. 아귀와 축생계에서도 심적 작용과 몸으로 느끼는 감수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 의식에서는 오직 우수만 있다. 오직 분별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증거를 인용하여 이르기를 제 성교에서 의식과 상응하여 있는 근심의 감수는 모두 우수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안혜의 견해이다. 만약 지옥의 의식에서 고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설하지 않겠는가 라고 한다.))

 

지옥에서는 무간의 고통을 당하기에 7식의 생각 작용인 의식이 일어날 겨를이 없습니다. 또한 7식의 의식은 8식을 상대하기에 무기인 사수(捨受)이기에 평등으로 현상의 상태로서는 분별할 수 없습니다. 6식의 종자에 비하여 미세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 앞에 펼쳐진 우주가 7식 영혼에 모두 포섭될 수 있습니다. 붓다님의 가르침인 聖敎에 따라서 지옥에서의 苦受는 의식작용이 아닌 신체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체의 고통은 객수(客受)로 영혼체인 7식의 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5근인 5식입니다. 7식의 5근이라 이는 8식 종자로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전하는 다음 몸이 전생의 8식 종자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즉 이숙생입니다. 여기서 7식에서는 현상의 물질이 없기에 5식의 5근을 물질로 간주하기에 객이 되어 이것의 받는 고통이 객수입니다. 영혼의 지옥 고통은 의식으로 느끼는 것이지 의식작용은 아닙니다.

 

((이숙식의 무간에 라고 함은 처음 태어나는 마음(初生心)을 말하니, 8식이다. 고수와 우수가 상속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의 차후에 일어나는 그것의 의식이 오직 고수라면 무엇 때문에 우수를 말하겠는가(5식과 상응하는 것은 오직 고수이므로)라는 것이다.))

 

8식은 그 종자가 유전 상속하는 것이라 7식이 이것과 연계되어 관찰하기에 현행인 초생심을 뜻하여 심왕으로, 7식이 오염되어 있기에 저장되는 이숙식도 오염되어 있습니다. 유정들이 받는 고수의 고통은 나타난 현상의 경계에 대한 착각을 일으켜 물거품이나 환영으로 관해야할 것을 현실의 실재인 실상으로 관하여 고통의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관하는 명상 수련도 공을 관하는 노력입니다. 물론 佛法은 심오한 지혜가 있어야 구경의 완성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 없는 극락정토에 가서도 끝없는 공부와 수련을 닦아야 합니다. 즉 말하자면 견분 상분 자증분이 자성인 공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라 일단 만이라도 지킬 수 있다면 고통은 면할 수 있습니다.

 

((축생과 아귀세계에서는 우수라고도 이름하고 고수라고도 이름하니, 잡된 감수(雜受)와 순수한 감수(純受), 가벼움과 무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지옥(奈落迦)중에서는 오직 고수라고 이름하니, 순수한 감수로서 매우 무겁고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축생과 아귀세계는 지옥과 달라서 신체의 고통인 고수와 마음의 고통인 우수(憂受)가 공존하는 잡된 감수입니다. 신체의 고통은 순수한 감수이며 무거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옥의 고통은 신체적 감수로 매우 무거운 고통입니다.

 

((“그 모든 지옥은 한결같은 괴로움이가 때문이다. 나락가라고 함은 여기에서는 고기(苦器)라고 하니 죄를 받는 곳이다

거기에서는 결정코 제7 8식의 2가지 식이 있어 상속하고 단절되지 않아서, 결정코 현행의 사수를 성취하기 때문이고, 또 고수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의 논사가 묻는 것이다. 이것은 6식을 분별하기 때문에, 객의 사수가 없다고 한다.’ ‘뒤의 논사가 거꾸로 묻는다. 말하는 바의 사수는 현행이 결정코 성취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대는 어떤 도리에 의해서 이것이 객수라는 것을 아는가?’))

 

지옥에 떨어진 영혼의 몸은 3차원의 물질이 없기에 7식이 8식 종자를 상대하여 관찰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는 현행으로 미세한 종자이라 신체적 고통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옥 중생 몸은 5식이라 5근이 8식의 종자 역할을 하여 7식의 영혼이 객수로서 5근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생명은 체상용, 자증분 견분 상분으로 시간적 진화로서 분리된 것처럼 나뉘어져 있기에 거기에 빠져든 것입니다. 원인에 의한 결과로 받는 과보이기에 현실적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죽은 영혼의 7식은 8식을 상대하기에 사수로서 종자가 미세하여 고통이 없으나, 영혼의 몸의 입장에서는 몸인 5근의 종자가 미세해도 견분 상분으로 상대하여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영혼이 공인 무루에 진입을 못하여 고통 없는 무루의 신체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연기인 인과법은 견분과 상분이 비례하여 같이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미묘 법을 항상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앞의 논사가 제51권에서 지옥의 전부와 일부 아귀 및 축생을 일향고(一向苦)라고 이름한다. 불고락수(8식과 상응하는 사수로서, 객수 아닌 주수(主受)라고 함)는 순고(純苦)에게 영탈(映奪)되므로 생략되어 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이 (객의 사수임을)안다라고 할 것을 전제한 것이다. 그대가 감수를 객의 감수에 의하여 논함으로써, 역시 객수의 의지처인 식의 관점에 의하기 때문이다. 그것과 같이 6식이 어떤 때에는 없기 때문에 의근을 성취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6전식은 생 사 민절 등의 여러 지위에서는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옥 영가의 몸은 저승인 명부에 끌려갈 때 4차원의 몸인 유령은 탈락되어 5치원의 몸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는 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7식의 몸이나 전에 저장된 이숙식이 이미 이숙생을 이루어 영가의 몸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5식의 5근이 종자의 형태로 신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즉 지옥의 공간, 지옥의 형태인 구성물, 지옥의 중생, 이렇게 자성인 자증분이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 공간은 서로 공유하는 듯하나 사실은 지옥 중생 하나하나가 자기 공간을 갖고 있어 서로 겹쳐저 있습니다. 이미 5차원이라 서로 부딪치는 일은 없습니다. 이는 생명 하나하나마다 1자성으로 되어 같으면서 서로 차별이 있기에 상즉상입 가운데 다름이 있습니다. 다만 윤회 상속하는 입장에서는 외부의 감각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원래의 생명은 7식으로 8식 종자를 상대하여 이숙식으로 저장되나 미세하여서 느낄 수 없기에 사수로서 평등입니다. 그러나 느끼는 감수는 몸인 6식으로, 7식은 6식에게 영탈되어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5근이 받는 고통은 신체인 객수로서 의식의 영역입니다. 사람의 몸이나 영가의 몸이나 모두 구성은 6 7 8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같은 생명입니다.

 

 

((유가사지론에서 감수 중에서는 오직 객수만을 설하고, 의근 중에서는 통하여 주체인 식(主識)도 설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주체의 식이라 함은 곧 제8식이다. 8식도 반드시 감수와 함께하기 때문에, 다를 이유(異所以)로서 따로 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p483주석성유론 한산암


안식을 통하여 외부에 보이는 사물은 8식의 종자이나 이것이 6식과 7식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7식은 8식 종자를 상대하나 6식을 통하여 바라보는 것이라 8식 종자의 사물은 6식과 7식 양변에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8식은 현상의 환경적 경계이자 공간으로 여기의 사물은 8식 종자이라, 한편 7식 영혼은 물질 형태의 사람인 생명이 비추어 탄생되었습니다.


 따라서 7식은 6식과 8식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습니다. 8식 사물이 7식과 6식에 동시에 있다는 결론입니다. 다만 연기법으로 시간적 관계로 인하여 소요되는 시간에 따라서 변화를 다르게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상계의 사물은 6식과 7식의 안식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즉 현상의 사물은 8식 종자입니다. 다른 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재위에서는 과위를 말하니, 말하자면 성불시이다. 혹은 전환하여 무루를 얻을 때에 곧 초지에서 얻는다. 오직 낙 희 사수만이다. 예컨대 제57권에서 고수는 무루에 통한다고 한 것은, 무루법에 수순하고 무루로 인생(引生)됨을 이름하여 무루라고 한 것이지, 루를 끊어서 무루라고 이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붓다님은 고수가 없다. 또 붓다님의 육식은 삼수에 모두 통하니, 6식은 제3선으로써 무루의 낙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식은 오직 낙수 사수만 있고 희수는 없다. 유루의 삼식(안 이 신식)은 오직 2(욕계 및 초선)만이지만, 그러나 무루의 오식은 곧 색계의 4지에 의지하여 있고, 거기에서는 의지처인 오근이 있기 때문이다.))

 

3선정부터 5근의 고통인 고수가 없으므로 선정시에는 6식에서도 무루로서 고통이 없습니다. 안식 이식 신식은 마음인 의식에 통하여 욕계와 초선정의 경계이라 육신의 고통이 남아 있기에 무루라 할 수 없습니다. 색계의 4지는 3선정이라 5근인 낙수입니다. 여기서 희수와 낙수의 차이가 있습니다. 안식 이식 신식에서 마음인 의식이 발동하기 시작하여 5식에서 마음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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