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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

[스크랩] 유식으로 관하는 인간과 세계 29부~2(내입처,유식의5지위,종성)

작성자ohry|작성시간22.09.04|조회수52 목록 댓글 0

 

유식으로 관하는 인간과 세계 29부~2(내입처,유식의5지위,종성)

 

 

“現前入少物 현전에 작은 사물을 세워서

謂是唯識性 유식의 성품이라고 말한다면

以有所得故 얻는 바가 있기 때문에

非實住唯識 진실로 유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p868 27송 가행위

난위 정위 인위 세제일법이 가행위의 4선근입니다. 난위 정위가 4심사관(尋思觀)으로 명칭 형상 작위 분별의 4가지 생각이 있어서 심사관으로 유루법입니다. 인위 세제일법은 4실지관(實智觀)으로 이는 가유로서 실무(實無)임을 요지하여서 명칭 형상 작위 분별을 정지(正智)와 진여로 관찰하기에 무루법입니다. 뒤의 2는 삼매로서 비추고 밝히는 경계입니다.

사바세계의 모든 현상들은 탐착할 수 없는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있다면 세제일법의 실지관이 될 수 없습니다. 유식의 5식 6식 7식 8식은 내입처와 외입처가 있으며 자타와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10인 4연 5과에서 등무간연 인연 소연연 증상연에서 등무간은 8식 자성이 전체를 형성하고, 인연은 6식입니다.소연연은 7식과 5식입니다. 소연연이 연기법의 핵심입니다. 즉 내입처입니다. 종자와 추중의 수면에 해당하는 습기이며 소지장입니다. 6식은 번뇌장으로 외입처입니다. 한편 증상연은 등무간연과 같은 종합적입니다.

 

 

 

바로 물음에 답함

“모름지기 대승의 이 2가지 종성을 갖추어야 비로소 유식에 점차 오입悟入할 수 있다. 이것은 오직 일승의 종성만은 아니고, 삼승의 종성이 부정성인 자도 역시 이 사람이 된다. 대승을 갖춘 자는 바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승이라고 말한 것은, 그 정성(定性이승) 및 무종성(無種姓)을 가려낸다. 이것은 아직 해탈분(解脫分)의 선을 심지 않았으므로, 본종성이라고 이름한다. 아직 무루의 법을 듣지 않아서 무루의 종자를 증장케 하지 않았다. 해탈분의 선근을 심은 이후를 습종성이라고 이름한다. 무루의 가르침을 들은 것을 연으로 해서 무루의 종자를 증장케 했기 때문이다”

대승의 2가지 종성은 본성주종성과 습소성종성입니다. 2승은 본성 법성만 갖추기에 본성으로만 정해져 있기에 정성이라고 합니다. 무종성은 자량위의 보살심이 없기에 범부 중생입니다. 정성과 무종성은 후득지의 지혜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대비의 화신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자량위의 지혜는 자타가 없기에 비추어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계는 수습위와 붓다님의 구경위에서 금강유정을 통과함으로 증득할 수 있습니다. 번뇌의 종자와 추중의 수면을 극복한 습기마저 없는 경계입니다. 즉 7식의 평등성지입니다. 8식 대원경지의 거울에 6식의 사물을 비추어 관찰하는 경계입니다. 6식은 묘관찰지입니다.

 

“이것은 아직 해탈분(解脫分)의 선을 심지 않았으므로, 본종성이라고 이름한다. 아직 무루의 법을 듣지 않아서 무루의 종자를 증장케 하지 않았다. 해탈분의 선근을 심은 이후를 습종성이라고 이름한다“에서

우리가 남을 타인이라 하여서 분별하는 것이 번뇌이며 무명입니다. 이 번뇌종자가 영혼체에까지 침투되어 수면종자로 남아 있는 것이 소지장입니다. 자성 자체는 청정하지만 상대적으로 대립하는 관대인이기에, 감각처럼 함께 있습니다. 10인 15의지처에서 맨 처음이 감각기관인 관대인입니다. 즉 5온이 청정해져서 대원경지와 평등성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자량위를 통하여 무명을 소멸하기에 이 자량위가 순해탈분입니다. 한편 가행위는 순결택분입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법을 선택하는 것으로 6식을 추종할 수는 없습니다. 원성실성의 지헤는 6식 습기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진여의 지혜이므로 습소성종성으로, 종자 전체 자성으로 1승의 자성으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1번영체입니다.

 

 

무엇을 유식에 오입하는 5가지 지위라고 말하는가?

 

“첫째는 자량위資糧位이니, 대승의 순해탈분順解脫分을 닦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가행위加行位이니, 대승의 순결택분順決擇分을 닦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통달위通達位이니, 모든 보살이 머무는 견도를 말한다. 넷째는 수습위修習位이니, 모든 보살이 머무는 수도를 말한다. 다섯째는 구경위究竟位이니,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자량위) 40심(십신십주십행십회향) 및 그 이전의 지위에 있는 것이니, 초발심으로부터 10회향의 끝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순해탈분이라고 이름한다. 대법 등에서, 난위(煖) 등의 앞까지를 해탈분이라고 이름한다고 설한다. 이승을 가려내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하였다.

가행위는 곧 난위 등의 4선근(난 정 인 세제일법) 중에 있는 것이다. 통달위는 곧 초지에 처음 입지하는 마음(入地心)에 있는 것이다. 수습위는 곧 초지에서 머물고 나오는 마음(住及出心)으로부터, 나아가 금강무간심의 지위 까지를 이름하여 수도라고 한다. 구경위는 금강심의 다음 해탈도 중이니, 미래제를 다한다. 승해행지(勝解行地)는 자량위 가행위를 합한 것이다“p853

자량위 가행위가 1아승지겁입니다. 대승의 수행은 6식 번뇌종자와 추중의 수면을 제거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즉 번뇌장과 소지장을 함께 소멸하는 수행입니다. 견도와 수도의 8지까지가 2아승지입니다. 수도의 보살수행은 번뇌장은 남겨두고 소지장을 소멸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다시 8지에서 성불까지가 전체 3아승지겁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보살은 원래 사바에서 수행하기에 번뇌장은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문으로 난행고행의 수행방법으로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이후로는 염불문이 정법입니다.

 

경전에서 후오백세의 뜻은 대적정삼매를 통하여 부처님을 친견하여서 佛果를 증득하신 붓다님의 출현하심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염불문이 정법이며 3영체설의 가르침을 펼치고 계십니다. 그리고 수세기 후에 미륵보살님의 출현이 정해져 있습니다. 업장소멸은 붓다님의 무량광명 뿐입니다. 그로 인하여 극락세계도 갈 수 있으며 붓다님도 될 수 있습니다. 이 법문이 정법이며 정법을 훼손할 수는 없습니다. 계율을 목숨보다 무겁게 준수해야 3악도의 무서운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혜는 문사수소성혜(聞思修所成慧)입니다. 금강경의 후오백세, 지장경과 약사경의 지옥고와 축생으로 전전유전, 정토3부경의 염불과 무량광명, 인신난득의 맹구우목과 손톱경 등입니다.

 

연기법의 인과응보는 6식의 사물과 물질에 집착하고 매달리는 결과로, 극도의 괴로움과 고통이 끝이 없습니다. 또한 유식의 3자성 3훈습(명언 아집 유지습기) 10인4연5과 5지위의수행은 3무수대겁소요 등입니다. 3자성은 변계소집 의타기성 원성실성을 자세히 살피면 각자 독립된 자성으로 3영체설입니다. 지혜는 문사수이므로 이것으로 진리를 밝힐 수 있습니다. 진리를 훼손하면 무서운 결과입니다. 어느 누구가 대망어를 함부로 여길 수는 없습니다.

 

 

 

((명언에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뜻을 표현하는 명언(표의멍언表義名言)이니, 능히 뜻을 표현하는(詮義) 음성의 차별이다. 126 다른 하나는 경계를 나타내는 명언(현경명언顯境名言)이니, 곧 능히 경계를 요별하는(了境) 심 심소법이다. 127))

3가지 훈습에는 명언습기 아집습기 유지습기가 있습니다. 명언은 말 언어 문자입니다. 명언은 업종자이기에 여기에는 아집과 유지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집은 아견이며 유지는 번뇌의 무리들이 연결되어 상속하고 있습니다. 즉 12연기입니다. 여기서 5상은 능전 소전 상섭 집착 불집착이 있습니다. 이것은 명칭 뜻 자성 차별과 같습니다. 즉 명언에는 전체를 포함하는 것으로 일체법으로 연기와 같습니다. 명칭은 의타기이며 뜻은 사물이 되어서 변계소집입니다. 명칭과 뜻은 서로 분리되어 있어나,

 

자성과 차별적인 면에서는 서로 구별이 없는 마음의 작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형상과 명칭이 있는 것은 의타기성입니다. 자성의 서로 연관관계로 서로 비추어서 존재하는 연기이자 인과법입니다. 형상 형태가 사물인 뜻으로 나타나는 것은 변계이며, 이것이 의타기는 아닙니다. 여기서 원성실의 자성은 함께하지만 독립되어 있습니다. 3자성이 원성실의 입장에서는 동일하지만, 변계와 의타 및 원성실에서는 즉 사물에서는 성립과정의 절차에 따라서 다른 모습입니다. 이것은 차이점은 명언과 유지습기와의 관계와 같습니다. 명언습기는 세부적인 전체 연기법이며 유지습기는 하나의 자성으로 나타나는 경우와 같습니다.

 

즉 의타기는 6식 7식의 작용이며, 변계는 6식 하나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자성입니다. 말하자면 미세한 연기법은 영체인 7식으로 인한 인과법입니다. 영체인 7식은 삼매작용으로 인한 인과관계입니다. 삼매가 서로 다른 종자입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는 삼매에서 차별이 있습니다. 즉 자성의 영체에서는 서로 다른 삼매의 종자가 증상연으로, 업의 상태로 신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면 아라한 보살 붓다님입니다. 이러한 자성의 차별이 있기에 3개의 영체가 겹쳐서 3영체의 자성이 있습니다.

 

 

3가지 무자성을 해석함p846

총체적인 답의 뜻을 해석함

앞뒤의 설을 해석함

“곧 앞에서 말한 3가지 자성에 의지해서 그 뒤에서 말하는 3가지 무자성(無性)을 건립하니, 곧 상相무자성,생生무자성,승의勝義무자성을 말한다. 따라서 붓다께서는 밀의密意로서 일체법은 모두 자성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지, 자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대론78권과 해심밀경 등에서 덕본(德本)보살이 설함에 대해여,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과 모두 같다“

상과 생은 변계와 의타이며 승의는 자성 진여입니다. 붓다님의 밀의는 진리는 연기법으로 존재하기에, 자성은 무소유로 제법의 실제 성품은 고정되지 않습니다. 의타기성으로 형상이 나타나기에 자성은 존재하는 것이나, 여기서 집착하여서 변계소집의 뜻으로 나타나는 사물입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 6식입니다. 이렇게 5온의 형성으로 물질인 사람으로 탄생하는 것이나, 내부의 실질적인 작용은 7식과 5식인 내입처의 소연연입니다.

 

욕망의 6식에 매달리면 7식의 삼매종자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것이 연기의 인과응보입니다. 이러한 수행이 수습위로서 보살 수행법입니다. 여기에는 진견도와 상견도가 있습니다. 소지장을 소멸하여서 삼매의 영체 종자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대승의 화엄 법화 금강경입니다. 문수보살예찬경은 보살의 수행경계이며 과정으로 티끌속의 종자경계입니다.

 

“능례소례성공적 감응도교난사의 이차도량여제주 문수보살영현중 아신영현문수전 일심계수귀명례“

예경하는자와 예경받는자 모두 성품이 공과 같습니다. 감응하는 것이 불가사의입니다. 붓다님의 도량은 제석천의 인다라망과 같습니다. 문수보살님의 3신 법신 보신 화신님께 범부 중생이 머리숙여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귀의 귀명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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