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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

[스크랩] 유식으로 관하는 인간과 세계 29부~3(소변계,변계소집의연,3무자성)

작성자ohry|작성시간22.09.06|조회수57 목록 댓글 0

유식으로 관하는 인간과 세계 29부~3(소변계,변계소집의연,3무자성)

 

밀의라는 말을 해석함

“밀의라는 말을 한 것은 요의了義가 아님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뒤의 2가지 자성은 체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어떤 어리석은 범부는 그것에 대해서 증익(增益)하여 실제로 자아와 법의 자성이 있다고 망령되이 집착하니, 이것을 곧 이름하여 변계소집이라고 하고, 이러한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 불세존께서 있음과 없음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무자성이라고 말슴하신 것이다. 지금 논에서, ‘말하자면 뒤의 2가지 자성은 체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어떤 어리석은 범부는 그것에 대해서 증익해서‘라는 등으로 설하는 것은, 앞에서 인용한 섭대승론에서 ’의타기성은 변계소집의 연이고, 원성실성도 간접적인 것에 의하여 말한다면 역시 소변계이다.‘라고 설하는 것과 같다. 대론제76권에서는 별도로 3가지 자성을 관찰함에 의해서 3가지 무자성을 건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중생이 의타기자성 및 원성실자성의 위에서 증익하는 변계소집자성에 의하기 때문에, 나는 3가지 무자성성을 세운다.라고 하고 나아가 널리 설한다. 그러므로 3가지 자성의 유체(有體=의타기,원성실) 무체(無體=변계소집)에 의지해서 총체적으로 밀의로써 3가지 무자성을 설하는 것이지, 3가지 무자성에 있어서 뒤의 2가지 자성은 없지 않고, 단지 변계소집만 없을 뿐이다“p846

“범부는 그것에 대해서 증익해서‘라는 등으로 설하는 것은, 앞에서 인용한 섭대승론에서 ’의타기성은 변계소집의 연이고, 원성실성도 간접적인 것에 의하여 말한다면 역시 소변계이다.‘라고 설하는 것과 같다“에서

변계가 6식 물질로 나타나는 것은 의타기의 형상에 의한 것으로 이 때는 형상이 변계의 연입니다. 변계는 뜻으로 사물입니다. 형상과 사물은 서로 다른 분야입니다. 가행위의 4선근 난위 정위가 4심사관입니다. 4가지는 명칭과 뜻 자성과 차별입니다. 명칭은 형상으로 의타기이며 뜻은 변계로 사물입니다. 명칭과 뜻은 서로 다른 의미로 찾아서 구하는 것으로 심구입니다. 자성과 차별에서 명칭과 뜻은 결국 마음으로 자성이며 차별이 없습니다. 살펴봄으로 실체가 없는 마음입니다. 즉 사찰입니다. 정위와 난위는 마음으로 유루입니다. 그리고 원성실성은 자성이지만 사물인 변계로 나타나기에 자성에 변계가 있는 소변계입니다. 즉 자성이 바로 사물입니다. 인위와 세제일법은 사물은 마음의 작용으로 결국 번뇌이기에 심구와 사찰이 사라진 자성으로 무루법입니다. 이것은 4實智관입니다.

 

마음은 주관과 객관이 없기에 대상이 사라지면 아집인 주관도 없습니다. 수행의 처음인 대상이 사라지는 것은 뜻인 사물은 변계이므로 마음입니다. 心은 실체가 없는 자성입니다. 따라서 사물은 無相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수행으로 체득하려면 무수대겁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자량위와 가행위의 지위는 1아승지겁인 무수대겁입니다. 즉 가행위의 난위 정위 등의 4선근은 1아승지겁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따라서 보살은 부처님의 가피를 얻어서 업장을 소멸하면, 계율을 엄정하게 하여서 佛法공부에 매진하여서 부처님 정토인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극락정토는 8지보살의 지위이므로 2아승지겁을 통과한 경계입니다. 여기서는 성불이 보장되는 횐희세계인 대환희국토입니다.

 

원래 보살의 수행은 소지장을 소멸하는 것이라, 따라서 정토는 광명의 세계인 죽음이 없는 곳입니다. 가행위의 난위(煖位)는 명득정(明得定)으로 처음으로 밟음인 태양이 나타나는 경계입니다. 여기가 1무수대겁의 끝부분입니다. 이것은 난행고행의 성도문입니다. 염불문은 부처님의 무량광명으로 업장을 소멸하므로 불세계(佛世界)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천사경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을 직면하여서도, 고통과 괴로움을 모른척하여서 죽어서 대지옥의 불바다의 고통을 만난다는 가르침입니다. 야마왕과 염라왕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몸을 받으려면 10선도를 닦아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90%이상이 죽으면 지옥과 3악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수다원의 경지를 얻는다는 것은 수십리의 강물을 헤엄쳐 건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독자적인 자력수행은 매우 어려운 수행법입니다. 지금 세상에 10선도를 닦는 자는 매우 희귀합니다. 10악의 반대가 10선입니다. 살생 투도 음행 망어 기어 양설 악구 등에서 자유롭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남을 해치는 해꼬지 험담 등에서 증상연의 종자가 태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정업불면으로 염불문이 정법입니다. 부처님께 정성을 기울여 신명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명언에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뜻을 표현하는 명언(표의멍언表義名言)이니, 능히 뜻을 표현하는(詮義) 음성의 차별이다.

오직 제6식만 능히 그 명언을 반연하여 능히 그 이름을 일으킨다. 나머지는 모두 반연하지 않고 일으킬 수도 없다. 곧 오직 뜻을 표현하는 음성의 차별이다. 표현하는 것(詮表)이 아닌 소리(聲)를 가려내니, 그것은 명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언은 소리의 굴곡의 차이로서 오직 무기의 성품이므로, 색 심 등의 종자를 훈성할 수 없다. 그렇지만 명언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에 마음이 그 명언을 따라서 오온 삼성의 법을 변현하여 종자를 훈성한다. 명언을 원인하여 종자를 일으키므로 명언종자라고 이름한다. 그러나 명언 자체는 종자를 훈성할 수 없다))

명언 아집 유지습기에서 명언은 소리이기에 번뇌인 6식입니다. 무명 행 식 명색 6입의 5 6 7 8식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윤회하는 6식이 인과법인 사물입니다. 능전 소전 상섭 집착 불집착의 5상에서 능전은 표현되는 의타이며 소전은 표현물이기 때문에 뜻으로 사물입니다. 집착하지 않는 불집착은 자성으로 서로 상섭하여서 하나의 마음인 자성입니다. 즉 의타기와 변계가 하나의 사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이고 자성입니다.

 

그러나 6식의 물질인 경우에는 의타와 변계, 명칭과 뜻, 능전과 소전, 형상과 명칭 뜻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입니다. 즉 물질은 존재하는 것이기에 非물질과는 차별이 있습니다. 물질은 연기로 존재하기에 5事 5법인 형상 명칭 분별 정지 진여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즉 의타기와 변계가 차별이 있지만 4성제의 정지에 의해서는 자성인 진여입니다. 즉 진여인 원성실성이 변계소집인 소변계입니다. 4성제에도 안립4성제와 비안립4성제가 있습니다. (안립은 아라한이며 비안립은 보살?)의 수행입니다. 佛法공부와 수행은 하루아침에는 성취되지 않는 무수대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전 윤회하는 사비세계는 사실은 적은 미련도 무서운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36계 도망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즉 보살은 3계 탈출이 목적입니다.

 

 

개별적으로 3가지 무자성을 해석함

“말하자면 이 처음의 변계소집에 의지해서 상무자성을 건립한다. 이것의 체상體相이 필경 있지 않은 것이, 허공의 꽃과 같기 때문이다. 처음의 자성은 체가 없다. 뒤의 2가지는 비밀히 설한다. 체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자성은 하나이면서 3가지가 동시에 성립되기에 3자성입니다. 3가지는 성품이 없는 무자성이나 광명의 강도가 다르기에 체상용에서 차별이 있습니다. 처음의 변계를 이루는 자성은 개체를 성립하는 물질인 8식의 근본식의 배경입니다. 의타기의 자성은 8식 변계의 이전의 배경이 되는 자성입니다. 즉 인다라망을 이루는 구슬입니다. 정토 8지 보살을 이루는 광명인 강도의 자성입니다. 불퇴전입니다. 이것이 2번째 자성입니다. 3번째 자성은 처음 진여로 나타나는 본체를 이루는 것으로 법신입니다. 의타기와 원성실의 자성은 사물인 물질의 배경이기에 그 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변계소집의 물질은 계탁으로 6식의 관찰입니다. 명색과 5온은 증상연입니다. 이것은 이숙식으로 이루어진 신체입니다. 이숙은 8식이기에 여기에 자성이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즉 3번영체입니다. 자성이 없으면 신체와 영체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2취는 견분과 상분, 소취와 능취입니다. 견분은 8식 자성이나 증상연의 6식에 의해서 6입의 외입처를 아집 아견으로 계탁하고 있습니다. 3천대천세계도 외입처인 이숙식입니다. 즉 8식안에 전개되어 나타난 세계입니다. 8식은 근본식인 자성입니다. 6식이 관찰하는 것은 사실은 자성인 영혼체가 관찰하고 있습니다. 명색과 5온이 자성이자 2취입니다.

 

 

((다른 하나는 경계를 나타내는 명언(현경명언顯境名言)이니, 곧 능히 경계를 요별하는(了境) 심 심소법이다.

곧 능히 경계를 요별하는 심 심소법이라고 함은 곧 일체의 7식의 견분 등의 마음이다. 상분의 마음은 아니니, 경계를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견분 등은 실은 명언이 아니다. 언설의 명언이 소전(所詮)의 법을 나타내는 것과 같이, 이 심 심소는 능히 요별되는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 그것과 같기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명언이라고 하지만, 체는 명언이 아니다. 명언의 체는 그 불상응행법이기 때문이다. 또 4온을 명(名)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체는 곧 명이니, 능히 뜻(경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곧 능히 경계를 요별하는 심 심소법이라고 함은 곧 일체의 7식의 견분 등의 마음이다. 상분의 마음은 아니니, 경계를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에서

경계를 요별하는 심 심소법은 8식 종자입니다. 등무간연으로 증상연으로 저장되어서 8식 종자입니다. 8식에는 자성인 영혼체가 6식인 신체와 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6식이 심왕이기 때문에 6식에 따라서 조종되나 실제의 견분은 7식입니다. 5식은 상분으로 8식 종자가 전변되어서 7식의 견분과 소연연으로 관계하고 있습니다. 7식 종자는 삼매이기에 서로 통하여서 다른 종자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은 5식이기에 사물인 6가지 감각으로 뜨오르면 6식으로 심왕입니다. 관대인은 견분과 상분이 분리되어 떨어진 상태이며 이것이 6식입니다.

 

“명언의 체는 그 불상응행법이기 때문이다. 또 4온을 명(名)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체는 곧 명이니, 능히 뜻(경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에서

명언의 체가 불상응행법인 것은 견분인 8식이 그 체는 진여 자성입니다. 이것은 7식인 영혼체입니다. 7식은 我의 3천대천세계입니다. 我의 업에 따라서 그 세계가 지금도 형성되어지고 있습니다. 가령 지옥에 100명이 간다면 100의 지옥 3천대천세계가 서로 겹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100명의 지옥 중생들이 불바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각기관은 관대인으로 견분과 상분이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我는 8식 자성으로 진여이기에 6식 물질일 뿐입니다. 타인에게는 6식의 아무게가 존재하는 것이나 我에게는 실체가 없습니다. 즉 我의 5온의 종자에는 타인의 종자인 티끌로 구성되어 성립되어져 있습니다. 我의 8식에는 我의 형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8식 종자는 7식 영체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영체가 바로 我의 3천대천세계입니다. 타인의 3천대천세계는 我의 티끌 종자로서 신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바의 3계 남섬부주가 전 우주 3천대천세계의 중심입니다. 말하자면 我가 我의 3천대천세계를 지금도 만들어 가고 있을 뿐입니다. 3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이기에 각각 항하사수세계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존재의 숫자만큼 항하사수세계가 있습니다. 즉 我는 我에게는 없고 남에게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의타기성에 의지해서 생무자성을 건립한다. 이것은 환술로 나타난 것(幻事)과 같이 여러 연에 의지해서 생겨나므로, 허망하게 집착하는 것과 같은, 스스로 그러한 성품(自然性)이 없기 때문이다. 가정적으로 무자성이라고 설하는 것이지, 자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의타기는 연이 있어 생겨나는 것이고, 스스로 그러하게 생겨나는 성품(自然性)이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무자성이라고 한다“ p847

변계소집 의타기성 원성실성은 3자성으로 아집 법집 구유(俱有)이며 아라한 보살 진여입니다. 처음의 6식의 我가 있어서 물질의 3천대천세계가 있습니다. 즉 변계소집입니다. 의타기성은 인다라망의 구슬이 법집이 되어서 물질인 상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2가지 공은 견분과 상분입니다. 2가지 공이 함께하여서 진여가 될 때 지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후득지로 보살의 지혜인 무생법인입니다. 견도인 통달위에서 진여인 진견도를 이루며 즉 무간도인 세제일법입니다.

 

법지(法智)는 견분과 상분을 따로 관찰하기에 법의 지혜이며, 유지(類智)는 我와 법을 함께 관찰하기에 진여의 지혜입니다. 여기서 번뇌장과 소지장이 구분되어서 그 원인은 의타기성입니다. 이것은 보살의 수행법입니다. 2가지 공과 2가지 장애에서 상박(相縛)과 추중박(麤重縛)이 있습니다. 이것은 수면이기에 상박은 상분이 견분에게 영향을 미치어서 7식과 5식의 관계와 같습니다. 추중박은 더욱 미세하게 영향을 미치어 10지보살 끝인 금강유정에서 소멸할 수 있습니다. 한편 상견도는 진견도에서는 진여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인 법 구유에서 본을 뜨서 방학(倣學)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3심의 진견도가 바로 상견도입니다. 3심은 각각 다르기에 차별이 있어서 상견도에서 이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견도를 지나서 수습위인 수도에서 초지부터 보살은 무간도 해탈도 승진도를 통하여 승진하고 있습니다. 즉 상견도는 견분과 상분 진여를 동시에 관찰하여서 본을 뜨는 지혜이므로 보살의 후득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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