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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

삶과 윤회, 업보

작성자ohry|작성시간23.03.12|조회수84 목록 댓글 1

인생은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입니다. 세상과 우주의 참된 모습은 구경의 진리이기에 진여의 모습을 관찰하여서 이것을 운용할 수 있는 경계입니다. 4가지 지혜인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 성소작지입니다. 즉 2가지를 체득하는 것이 구경입니다. 열반과 보리입니다.이 지혜인 보리가 4가지 지혜입니다.

열반도 4가지가 있습니다. 진여열반 유여열반 무여열반 무주처열반입니다. 이러한 경지에서 진여를우리는 대면할 수가 있습니다. 대면이란 몸으로 체득하는 것으로 보살의 경계로 8지보살이상이 되어야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극락세계의 불퇴전의 경계입니다. 유정들의 입장에서는 직접 수행으로는 2아승지겁의 끊임없이 노력이 필요한 입장입니다. 그 중간에 소지장의 연을 만나면 지옥이나 3악도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쁜 습기에 몰락될 시에는 선업을 만나는 기회를 거의 영구적으로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 제발달다는 4선정 즉 부동무위의 무간도의 가까이의 경지입니다. 그러나 세존님을 헤치려고 손톱에 독약을 발라서 가다가 산체로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지니는 지혜와 수행력은 소지장을 극복하지 못하여 매우 위험하고 불안한 경계가 숨어 있습니다. 사바의 생활은 욕망과 욕심입니다. 산다는 것이 욕망과 살생으로 아상이 전부입니다. 진리의 연기법은 법이라는 사물이나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관계속에서 있기 때문에, 아가 존재하면 윤회하는 신세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타라는 생각은 번뇌의 종자로 이것이 이숙식이 되어서 다음 생에 5온의 신체를 받습니다. 이 생각이라는 종자가 바로 물질입니다. 모든 원리를 파악하고 나서 진정한 수행을 할 수는 없습니다. 고통을 모면하는 데는 스스로 배우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욕망의 산물입니다. 다 버려야 마땅하지만 필요한 것은 계율의 바탕으로 소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생존이라는 욕구입니다. 즉 프로이드의 갈애입니다. 한편 칼 융은 자성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한편 유식에서는 물질에서 전의를 통하여 진여로 전환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지아설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항비법에서 뎃목이라는 몸으로 윤회를 벗어나지만, 그 몸 조차도 없다고 매달리지 않습니다. 즉 유위와 무위와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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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애벌레와 나비의 꿈 | 작성시간 23.03.12 감사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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