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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

발업과 潤生의 증감

작성자ohry|작성시간23.10.20|조회수45 목록 댓글 0

(물음)
무슨 이유로 업을 일으키는 것은 총체적으로 무명만 건립하고, 업을 성숙시키는 지위는 따로 갈애와 취착을 건립하는가?

(답함)
비록 모든 번뇌가 모두 능히 업을 일으키고 성숙시키지만, 업을 일으키는 단계에서는 무명의 힘이 증성하다. 열한가지 수승한 일을 갖추기 때문에, 소연 등을 말한다. 자세한 것은 경전에서 설한 것과 같다.

((업을 성숙시키는 단계에서는 갈애의 힘이 치우쳐 증성하니, 갈애는 마치 물이 능히 기름지고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설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반복해서 물을 끌어대어야 비로소 존재의 싹(有芽)을 생겨나게 한다. 이에 처음과 뒤에 의해서 갈애와 취착의 2가지로 나누고, 거듭해서 일으키는 뜻이 없으므로 하나의 무명만 건립한다.

이는 어떤 뜻에서 발업은 다만 하나의 무명임에도, 윤생의 번뇌는 갈애를 나누어서 취착으로 하는가?라는 물음을 전제한다. 존재의 싹을 생겨나게 하는 데는 반드시 반복해서 물을 끌어 대어야 하니, 밭에 물을
대는 등과 같다. (십지경론) 제8권에 이르기를 갈애가 증성한 것을 취착이라고 이름한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을 갈애라고 이름하고, 뒤를 취착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발업의 뜻은 거듭 일으킬 수 없으므로 하나의 무명만을 건립하니, 마치 하나의 싹이 생겨나면 다시 생겨날 수 없는 것과 같다.))p779

무명은 견일처, 3계, 무명주지에 머물고 있습니다. 견일처는 한 생각이므로 하나의 자성입니다. 즉 무명이 바로 자성입니다. 3계는 3천대천세계입니다. 무명주지는 소지장으로 습기이므로 번뇌가 없습니다. 무명은 새싹으로 존재를 뜻하고 있습니다.

갈애와 취착은 여러 종류의 번뇌와 같습니다. 애취유가 능생지能生支이므로 새명의 탄생입니다. 소생지所生支가 바로 생 노사입니다. 즉 윤회하는 중생입니다. 생명과 존재의 근원은 자성과 무명으로, 이것은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존재가 하나의 자성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의 무명입니다.

지금은 佛法이 남김 없이 세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진리와 진실을 갈망하는 사람은 자신의 관심을 기울이면 얻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또한 잘모른다 하더라도 묻고 배우면 얼마든지 진리을 찾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10인 4연 5과의 인연 과보가 우리 몸속에 저장되어 있기에, 이숙인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受 감수가 태속에 완성되면 이숙식 이숙인이 완성되어서 과보가 나타나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5 7일 즉 35일 입니다. 소인지所引支가 식 명색 6입 촉 수입니다. 촉과 수가 나타나면 존재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정보가 다 노출되어 있어도 업장으로 전혀 관심없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노력으로 바꾸는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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