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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

소지장으로 열반을 증득함을 문답함,법공진여

작성자ohry|작성시간24.03.29|조회수40 목록 댓글 0

외인의 물음
((모든 소지장은 이미 태어남을 감응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을 끊어서 무주처 열반을 얻는가?
제2지의 범계의 어리석음도 소지장이다. 역시 업을 일으킨다고 해도 다만 소지를 장애할 뿐, 태어남을 초감하지 않기 때문에, 이 힐난을 하는 것이다.))

논주의 답
((그것이 능히 법공진여를 숨기고 덮으므로(隱覆), 대비와 반야를 일으켜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유정을 이롭고 안락케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을 끊을 때에 법공의 이치를 나타낸다. 이 이치는 무주처열반이니, 2가지 극단(二邊)에 모두 머물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대비와 반야를 일으키지 못하게 한다고 한 것은, 진여가 증득대상의 연(所證緣)으로 되어 후득지를 인으킨다는 것이다. 후득지는 곧 반야이니, 반야가 능히 대비를 일으키기 때문에, 생사와 열반 2가지에 모두 머물지 않는다. 진여를 이미 증득하지 못했다면, 대비와 반야는 일어나지 않는다.))p968

((소지장도 역시 열반을 장애한다면, 어째서 그것을 끊어서 택멸을 얻지 않는가? 열반은 택멸로써 성품을 삼기 때문이다.))

((택멸은 계박을 떠나는 것(離縛)인데, 그것은 계박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혜가 간택함에 의하여 계박이 끊어져서 멸을 얻는 것을 택멸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소지장은 유정을 묶어서(縛) 생사의 괴로움을 초감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끊고 나서도 택멸을 얻지 않는다.))

변계소집은 아견 아집으로 我에 대한 집착입니다. 번뇌장의 6도 윤회의 세계입니다. 의타기성은 我,法에 대한 집착으로 법공진여입니다. 法忍으로 무간도 입니다. 해탈도에서 모든 장애가 없기에 열반과 보리입니다. 소지장은 수면이라 번뇌장으로 니타나지 않습니다. 즉 윤회의 현행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사물의 종자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즉 8식에서 밝음이 있으며, 여기서 5식 종자가 발전하여서 6식의 의식이 있으나, 이것은 7식이 근본입니다.

7식 영체는 8식의 자성입니다. 이것은 밝음이며 6식은 어두움입니다.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거슬러서 장애와 같습니다. 즉 수면의 소지장입니다. 변계는 번뇌의 집착으로 사물이나, 소지장은 알 수는 없으나 현행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즉 의타기성은 소지장의 소멸로 법공진여입니다. 즉 8식 자성이 법공진여입니다.

여기서 무주처열반은 정토와 사바가 차별이 없는 세계입니다. 반야는 정토이며 대비는 사바입니다. 보살의 수행은 후득무분별의 지혜입니다. 사바의 번뇌와 고통을 대비로써, 진여의 반야로 안립하여서, 반야와 대비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즉 진여가 나타나면 반드시 대비가 따르고 있습니다.

열반에 택멸이 따르는 것은, 간택 선택하는 것은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입니다. 번뇌망상의 잡염으로 부터 청정의 선택입니다. 여기에는 후득의 무분별지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무여열반은 완전한 택멸입니다.

유여열반은 소지장의 작용이 남아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죽으면 습생 난생, 二形,다른 姓을 받을 수 있습니다. 2승의 무여열반은 해탈이나 반야의 대비의 지혜는 없습니다. 즉 2승과 3승의 차이는 보리에서 즉 반야지혜에서 차별이 있습니다.

자성열반 유여열반 무여열반 무주처열반에서 자성열반은 진여 자체로서 해탈이며 나머지 3은 택멸무위법입니다. 여기서 6무위는 허공 택멸 비택멸 진여 부동무위 상수멸입니다. 부동무위는 4선정이며 상수멸진정의 이 2는 유위법이 남아 있습니다. 즉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의 2가지의 가능성이 모두 있습니다.

해탈 열반에도 차별이 있기에 부처님의 정토인 극락세계에서 안전한 수행으로, 성불의 길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 사바에서는 더 이상 미련이 남아 있으면, 타락과 혼잡한 섞임으로 급류에 빠져 허덕임이 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염불을 통한, 정토왕생의 念願을 갖추는 삶입니다. 세속에는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한 방편입니다. 3계 탈출이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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