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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

의타기성과 견분 상분

작성자ohry|작성시간24.04.26|조회수47 목록 댓글 0

겸하여 유식의 견분 상분의 같고 다름을 해석함

제1설
((그런데 상분 등은 식에 의지해서 변현되고, 식의 성품인 의타기성 중의 진실實과는 같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유식의 이치는 성립되지 않을 것이니, 식과 내부경계內境를 모두 실제로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첫째 해석해 이른다. 심소가 전변된 것을 등취하는 것이고, 전변된 것所變을 이름하여 행상이라고 하니, 식에 의지해서 변현된다.고 하는 등은 오직 난타의 이분설이다.

또 삼분을 세우고 아울러 아래의 두 단계를 두어서 해석한다. 식에 의지해서 변현된다고 하는 등에서, 상분 등 이라는
말은 견분을 등취한다. 식 자체가 전변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 견분은 비록 체는 의타기이지만, 식 자체의 작용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지말末이고 작용이기 때문이다. 태양 및 바퀴와 같고, 등 및 빛과 같으니, 실과 허는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유식이라고 말해서는 안되고, 오직 경계와 견분 등(唯境唯見分等)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상 견분과 식 자체가
모두 실제로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p1008

제2설
견해를 표방함
((혹은 식과 상분 견분 등은 연으로부터 생겨나므로 모두 의타기성이다. 허하고 실함(虛實)은 식과 같다.
모두 연으로부터 생겨나는 인연의 법이기 때문에, 이 2가지(상 견분)와 식의 허 실은 모두 같다. 비록 과거와 미래 등을 반연함이 있지만, 상분은 의타기이기 때문에, 식(자체분)과 많이 다르지 않다. 또 이 논사의 뜻은, 다만 상분과 식은 한 종류로 있어 실법이고, 과거와 미래를 반연하는 것이 단지 가법을 얻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른 뜻(호법)이다.))

유식의 힐난을 회통함
((오직 이라는 말은 외부 경계를 버리는 것이지, 내부 경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진여도 역시 실법實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오직 이라는 말은 심외의 변계소집을 버리는 것이지, 내부의 식이 전변한 상분 등을 부정하지 않는다. 만약 이와 같이 해석하지 않는다면, 진여도 실제로 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진여는 이미 실제이므로, 경계(내부경계)도 곧 실제임이 성립된다. 진여를 반연하는 마음을 어찌 가법이라고 인정하겠는가? 만약 이것이 가법이라면 응당 진여를 반연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만약 가법인 것이 아니라면, 견분도 곧 실법이다.ㅡ ㅡ))

제3설
((혹은 상분 등은 모두 식을 성품으로 한다. 훈습한 힘에 의해서 여러 심분과 비슷하게 생겨나는 것이다. 진여도 역시 식의 실제 성품이니, 따라서 식의 성품을 제외하고는 별도로 법이 있지 않다.ㅡ ㅡ))

상분과 견분의 성립에 3가지 설이 있습니다. 난타 호법 안혜의 3의 논사가 있습니다. 처음 1설은 견분인 식의 관점에서 상분이 나타나고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제2설은 의타기성으로 2가지 상분 견분이 성립된다는 뜻입니다. 의타기성은 8식 자체에서 견분과 상분을 바라보기에 空인 생공입니다.

즉 8식에서는 6식은 그냥 공 뿐입니다. 6식 물질은 변계소집이기에, 따라서 상분의 성립은 견분에 의해서 있기에 즉 견분에 의한 상분이 있습니다. 제2설은 즉 의타기성은 8식 진여가 있기에 견분과 상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식인 진여의 역할에 따라서 상분이 존재하기에 2가지 즉 견분 상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견분과 상분은 같은 것으로, 견분의 관점에서 상분이 성립되고 있습니다.

제1설은 의타기성이기에 空의 역할은 접어두고 識을 말하여서 견분과 상분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2설은 의타기는 공에서 물질을 관찰하기에, 空이 곧 識이기에 여기서 견분과 상분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난타 호법 안혜논사 모두 의타기성에 대한 개념 정리는 이미 확립된 것 같습니다. 즉 견분과 상분에서 발생하는 상분의 성립은 변계소집이기에 견분의 주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바세계의 6식은 가상이며 실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식은 8식 내면이기에 외부에 사물이 있다는 것은 변계소집입니다. 8식 근본식은 허공 처럼 물질의 질량입니다. 따라서 무색계도 3계의 윤회세계입니다. 색계 4선정 정거천은 윤회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제3설은 견분 상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식의 성품에서 나타는 업장의 잔재물과 같은 것이 상분이라는 주장입니다. 다만 하나의 識 뿐입니다.

이 세계와 세상은 물질과 감각, 욕심 욕망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된 가치의 전도는 망각을 유도하고, 외면으로 매일 일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타성적인 복종적인 것에서 의심해야 살아갈 길을 열린다는, 無我에서 진로를 개척할 수 있습니다. 무아가 자유입니다. 정토는 상분과 견분의 바른 길입니다. 즉 변계소집이 없어야 극락세계의 실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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