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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

생명존재 성립의미2

작성자ohry|작성시간24.11.29|조회수45 목록 댓글 0

3무자성을 해석함
총체적 답의 뜻
((곧 앞에서 말한 3가지 자성에 의지해서 그 뒤에서 말하는 3가지 무자성(無性)을 건립하니, 곧 상相무자성 생生무자성 승의勝義무자성을 말한다. 따라서 붓다께서는 밀의密意로써 일체법은 모두 자성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지, 자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대론 76권과 해심밀경 등에서 덕본德本보살이 설법을 청함에 대하여,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과 모두 같다.)) p846

변계소집은 상무자성 입니다. 현상계는 견분 즉 능취가 상분이 현존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상태입니다. 진여가 진실이기에 모두가 동시인 하나의 시 공간 입니다. 물질은 시간의 경과입니다. 의타기가 먼저 선재조건 입니다. 즉 자성의 서로 결합이 먼저 있습니다.

의타기성은 생무자성입니다. 자성의 결합은 종자를 쌓아서 마음인 분별이 나타나는 6식 7식입니다. 이것은 8식 자체의 상황입니다. 8식은 원래 자성이기에 이것이 心으로 근본식입니다. 즉 심이 자신의 8식을 관찰하는 것이 의타기입니다. 능취와 소취가 있어서 유有인 유루법입니다. 즉 견분과 상분의 분리된 상태입니다. 변계는 시간의 흐름에 떨어진 2취取가 한 공간입니다. 즉 물질의 착각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승의무자성은 원성실성 입니다. 존재가 변계를 현실적으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가상이기에 낮은 단계의 空입니다. 의타기는 물질 이전의 단계이므로 근본지로 2승의 경계입니다. 원성실의 진여는 전체를 통합하는 空입니다. 진여가 진리의 기본개념 입니다. 즉 가장 미세미묘한 진실입니다.

,밀의로써 일체법이 없다는 것은,
의타기는 유루법에서 있음을 뜻하고 있으며 원성실은 무루법에서 있음을 뜻함 입니다. 즉 모두 체성이 있습니다. 의타는 견분 상분의 有는 현상계입니다. 그래서 변계소집입니다. 진여의 有는 지혜의 존재이기에 출세간법 입니다. 다만 현실 현상계의 유는 체성이 없기에 가상세계 입니다. 즉 물질의 사바는 착각하는 가상세계 입니다. 밀의는 사바의 집착을 벗어나는 방편법 입니다.


밀의라는 말을 해석 함
((밀의라는 말을 한 것은 요의了義가 아님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뒤의 2가지 자성은 체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어떤 어리석은 범부는 그것에 대해서 증익增益하여 실제로 자아와 법의 자성이 있다고 망령되이 집착하니, 이것을 곧 이름하여 변계소집성이라고 하고, 이러한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 불세존께서는 있음과 없음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무자성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의타와 원성실은 있음이지만 변계가 생명현상의 본뜻이기에 생명존재 자체는 無이며, 실체가 없습니다. 계탁으로 연기의 존재입니다. 붓다님께서 현상계의 집착으로 끝없는 윤회의 나락에서 헤메는 중생들에게, 자성이 없음이기에 생명존재가 환영幻影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승의무자성은 세계와 우주는 진여로 성립되었기에, 변계와 의타기의 불완전한 자성을 떠나서 이를 극복하는, 양쪽 모두를 상섭하는 지혜의 세계가 진정한 진리세계 입니다.

((지금 논에서, 말하자면 뒤의 2가지 자성은 체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어떤 어리석은 범부는 그것에 대해서 증익해서라는 등으로 설하는 것은, 앞에서 인용한

십대승론에서, ,,의타기성은 변계소집의 연이고, 원성실성도 간접적인 것에 의하여 말하다면 역시 소변계이다.,,라고 설하는 것과 같다.))

,의타기가 변계소집의 연이다는 것은 ,
의타기에 의해서 착각의 변계가 성립되기에 즉 변계는 8식과 같습니다. 여기에 5678식이 함께 뭉쳐서 있습니다. 6,7식이 견분이며 8,5식이 상분입니다. 이것은 물질의 시간이기에 잘못된 견해입니다. 변계와 의타기는 하나의 자성으로 동일체 입니다. 다만 2분의 둘로 나눈 현상입니다.

,원성실도 간접적으로 소변계이다.는 것은,
8식의 현상계가 소변계입니다. 여기서 번뇌 망상을 제거하면 진여자성이 나타나기에, 사실은 원성실과 변계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대론 제76권에서는, 별도로 3가지 자성을 관찰함에 의해서 3가지 무자성을 건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중생이 의타기자성 및원성실자성 위에서 증익하는 변계소집자성에 의하기 때문에, 나는 3가지 무자성을 세운다.라고 하고 나아가 널리 설한다. 그러므로 3가지 자성의 유체有體(의타기,원성실) 무체無體(변계소집)에 의지해서
총체적으로 밀의로써 3가지 무자성을 설하는 것이지, 3가지 무자성에 있어서 뒤의 2가지 자성은 없지 않고, 단지 변계소집만 없을 뿐이다.))

진여자성은 세간과 출세간, 망념과 청정의 2가지가 함께 동시에 성립되고 있습니다. 본래의 뜻은 중도이지만, 중생들이 사바가 실존하는 것으로 집착하기에 3무자성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즉 有無 양변에서 떠나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심오한 佛法의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지혜의 안목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여는 3자성 모두에 통용되고 있습니다. 수행을 통하여 열반을 얻어도 본래의 진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23송
곧 이 세 가지 자성에 의지해서
그 세 가지 무자성을 건립한다
그러므로 붓다께서는 밀의密意로써
일체법은 자성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24송
처음은 곧 체성이 없는 성품이고
다음은 스스로 그러함이 없는 성품이며
뒤는 앞의 집착된
자아와 법을 멀리 떠남에 의한 성품이다

25송
이것은 모든 법의 승의이고
또한 곧 진여이다
항상 그러하여 그것의 성품이기 때문이니
곧 유식의 진실한 성품이다

24송의 체성이 없는 성품은 변계이며, 스스로 그러함이 없는 것은 의타기이며, 자아와 법을 멀리 떠난 것은 원성실입니다. 자아는 변계이며 법은 의타기 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발생하지만 소지장의 미세습기는 끝까지 존재하기에 법은 연기의 의타기 입니다. 즉 보살의 수행처 입니다.

번뇌 망상의 죄업 중생은 바로 눈앞의 이익에 사생결단으로 돌진하고 있습니다. 도처에 함정과 계략으로 난무하고 있습니다. 평온한 세상살이는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즉 업장의 보복이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和眼이나 내면은 알 수 없습니다. 복덕을 가지면 자만심이 무슨 짓거리를 행할지, 비천하면 범죄의 악행의 가능성, 그 행위의 결과는 우리를 윤회의 괴로움의 한탄과 탄식 뿐입니다.

축생으로 태어나면 인간에 종속되어 자신을 세울 수 없습니다. 아귀 지옥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천상은 쾌락에 침몰되어 있습니다. 인간세상은 잔재주와 잔꽤, 음흉이 노리고 있습니다. 혼자 선량한 것은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악에 동화된다면 상승작용으로 마구니의 괴수魁首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의 경력은 깊이가 있어 더욱 위험합니다.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대자비의 원력으로 극락세계 불퇴전의 정토가 열려있습니다. 잠시라도 정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신체인 법신의 몸속입니다. 즉 성불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여러 잡다함은 버리고 염불수행과 경전공부에 전력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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