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가지 무자성을 해석함
((말하자면 이 처음의 변계소집성에 의지해서 상무자성을 건립한다. 이것의 체상體相이 필경 있지 않은 것이, 허공의 꽃과 같기 때문이다.
처음의 자성은 체가 없다. 뒤의 2가지는 비밀히 설한다. 체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p847
변계소집은 사바이기에 진여가 마지막으로 출현되는 세계입니다. 의타는 진여가 전체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나는 보살의 법안입니다. 즉 의타기의 연기법 입니다. 인연법을 통달하여서 붓다님인 진여자성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살의 지위입니다. 즉 1번영체와 2번영체가 하나의 쌍입니다. 다음은 보살인 법안의 자성이 결합하여서 아라한의 자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즉 2번 3번입니다. 아라한의 연기를 통달하여서 보살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즉 2번 3번 영체가 같은 조합입니다. 자성 자증분 증자증분으로 혜안 법안 佛眼이 나타나는 과정입니다.
다음 3번 4번에서 4번이 사바의 물질세계 입니다. 즉 물질이 사라지면 지혜가 나타나는 이치입니다. 물질은 생각이기에 생각이 소멸되면 아라한의 지혜가 니타납니다. 이 생각은 종자의 쌓임으로 외관의 5온을 이루고 있습니다. 종자는 8식이기에 외관의 생각이 물질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관은 생각이 없기에 지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변계소집은 2취로 착각하여 나타나는 경계입니다. 즉 견분 상분입니다. 다음은 2취 의타기로 연기법입니다. 연기공에서 견분과 상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변계는 견분과 상분 만을 취하여서 사바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즉 외관만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연기공은 진여의 결합으로 미세하여서 보살의 수도에서 관찰하여 소지장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사바공은 물질이어서 거친 생각의 소멸이므로 4번영체의 경계입니다. 연기공은 견소단과 수소단의 추 중을 소멸하므로 초지보살 입니다. 즉 번뇌장과 소지장의 거친 번뇌의 소멸이 초지인 보살수행의 출발점 입니다. 아라한은 견소단의 소멸입니다. 물질의 단계에서 외관이 발생하기에, 변계에는 相을 따라서 가면, 집착과 욕망이 쌓이는 결과 입니다. 지혜의 단계에서는 삼매이기에 외관이 없습니다.
((다음의 의타기성에 의지해서 생무자성을 건립한다. 이것은 환술로 나타난 것(幻事)과 같이 여러 연에 의지해서 생겨나므로, 허망하게 집착하는 것과 같은, 스스로 그러한 성품(自然性)이 없기 때문이다. 가정적으로 무자성이라고 설하는 것이지, 자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의타기는 연이 있어 생겨나는 것이고, 스스로 그러하게 생겨나는 성품(自然生性)이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무자성이라고 한다.))
의타기를 관찰하는 것은 보살의 경계이기에 자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불하여야 완전한 연기의 실상을 증득할 수 있습니다. 즉 진여를 실제로 관찰하고 운용하는 경지 입니다. 의타기 자체가 공이며 緣이기에 자성 자체가 미세한 진여입니다. 인연은 견분의 자체와 연의 他가 있기에, 즉 식의 자증분과 타인 8식이 인연 연기 입니다. 타인이라는 종자와 我라는 식이 결합하여서 5온을 이루고 있습니다. 我의 자증분에는 타의 자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我는 자증분의 식이 我의 본체입니다. 나머지는 他인 타인입니다. 여기서 2취가 성립되어서 의타기성 입니다. 변계는 소취인 8식 자성을 我로 간주하기에, 여기에는 相이 없는 상무자성 입니다. 의타기는 2취가 있기에 체성이 있는 유루이나, 연기공이므로, 자연발생성은 없습니다. 여기서 진여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변계와 의타를 초월하는 자성의 개념입니다.
((뒤의 원성실에 의지해서 승의무자성을 건립한다. 말하자면 곧 승의는 앞의 변계소집의 자아와 법을 멀리 떠난 성품이기 때문이다. 가정적으로 무자성이라고 설하는 것이지, 자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니, 큰 허공은 비록 여러 색법(衆色)이 두루하지만, 여러 색법의 무자성으로 드러나는 것과 같다.
승의는 다만 무자성으로 드러나는 것(無性所顯)이기 때문에, 이름하여 무자성이라고 한다.))
변계소집의 자아와 법은 현상계입니다. 중생들은 我와 대상인 法이 실재하는 것으로 매달리며, 서로 싸우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진여는 변계의 존재를 떠나며, 의타기의 연기의 有도 벗어나 있습니다. 연기는 他와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양쪽 모두 벗어난 본래의 면목이 진여자성 입니다. 진정한 한 순간이 전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러 색법은 시간과 공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성의 쌓임과 결합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변계와 의타기를 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욱 깊은 최초의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진여입니다.
의타기성을 승의무자성이라고 설하지 않는 이유
((의타기성도 승의가 아니기 때문에 역시 승의무자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두 번째 것과 혼동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지 않는다.
승의무자성이라는 말에서 무無라는 말은 아니다(非)라는 것이다. 의타기는 비록 체가 있는 법이지만, 승의가 아니므로 승의무(승의가 아님)자성이라고 이름한다. 대론 제76권에서 이르기를, 말하자면 모든 법은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이기 때문에 무자성이라고 이름한다. 곧 연생의 법도 역시 승의무자성이라고 이름한다. 모든 법 중에서 만약 청정한 소연의 경계라면, 나는 그것을 나타내어 승의무자성이라고 하고, 의타기의 양상은 청정한 소연의 경계가 아니기(술기에는 亦, 대론 원문에는 非로 해석함)때문에, 역시 승의무자성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한다. 만약 의타기를 설하여 승의무자성이라고 한다면, 이 원성실성은 곧 두 번째의 승의무자성이 된다. 지금은 의타기의 승의무자성은, 두 번째인 원성실의 승의무자성과 혼동할 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이 게송 중에서는 오직 원성실성의 승의무자성을 설하고, 의타기를 승의무자성으로 하는 것은 설하지 않는다.))
의타기도 연생법이기에 그 자성이 없습니다. 또한 의타기는 자성의 결합으로 그 본질은 미세한 진여입니다. 그러나 진여는 청정 그 자체이기에 서로 마주 하여도 진여 자체로 남아 있습니다. 의타기의 본질은 진여이지만 최초의 진여인 자성과는 차별이 있는 쌓임 입니다. 따라서 의타기와 원성실은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입니다. 즉 말하자면 변계소집의 자성과 의타기의 자성과 원성실의 자성은 그 차별이 있으며 서로 다른 것 입니다. 사바세계의 空과 연기법의 空과 진여의 空은 서로 다른 지혜입니다.
현실의 사바는 진실을 알기도 어렵고, 살아가는 것도 함정이 많습니다. 유파도 많고, 이 편 저 편도 많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진로를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사바는 고통 자체이기에 저 쪽 진여의 세계로 가야 합니다.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세계가 연화장 정토입니다. 여러 겁의 수행을 통하여 이룩하신 정토입니다. 그곳은 불퇴전의 정토이기에 8지보살의 경계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미 2아승지의 대겁을 지나고 있습니다. 불퇴전이란 잡염의 번뇌가 없는 경계입니다. 선법의 바라밀의 정토이기에 환희의 국토입니다. 부처님의 대자비의 세계이므로 놓칠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히 염불수행으로 왕생극락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