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에 웬 화투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도움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퍼왔다.
화투 비광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저 사람이 바로 일본 서예의 창시자라
불리는 오노도후(894-964) 라고 한다.
그가 젊었을 때 일이다.
서예 공부를 아무리 해도
진도가 안 나가고 발전이 없자
공연히 짜증이 났다.
"에라, 모르겠다. 이젠 더 못하겠다.
집어 치워야지. 내가 글을 잘 써서 뭐하나?"
화가 난 오노도후는 서예를 그만 두려고
마음 먹고 일어나서 밖으로 바람이나
쐬러 나갔다.
그때가 장마철이라 밖에는 비가 뿌려댔다.
오노도후는 비참한 심정이었다.
우산을 들고 한참 걸어가는데 빗물이
불어난 개울 속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빗물이 불어나서 흙탕물로 변한 개울에서
떠내려 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개울 옆에는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개구리는 그 버드나무에 기어 오르려고
안간 힘을 다했지만 비에 젖은 버드나무는
미끄러워서 헛탕만 쳤다.
'저 놈이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몇 번 바둥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흙탕물에
쓸려 가겠지.' 오노도후는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을 했다.
개구리는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
계속 미끄러지다가...결국에는 죽을 힘을
다해 버드나무로 기어 올랐다.
그걸 지켜 본 오노도후는 크게 깨달았다.
'저런 미물도 저렇게 죽을 힘을 다해 나무에
기어 오르는데 내가 여기서 포기를 하면
개구리만도 못하겠구나. 참 부끄럽다!'
그 길로 다시 서당으로 돌아가 필사적으로
서예 연습에 매달려 마침내 일본 제일의
서예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화투가 끝나는 마지막 장에 오노도후의
재기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넣은 것은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이며, 절망의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염불도 그와 비슷하여 주로 삶에서 아주 큰
시련을 얻은 사람이 각성하여 염불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지만 염불을 한
공덕은 살아서도 물론이고 죽어서 까지 극락
왕생을 하게 하는 가장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