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염불감응과 왕생

[스크랩] 치매노인

작성자慧蓮|작성시간18.04.04|조회수43 목록 댓글 0

  치매노인


  (1)

  융도隆道스님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작고 아름다운 둥근 합 하나를 가지고 다닌다. 이것은 스님이 가장 아끼는 기념품일 뿐만 아니라 그가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증거이다.


  “누구든지, 죄업이 얼마나 많든, 수행이 있든 없든 막론하고 염불하며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기만 하면 왕생하지 못하는 이가 없다” 스님의 이 말을 듣고, 이미 정토법문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왕왕 의심을 하며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것이고, 염불왕생에 대한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당신이 염불하는 사람은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무슨 증거가 있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이때마다 융도스님은 자신의 보배 합을 꺼내면서 “제가 당신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스님이 조심스럽게 겹겹이 싸여 있는 보따리를 풀자 그 속에 유골이 보였다.


  일반인들, 특히 불자가 아닌 사람들은 대부분 죽은 사람의 뼈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데, 재수 없다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융도스님이 보여준 유골은 사람들이 서로 앞다투어 둘러싸고 구경한다. 왜냐하면 이 유골들은 가지각색으로 너무나 아름다워서 일종의 상서로운 빛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 속에 있어서 실컷 볼 수 없다며 융도스님의 동의를 얻은 어떤 사람이 공경스럽게 한 알 한 알씩 손바닥에 올려놓고 자세히 관상한다. 유골은 분홍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또 반짝거리는 것도 있고, 까맣고 빛나면서 투명하여 유리 같은 것도 있으며, 어떤 것은 윤기 나는 새하얀 백옥과 같았고, 또 여러 가지 모양의 사리화와 견고자 등이 있었는데, 이를 구경한 사람마다 칭찬이 자자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틀림없이 어느 고승대덕이 오랜 세월 고행을 통해 얻은 결정체인 사리라고 여기기도 하였고, 어떤 사람은 생명의 신비함에 놀라면서 염불이 실로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것은 융도스님 어머니의 유골이었다.


  스님의 어머니 장숙금은 성도사람으로, 1931년 4월 7일에 태어났다. 1990년에 삼보에 귀의하여 매달 초하루·보름에만 채식을 하였다. 먼저 『대비주』를 배웠었지만 몸이 약하고 병치레가 많아서 배운 후에 다시 다 잊어버리고 가끔씩 염불만 했을 뿐이다. 80년대 후기부터 노년 기관지염에 걸려 매일 약을 먹고 해마다 입원을 해야 했다. 매번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입원해야 하는데, 돈을 거의 만원(약 200만)가까이 썼다. 90년대 이후, 병세가 폐기종과 폐심증으로 발전하였고, 1996년부터 뇌가 위축되면서 노인 치매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병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고 또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윈치 않았던 그녀는 여러 번 자살을 생각했었다. 


  매번 융도스님이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항상 친절하게 “어머님, 염불하셨습니까?”라고 물으면 어머니는 도리어 “무슨 염불을 해! 내가 곧 죽게 생겼는데”라는 대답만 하였다. 분명 심력이 부족한 것이다.


  이때마다 융도스님은 “곧 죽을 거니까 더욱 염불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매번 “염불만 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어머니를 위로해주었다. 


  1998년 11월 16일, 융도스님이 어머니를 만나러 집에 돌아왔더니, 어머니가 탁자 옆에 앉아서 한가롭게 사람들이 마작을 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융도스님은 좋은 말로 일깨워주었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아직도 한가롭게 남들이 마작 하는 것을 구경하고 계십니까? 염불을 해야 합니다! 어머님이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기만 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습니다. 어머님이 염불만 하시면 우리는 장래에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는 바로 어머니를 모시고 탁자를 돌면서 염불을 하였다. 겨우 10분 정도 염불하고는 어머니는 피곤하다면서 앉아서 염불하였다. 


  비록 융도스님이 절실하게 어머니가 부처님 명호를 많이 부르기를 원했지만, 어머니는 병고에 시달리고 심력이 미약하여 몇 번을 부르지도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다.


  임종하기 3일 전, 어머니는 귀걸이를 빼어 가정부에게 주면서 “10개월 동안 나를 보살펴줘서 고맙다. 이것을 자네에게 기념으로 주겠다”라고 말했다.


  1998년 12월 1일, 어머니는 편안하게 왕생하였는데, 얼굴이 볼그스름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여 이를 본 친척과 이웃들이 모두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연우들이 소식을 듣고 다 같이 와서 3일간 염불을 해주었다. 화장한 후, 정골이 분홍색 연꽃모양으로 나타났고, 또 수많은 가지각색의 사리화들도 있었다.


  융도스님이 말하기를, “제 어머님의 경우, 무슨 수행이 있었겠습니까? 단지 병이 위중한 보통 노인이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며 힘이 닿는 데까지 염불을 한 것뿐이어서 정진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왕생할 수 있었고, 게다가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현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아미타부처님의 자비하신 구제의 힘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석융도 구술, 석정종 정리 2001년 6월)


  (2)

  장리영할머니는 위해 서로태 사람으로, 평생 고생만 하였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늙어서 또 치매에 걸린 장할머니는 비누가루를 소금으로 착각하여 솥에다 뿌린 적이 있었고, 귀가 또 들리지 않았으며, 불법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1998년 3월 1일, 89세 장할머니는 중병에 걸려 식음을 전폐하고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였다. 연이어 며칠을 누워있으면서 링거주사를 너무 많이 맞는 탓에 팔이 다 검은 자줏빛으로 변하였다. 


  초십일 날, 장할머니는 갑자기 깨어났고 정신도 맑았다. 그녀의 딸인 지자고芝子姑는 그때 막 염불하기 시작하여 비록 불교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염불하는 사람들이 왕생한 사례를 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어머니에게 염불하라고 타일렀다. “어머님, 우리와 함께 염불하면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님께서 어머님을 좋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어요. 어머님이 가지 않으시면 저도 어머님을 찾을 수가 없어요. 때가 되면 저도 그곳으로 갈 거예요”


  장할머니는 딸이 하는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늘 불상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아미타부처님, 언제 저를 데려가실 겁니까?” 부처님 발밑에 있던 연꽃도 하도 만져서 깨져버렸다. 


  지자고와 연우들은 장할머니를 위해 조념을 하였고, 병문안을 온 친인척들도 함께 조념을 해주었다. 왕생할 때, 장할머니의 얼굴색이 유난히 보기 좋았는데, 입술이 볼그스름하고 검버섯도 사라졌다. 지자고의 남편은 놀랍고도 의아해하며 “딸 셋의 얼굴보다도 더 보기 좋구나”라고 말했다.


  장할머니의 왕생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전에 도거사가 지자고의 집에 와서 염불체득에 대해 교류할 때, 가족들 대부분이 다 피했었는데, 지금은 그들 모두 존귀한 염불인이 되었다.  (지자고 구술, 융원 기록 2002년 1월)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순정시대 純淨時代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