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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감응과 왕생

[스크랩] 요세란

작성자慧蓮|작성시간18.04.05|조회수24 목록 댓글 0

  요세란


  1939년 출생인 요세란姚世蘭은 안휘성 선성사람이다. 사람이 수다스럽고 말을 두서없이 하는데다가 촐랑이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줏대가 없어서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별명을 ‘요요자’라고 불렀다. 일찍이 사람들을 따라서 사대명산을 다녔었고, 또 사천에서 팔관재계를 받고 평생 채식하기로 발심하였으나, 남편의 결연한 반대로 늘 이 일로 인해 부부사이에 말다툼을 잦았고 화목하지 않았다.


  1998년 처음 정토염불법문을 듣게 된 그녀는 법문을 듣자마자 뜻밖의 기쁜 일을 만나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이것이야말로 내가 닦을 수 있는 법문이다! 나는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을 의지하여 오로지 염불만 하겠다”고 말하였다. 이후로 매번 강의가 있을 때마다 그녀는 항상 들으러 왔고 전수염불을 하였다. 동시에, 가족 간의 원만한 관계를 돌보기 위하여 완전한 채식에서 고기 곁의 나물을 먹는 것으로 바꾸었다. 


  남편은 성격이 그다지 좋지가 않아서 가끔씩 그녀를 꾸짖곤 하였다. 남편이 한 마디 꾸짖으면 그녀는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로 대꾸하였다. 남편이 얼마 동안 꾸짖으면 그녀도 얼마 동안 염불을 하였다.


  1988년 그녀는 연우들을 따라 황산을 갔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은 요거사는 계속해서 작은 목소리로 반복하여 “아미타불! 제가 잠을 좀 잘 수 있게 저에게 잠을 좀 주세요. 아미타불! 제가 잠을 좀 잘 수 있게 저에게 잠을 좀 주세요……”하고 중얼거렸다. 옆 침대에 있던 연우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하여 화가 나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일상생활 중에 어떠한 작은 일도 모두 아미타부처님께 비는 사람이었다.


  1998년부터 요거사는 자주 “내년에 나는 간다. 9월이 아니면 10월이다”고 말하였고, 또 “아미타부처님께서 나를 우해 집도 다 마련해주셨다. 내가 분양받은 집은 아주 크고 엄청 장엄하다”고 말하였다. 또 자주 연우들에게 “나에게는 나무아미타불이 계신다. 바로 곁에 계신다. 향만 피우면 바로 크고 흰 연꽃이 눈앞에 나타난다”“아미타부처님은 당신 곁에 계시고, 큰 연꽃도 당신의 자리 옆에 있다”는 등등의 말을 하였다.


  그 당시 그녀가 이런 말을 할 때 아무도 믿지 않았고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다들 그녀의 정신이 좀 이상하다고만 여겼다.


  1999년 음력 9월 17일, 그녀가 두영금거사에게 말했다. “제가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였어요. 제가 거사님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제가 왕생할 때 그 꽃무늬 옷을 입을 수 있는지요?”


  두거사가 대답하였다. “거사님이 정말로 아미타부처님을 따라 가신다면 이 몸뚱이는 남들이 처리하도록 내버려두시고 무슨 옷을 입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거사는 기뻐서 팔짝 뛰면서 말했다. “그럼 잘 됐네요! 저는 9월 아니면 10월에 갑니다”


  비록 이 말을 할 때가 벌써 9월이었지만 두거사는 이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녀에게 “거사님이 알고 부처님이 아십니다. 그러니 아무데서나 말하지 마세요”라고만 말하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평소에 말이 너무 많아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9월 25일, 왕수진거사가 요거사집에 갔다. 요거사가 그녀에게 말하였다. “저는 곧 왕생합니다”

  왕수진이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손가부로 가십니까?”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럼 녕국으로 가십니까?”(이 두 곳에 그녀의 친척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라고 대답하였다.


  왕수신거사는 마음속에 담아둔 한 마디를 끝내 말하지 않았다. “설마 서방극락세계로 간다는 건 아니겠지?”


  잠시 후에 요거사가 말했다. “날씨만 개이면 저는 갈 겁니다. 며칠 전 꿈속에서 제가 대원선위에 있었는데, 저는 선수에 있었고 거사님은 선미에 계셨습니다. 거사님은 배를 타려는 것 같으면서도 타질 않았고, 제가 거사님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피안에 도착하였지만 거사님은 계속해서 염불을 잘 하셔야 할 겁니다” 왕거사는 여전히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9월 28일, 며칠 째 계속 궂은비가 내리던 날씨가 완전히 개었다. 요거사는 오전과 오후에 두 차례나 걸어서 큰 아들집에 갔다. 마치 말해줄 일이라도 있는 것 같았지만 큰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 오후 4시에 요거사는 세수를 하고 나서 자기 집 법당에서 예불을 하는데, 몸을 숙이고 절을 하다가 머리가 옆으로 기울더니 일어나질 못했다. 가족들은 요거사를 병원에 보내어 응급치료를 받게 하였다. 두영금 등의 연우들이 와서 염불하라고 일어주자 그녀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9월 29일 오후 2시 경, 비천하고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하던 ‘요요자’는 편안하게 미소를 지으며 정토에 왕생하였다. 이때의 나이가 61세였다.


  요거사가 왕생한 후, 연우들은 기뻐하는 한편, 몹시 후회하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전에 했던 말들을 다시 생각해보니 그녀는 이미 일년 전부터 미리 갈 시간을 알고 있었으나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질 않았고 심지어 그녀를 업신여기면서 면전에서 비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이미 정토의 보살이 되었다. (두영금·왕수진 구술, 석정종 정리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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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순정시대 純淨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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