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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감응과 왕생

[스크랩] 상련정

작성자慧蓮|작성시간18.04.05|조회수31 목록 댓글 0

  상련정


  상련정尙蓮貞노거사는 올해 73세이며, 천진시 사람이다. 퇴직 후 불문에 귀의하여 보살계를 받았으며 자신을 매우 엄하게 단속하였다. 조석으로 기도시간을 정하여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보살계일에는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자기 집을 염불도량으로 삼아 자주 대중들을 인솔해서 주야로 끊임없이 염불하였으며 일심불란을 얻기 위해 힘써 고행을 닦았다.


  1998년 말, 상노거사는 갑자기 뇌전색을 앓고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로 심각한 타격이었다. 병이 걸리기 전에는 매일 절도 하고 염불도 하면서 공부할 게 아주 많았으나 병을 앓고 나서부터는 누워서 일어나질 못하여 부처님께 절도 할 수 없었고 예전같이 염불정진도 할 수도 없었다. 이제 어떡한단 말인가? 왕생할 수는 있을까? 노거사는 두렵고 불안하였다.


  그녀가 속수무책으로 있을 때 마침 정량스님이 고향인 천진으로 돌아와서 선도대사의 정토사상에 대해 법문하였다. 어느 거사의 소개를 통해 정량스님은 병원으로 그녀의 병문안을 갔으며, 아미타부처님의 세간을 초월하는 크신 서원을 매우 분명하게 그녀에게 설해주었다.


  정량스님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고 싶으면 반드시 아미타부처님의 타력구제에 의지해야 한다. 이른바 타력구제란 바로 미타자부께서 오겁 동안 사유하시고 영겁의 고행으로 성취하신 원만한 공덕을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이 육자명호 속에 넣어서 아무런 조건 없이 중생들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다. 중생이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칭념하면 왕생에 필요한 모든 공덕을 구족하게 된다. 따라서 왕생은 부처님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지 중생들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였다.


  아미타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무량광명이 상노거사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자 노거사는 웃었다. 웃으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하니, 육도윤회의 문이 이제부터 닫혔기 때문이다.


  상노거사는 일심으로 염불하기 시작하였으며, 곁에 있던 거사들에게 “한 구절 부처님 명호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부르며 18원에 의지하여 수행해야만 부처님의 마음과 상응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상노거사의 영향을 받아 수많은 연우들이 자력을 바꾸어 타력으로 들어갔고 잡행을 버리고 전수로 돌아왔다.


  올해 초에 상노거사의 병세가 심해져서 신장이 쇠약해지고 온몸이 부었지만 염불하는 마음은 평온하여 두려움이 없었다. 


  3월, 상노거사는 꿈속에서 서방삼성을 친견하고 예배를 하다가 깨어났으며, 그 기쁨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4월 12일, 연우들에게 말하기를 “저는 시간이 다 되어서 이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러 가겠습니다. 우리 함께 염불합시다!”라고 하였으며, 때때로 사람들에게 “한 구절 명호만 있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염불이 가장 옳고 염불이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였다.


  한번은 거사들이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켜 앉혔더니 그녀가 벙글벙글 웃으며 “다리를 흔들면서(반신불수라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서방극락세계로 아버지를 찾아 가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움직일 수 있는 손을 이용하여 박자를 치면서 큰 소리로 부처님 명호를 불렀다.


  14일 이른 새벽에 병세가 심해져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상노거사는 한숨 돌릴 때마다 큰소리로 “나무아미타불”하고 한 번씩 불렀다. 이렇게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해서 시종 비할 바 없는 이 존귀한 명호를 불렀고, 이에 감동한 사람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녀와 함께 “나무아미타불”을 칭념하였다. 


  이튿날 아침 8시에 상노거사는 편안하게 극락정토로 돌아갔다.


  나무아미타불!  (이홍 기술 2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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