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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감응과 왕생

[스크랩] 진취란

작성자慧蓮|작성시간18.04.05|조회수86 목록 댓글 0

  진취란


  진취란陳翠蘭, 여, 68세, 안휘성 선성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민며느리로 자랐으며 글을 모른다. 32세에 과부가 되어 4명의 자녀를 혼자 키우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으니, 이로써 그녀의 성격이 억세고 의지가 매우 강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9년 삼보에 귀의하였고, 자신은 근검절약하게 살면서 보시와 공양에 특히 부지런하였으며, 그녀의 경건함과 용맹정진을 따라올 수 있는 자가 드물었다. 또한 직접 정교하고 멋진 좌복을 제작하여 사대명산에 보시하였고, 사람들에게 불교를 믿고 염불하라고 권하는 것을 특히 좋아하여 그녀의 권유를 받고 불문에 들어온 사람이 거의 백 명 가까이 된다.


  8년 전에 왕생할 때 입을 옷을 미리 다 준비해두었다. 3년 전 비파나무 한 그루 심을 때, 그녀의 큰 아들(약간 지적 장애가 있음)이 물었다.

  “몇 년 뒤에 열매가 열립니까?”

  “3년이면 된다”

  “그때가 되면 어머님은 여전히 살아계실까요?”


  아들의 이 말은 진거사의 무상감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구화산 성지순례를 갔을 때, 그녀는 ‘3년 이내에 아미타부처님께서 꼭 저를 데려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큰 원을 세웠다. 또한 작년 9월 13일 날 유언장을 작성하여, 왕생하고 나서 사후의 뒤처리를 불교의 절차에 따라 하나하나 상세하게 분부하였다. 


  진거사는 비록 글을 모르지만 『무량수경』 전체를 다 외웠다. 매일 무릎을 꿇고 『무량수경』을 3권씩 외우고 부처님께 수백 배씩 절을 하며 부처님 명호를 수만 번씩 부르는 것 외에도 제선만행諸善萬行을 더하여 회향왕생을 구하였다. 이로써 그녀가 사바세계를 깊이 염리厭離하고 극락왕생을 흔구欣求하며 수시로 정토에 왕생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정코 왕생할 수 있는 행업을 몰랐기 때문에 비록 정성을 다해 부지런히 수행하였으나 안심을 얻지 못하였다. 게다가 정해놓은 기도가 너무 많아 매일 완성하기가 힘들었기에 왕왕 어제 못 다한 기도를 오늘 때우고 오늘 또 못 다한 것을 내일 다시 때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심적 부담이 굉장히 컸다. 


  1999년 말, 선도대사의 ‘전수전념’의 정토이념을 처음 들었을 때 몹시 기뻐하며 “이제 됐어. 아미타불 아버지를 의지할 수 있겠구나”라고 말하였으나, 나중에 별해별행別解別行의 영향을 받아 다시 의심하게 되었다. 오직 염불만 의지해서는 왕생을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년 뒤에 일향전념을 포기하고 일심불란의 공부를 추구하는 동시에 온갖 선행을 더하여 회향왕생을 구하는 수행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녀에게 심금란거사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본래 그녀의 인도로 불문에 들어와서 전수염불을 하게 된 것이다. 심거사는 불문으로 이끌어 준 그녀의 깊은 은혜에 감사하여 자주 그녀에게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오로지 불력에 의지하여 왕생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듣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반드시 일심불란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심거사가 솔직하게 말하였다. “오로지 불력을 믿고 오로지 명호를 부르며 잡행잡수를 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일심불란입니다. 일심불란의 공부를 이루고 싶겠지만, 당신이 거기 앉아서 염불한다고 해서 망념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난 못 믿겠어요! 일심불란이 되도록 염불하고 싶겠지만 제가 보기엔 염불을 하면 할수록 더욱 어지러워질 겁니다. 나는 내가 왕생할 자신이 있다고 감히 말하지만 당신은요? 당신도 자신이 있습니까?”


  심거사의 이런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진취란은 낮은 목소리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종지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소원해졌고, 우연히 만나더라도 불법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4년이 흘러 올해 4월이 돼서 심거사가 길거리에서 진취란의 딸을 만났다.

  “너희 어머님은 요즘 잘 계신가?”

  “저희 어머님이 불치병에 걸렸어요”


  이 말을 들은 심거사는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진취란의 일생일대의 소원이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서로의 법정法情을 생각해서라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녀를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그녀의 집에 갔다.


  뜻밖에도 만나자마자 진취란은 “나도 이제는 당신들처럼 전수염불을 하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세 번 절하고 나서 하루 종일 오로지 명호만 부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심거사는 너무나 기뻐서 바로 합장하며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드디어 깨달았군요!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너무 불쌍해서 당신을 끌어당기려는 거예요. 보세요, 이렇게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고 얼마나 많은 헛수고를 하셨습니까! 당신은 오늘 날 이지경이 되지 않았으면 여전히 노실하게 염불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요! 그래요! 그때 나의 기연이 성숙하지 못한 탓입니다”


  진취란은 폐암말기였기 때문에 고열이 계속되면서 두 달 동안이나 앓아누워 일어나지 못하였다. 예전에는 매일 경전 수만 자를 독송하였으나 지금은 할 구절도 외울 수 없었고, 예전에는 매일 아미타부처님께 수백 배씩 절을 하였지만 이제는 일 배도 올릴 수 없었다. 예전에는 명산대찰을 두루 참배하였으나 지금은 한 산도 참배할 수 없고 한 절도 갈 수 없었다. 십 수 년 동안의 용맹정진으로 기진맥진한 지가 오래되었고, 수천 일 동안의 왕생에 대한 갈망에도 여전히 마음속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늙고 병듦이 일제히 재촉하고 무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임종을 앞둔 목숨은 풍전등화처럼 수시로 꺼질 것만 같았다. 진심으로 왕생을 바랬던 그녀는 자신이 지나온 수행의 길에 대해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간 예전에 들었던 정토종의 교리가 그녀의 마음에서 점점 발효되어 이때 이미 짙은 구제의 향기를 풍겼고, 아미타부처님의 대비불사大悲不捨의 자비광명은 염불소리에 따라서 그녀의 마음속을 비추어 이때 벌써 청정한 신심의 연꽃이 피었다. 


  그녀가 심거사에게 말했다.

  “당신이 한 말들이 자주 생각났습니다. 일심불란에 도달하려고 염불을 하면 할수록 더욱 어지러워지게 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때 내가 왕생에 자신이 있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그때랑 달라요. 지금은 염불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병이 위중한 기간에 진취란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않고 일심으로 염불만 하였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스님과 연우들이 와서 자신에게 법문과 염불을 해주는 것이었으며, 이때마다 대단히 기뻐하여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왕생하기 한 달 전, 나와 융도스님이 그녀를 보러 갔다. 그녀는 고열로 인해 침대에 누워 있은 지 벌써 한 달이 넘어서 사람이 매우 수척해보였지만 면모가 수려하고 정신이 맑았다. 그녀가 말하기를 “저는 지금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고 있습니다. 예전에 사람들과 말을 할 때는 마음속에 부처님 명호가 사라졌었지만 지금은 남들과 대화를 할 때도 마음속으로 여전히 염불하고 있습니다. 지금 염불하는 심정은 예전과 확실히 달라서 마음이 기쁘고 편안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병고로 인해 많이 괴롭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괴롭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손으로 목에서 가슴까지 쭉 쓸어내리면서 “저는 여기가 아주 편안합니다”라고 말하였다. 홀가분하고 기뻐하는 그녀의 표정은 쾌청한 하늘과 같아서 끌탕의 먹구름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왕생하기 3일 전, 어느 연우가 그녀를 보러 가서 말했다. “우리 모두 집에서 염불하면서 그 공덕을 당신이 정토에 왕생하도록 회향하고 있습니다”


  진거사는 손가락으로 이 연우를 가리켰다가 다시 아미타부처님 불상을 가리키면서 “괜찮습니다! 저에게는 아미타부처님이 계십니다!”라고 말하였다. 


  왕생하기 2일 전, 내가 다시 진거사를 보러 갔다. 그녀는 이미 극도로 쇠약해져서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진노거사님, 왕생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내가 다시 “왕생에 대해 아직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또 “아미타부처님의 서원이 헛되지 않아 염불하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얘기들을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막 헤어지려할 때 그녀가 뜻밖에 온몸을 일으켜 앉더니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우리를 향해 찬란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줄곧 그녀를 간호하고 있던 가족들도 이 광경을 보고는 정말로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1년 8월 13일 오후 4시에 대중들의 가지런하고 우렁찬 염불소리 가운데서 진거사는 아무런 기척 없이 정토에 왕생하였다.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의 평온함과 침착함이 마치 자동차가 시동을 끈 다음 관성에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다가 멈춘 것과 같다 보니 염불하던 연우들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였다. 우리는 앞에 앉아서 그녀가 일이분 동안이나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이미 숨이 끊어졌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한 숨이 돌아오지 않는 즉시 신식神識은 정토로 돌아가고, 눈을 감는 사이 벌써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였다. 진노거사의 수승한 왕생을 직접 보고서야 처음으로 아미타부처님의 정토가 우리와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두 시간 염불하고 나서 왕생이불을 젖혀보니 벌려져 있던 입은 이미 다물어졌고 얼굴은 방글방글 웃고 있었으며 볼그스름하고 생생함은 살아생전보다 더 나았다. 염불한 지 8시간이 지나서 손으로 한두 치 정도 간격을 두고 정수리의 온도를 감지해보았더니 열기가 손을 치고 올라오는 게 산 사람보다 더 뜨거웠다.


평어: 선도대사의 『왕생예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일 위와 같이 염념마다 끊이지 않고 목숨을 마칠 때 까지를 기한으로 한다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왕생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잡다한 외연이 없어서 정념을 얻은 까닭이요, 아미타불의 본원과 상응한 까닭이요,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은 까닭이요, 육방제불의 말씀을 따른 까닭이다. 만약 전수(專修)를 버리고 잡행(雜行)을 닦으려 한다면 (왕생을 한 자는) 백에 한, 두 명도 드물고, 천에 세, 네 명도 드물다. 무슨 까닭인가? 잡다한 인연으로 마음이 어지럽게 움직여서 정념正念을 잃은 까닭이요, 아미타불의 본원과 상응하지 않는 까닭이요, 석가모니불의 가르침과 어긋난 까닭이요, 육방제불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까닭이요, 끊임없이 생각하는 마음이 지속되지 않은 까닭이요, 기억하고 생각하는데 틈새가 있는 까닭이요, 회향하여 왕생하고자 하는 발원이 은중殷重하고 진실하지 못한 까닭이요, 탐욕과 성냄과 같은 많은 사견邪見번뇌들이 일어나 틈새가 생기는 까닭이요, 부끄러운 마음과 참회하는 마음이 없는 까닭이요, 또 끊임없이 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는 까닭이요, 경솔하고 교만한 마음이 생겨 비록 업행을 짓지만 항상 명리와 상응하는 까닭이요, 인아(人我)에 스스로 뒤덮여 동행선지식을 가까이 하지 않는 까닭이요, 잡다한 인연을 가까이 하기를 즐겨 자신과 타인의 왕생정행을 장애하는 까닭이다. 내가 근래에 직접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여러 지방의 출가자와 재가자들 중에 해행(解行)이 다르고 전잡(專雜)이 달라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행을 닦는 자는 열이면 열 명 모두 왕생을 하지만 잡행을 닦고 지심이 아닌 자들은 천 명 중에 한 명도 없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수행자는 쇠털처럼 많지만 득도한 이는 쇠뿔처럼 드물고, 만 명이 수행해서 한두 명이 왕생한다”고 한다. 마땅히 그가 말한 것은 잡행임을 알아야 한다. 만일 전수염불을 한다면 만 명이 닦아 만 명이 왕생할 수 있다. 이는 진취란의 사례로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고금이 동일한 길이어서 다른 방법이 없으며 부처와 조사가 정한 법도를 어찌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왕생을 원하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천 명 중에 한 명도 없는’ 잡행잡수를 버리고 ‘만 명이 닦아 만 명이 갈 수 있는’ 육자명호를 굳게 집지해야 할 것이다. (석정종 정리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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