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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감응과 왕생

[스크랩] 안풍광

작성자慧蓮|작성시간18.04.05|조회수46 목록 댓글 0

  안풍광


  안풍광安風光거사는 불교를 믿은 지 여러 해 되었지만 처음부터 육자홍명을 바르게 믿었던 게 아니라 1997년부터 스님의 법문을 통해 오로지 육자홍명을 지송하게 된 것이다. 일이 번거롭고 바쁘다 보니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2001년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악성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고 2002년 5월 1일에 병세가 악화되어 심근경색까지 앓게 되었다. 병을 앓던 기간에 여러 차례 스님께서 법문하신 선도대사의 염불사상을 공손히 들으면서 자신이 바로 죄악생사범부라는 사실과 아미타부처님의 대자대비를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지송하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의 자비구제에 의지하며 행주좌와에 염념마다 명호를 여의지 않으면서 염불을 낙으로 삼았다. 밥을 먹을 때도 자기도 모르게 명호를 부르게 되고 꿈속에서도 자주 큰 소리로 염불하였다. 또한 병으로 인한 고통도 염불을 통해 많이 완화되었다. 


  안거사는 늘 아내에게 “좋은 날이 오래 가지 않고 아름다운 꽃은 자주 피지 않는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도 이렇지 않은가? 젊음에서 늙음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에 불과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염불을 많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일깨워주었다.


  임종 전에 그는 아내에게 “서방극락세계는 우리 고향이다. 내 머리위에 서방삼성을 걸어둬라. 나는 아미타부처님만 따라갈 테니 사람들의 조념이 필요 없다. 오로지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 명호만 부르면 평소에 살아서 왕생이 결정된다! 내가 매일매일 염불하는 것을 아미타부처님은 다 아신다. 우리 집이 이렇게 먼 교외 지역에 있는데 사람들에게 조념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좀 번거롭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의 노모와 형제자매들이 모두 불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가 물었다. “만일 당신의 어머님이 아들을 그리워하여 막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형제자매들이 당신이 죽은 것을 보고 계속 우는 소리를 한다면 당신도 차마 못 떠나게 되지 않을까요?”

  “상관없다! 그 누구도 나의 고통을 대신 받아줄 수 없다. 병이 발작하여 고통을 참기 어려울 때 내가 얼른 아미타불만 부르면 곧바로 고통이 그친다. 어떤 약을 복용해도 다 소용없었다. 오직 아미타부처님만이 나를 책임져주시므로 어떤 사람에게 부탁해도 다 소용없다. 나는 오로지 아미타부처님만 따라갈 것이다! 인간세상의 정은 모두 거짓이어서 가난할 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오직 자비하신 아미타부처님만이 우리가 가난하다고 싫어하지 않으신다. 정말 영원히 부처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고 스님들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 여기까지 말하고는 노부부가 동시에 눈시울을 적셨다.


  안거사 집의 벽에는 아미타부처님의 접인상이 걸려있고 아래에는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면서 염불중생을 섭취하여 버리지 않으신다’는 경문과 제18원 원문이 붙어있다. 안거사는 자주 소파에 앉아서 불상을 마주보며 염불을 하였고, 늘 이런 경문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저는 아미타부처님만 생각합니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면 듣지 못하다가도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면 그의 얼굴에는 바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아내가 그를 나무라며 말했다. 당신도 참! 누가 와서 말을 시켜도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입만 열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니까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하잖아요” 

  “우리는 이미 시든 꽃이다. 서산에 해가 졌는데 서둘러 염불해야지 어떻게 잡담할 시간이 있겠는가! 나는 염불만 하고 있으면 아미타부처님과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부처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가!”


  그는 또 벽에 있는 경문을 응시하며 “난 이제 구제되었다. 마음속에 의지할 곳이 생겼다. 이 세상에서 비록 병으로 인한 고통이 있었으나 누가 나더러 숙세에 업을 지으라고 했는가?”라고 말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가 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니 빨리 집에 돌아가야겠다!”


  병이 위중해진 이후부터 안거사는 염념마다 이 명호를 여의지 않았다. 행주좌와에 마음에서 명호가 떠나지 않았고 명호도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아내가 밥을 먹여줄 때도 그는 한 입 삼킬 때마다 반드시 나무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고 그다음에서야 다시 한 입 먹었다. 언어기능에 장애가 생긴 그는 소리를 내기 힘들었고 발음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가 “당신이 계속 이렇게 염불하니까 내가 듣는 것도 힘들고 밥을 먹이는 것도 느리잖아요. 밥을 먹을 때는 마음속으로 염불해도 똑같아요”라고 말했더니 그는 “내가 소리 내어 염불하지 못하면 절대 다음 한 입을 먹지 않겠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밥 한 끼를 먹는 데 왕왕 한 시간씩이나 걸렸고 아내도 함께 한 시간 동안 염불하였다. 


  안거사가 위독할 때 불교를 믿지 않았던 형제자매들이 염불의 의미를 오해하여 기어코 의사를 불러서 음식물을 주입해야 한다면서 연우들이 조념을 못하게 하였고 심지어 법당을 때려 부수겠다고 공언까지 하였다. 그러나 염불을 멈추자마자 안거사가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정신을 잃고 깨어나질 못하는 것을 보고서야 가족들은 드디어 염불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노모의 인솔 하에 가족들은 일제히 한목소리로 염불하였다. 안거사는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이 다 같이 합장하고 염불하는 것을 보고는 쾌활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 당시 연우들 모두 대단히 의아해하였다. 왜냐하면 안거사가 앓고 있는 뇌종양이 신경을 압박하는 바람에 발성기능을 거의 잃었는데 이때 뜻밖에도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송강하·천양·선인교·장백산 등 신원염불당의 연우들은 교대로 염불하면서 감은하는 마음으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안거서를 환송해주었다.


  5월 6일 저녁 무렵인 5시 30분에 안거사는 두 눈으로 불상을 바라보며 연우들의 염불소리 가운데서 서방극락세계로 왕생하였다.


  5시 40분 쯤 돼서 날이 이미 저물고 먹구름이 짙게 깔렸지만 서녘 하늘에서 흰색 빛 덩어리가 나타나더니 그 속에서 세 줄기 밝은 빛이 서쪽에서 동북방향으로 끝없이 뻗어 나갔다. 서녘 하늘에서 또 극락세계의 장엄한 모습들이 나타났으며 누각樓閣·보개寶蓋·항수行樹·연대蓮台……등에서 부드럽고 투명한 금색 광명을 발하고 있었다. 동시에, 동쪽 하늘에서 큰 연화대가 세 개 나타났고 서남쪽 하늘에서는 원광이 세 개 나타났다. 이 광경을 목격한 연우들은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기타 서상들은 다 서술할 수가 없으니 연우들이 촬영을 해두었다. (무송 연우일동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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