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정토선을 모를 적에는
옛날 전통적인 염불 방식으로 많은
시간들을 할애하여 염불을 했었지만
자성염불을 체험한 적이 전혀 없었다.
자성염불을 체험하지 못한 정도만이 아니라
생각따로 입따로 염불을 하여 염불이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입으로만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던 것 같다.
그러다가 관정 큰스님과의 인연을 통해 본격적으로
정토선을 수행하고서 염불하는 상황에서 번뇌가
끼어들지 않고 염불일념이 되면서 참다운 염불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환희심을 느꼈다.
하지만 여러가지 얽힌 잡무와 반연들, 그리고
시절인연이 닿지 않아서 인지 자성염불은 여전히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정토선 염불을 하면서 불보살님의 몽중가피나
꿈속에서 가끔 염불을 하는 체험 등은 있었지만,
우리의 내면에서 자성이 저절로 염불하며 끊이지
않고 염불이 돌아간다는 자성염불은 아직은 먼나라
이야기 였었다.
결국 당시 나의 결심은 선원으로 가서 모든 반연을
끊고 잡다한 업무와 그리고 궁리 망상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기필코 자성염불을 성취하여야겠다는
쪽으로 굳어졌다.
토굴에서 3년간의 수행을 회향하고 봉암사로 발길을
향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오직 정토선 염불을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챙겼다.
선원에서는 모두가 침묵속에 좌선 수행을 하기에
고요해서 정진하기에 더 좋은 면도 있었으며 몇년 만에
모처럼 마주하는 도반들도 공부에는 모두가 장애자로
여기고 오히려 도반들을 피해 다녔다.
그리고 어쩌다 마주쳐서 말을 걸어 와도 오직 "예, 아니오."
두 마디 외에 더 이상의 대꾸를 하지 않자 차츰
도반스님들도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당시 마음속에 기필코 여기서 자성염불을 이뤄서
나가고야 말리라고 재삼 다짐을 하며 모두가 아침 공양을
하러 나간 시간에는 금색전이라는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전에
월인선사께서 살아생전 평소 닦으셨다는 십악참회(十惡懺悔: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양설, 악구, 탐애, 진애, 치암의
열가지 악업을 뉘우치는 참법)를 하면서도
"살생중죄 지심참회하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는 식으로 참회문 뒤에 반드시 정토선 염불을 놓치지 않고
계속 이어 나갔다.
그리고 좌선시 마음속에 정토선 염불리듬이 잘 회상이 되지
않으면 중간 경행시간이나 10분 간의 틈에 재빨리 나의
관물함 속에 들어있는 정토선 염불 테잎을 한, 두마디를 듣고
그 리듬과 소리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여 계속해서 밀밀하니
챙겨 들으며,
취침시간인 저녁 10시에도 다시 밖으로 나와 마루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발꿈치를 들고 마루를 오가면서 2시간 정도 더
정진을 하고 들어가서 다시 잠이 들때까지 정토선염불을
마음으로 챙겨들다 잠을 자는 식으로 가행정진을 하여 겨우
2시간 정도 취침을 하거나 2시간도 채 자지 못하면서 정진을
해 나갔다.
약 3일이 지날 무렵 법당에서 참회를 하는 도중에 희미하게
자성염불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첨엔 정말 자성염불인지 아니면 내가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염불소리인지 의심을 하다가 어찌됐건 마치 소중한 보물을
가파른 절벽 길에서 행여나 잃어버릴세라 조심 조심 가지고
가는 사람처럼 자성염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다시 자성염불이 사라져 버리면
재빨리 정토선염불 테잎을 한 두마디 들어주고 그러면 다시
자성염불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다시 자성염불을 조심스레
챙겨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5일 쯤에는 아주 또렷이 자성염불이
들려오고 좌선도중 내내 자성염불이 일념이 되어 흩어지지 않게 되자
드디어 아! 이제 진정한 자성염불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저절로 마음속에 희열이 느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성염불을 밀밀하니 챙겨드니 좌선도중이나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성염불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게 되자
그 때 스스로 생각되어지기를 아, 이런것이 바로 정중일여의
경계로구나, 하고 알아졌다.
정중일여의 경계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니 동중에서도 심하게
움직이거나, 대화를 하지만은 않으면 자성염불이 흩어지지 않고
일여하였으며 계속해서 가행정진을 하니 마침내 동중일여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마음안에 슬그머니 공부에 대한 욕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야, 공부가 재미있는데, 이것이 간화선에서 말하는 공부점검법인
정중일여, 동중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의 경계를 거쳐 확철대오
한다는 차제점검법이 아닌가? '
'그렇다면 더 밀어부쳐 이번에 끝장을 내버려야지.'하는 ...
그러나 당시 나는 그러한 마음이 바로 공부상에서 장애(마장)의
요소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하여 2시간여 취해주던 수면도 이젠 몽중일여의 경계에 들어가고자
눕지 않고 앉아서 수면을 취했다.
그러자 몸은 마침내 피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일상적인 정진시간에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혼침이 찾아들면서 나도 모르게 뒤로 넘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스스로를 위로하며 '뭐 부끄러울것 없어, 다른 스님들은
모두 편안히 잠을 자고 정진하고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아서
그럴뿐인데 뭐,'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며칠 더 눕지 않고 수면을 취하자 드디어 몽중에서도
자성염불이 계속되는 경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낮 시간 정진을 할 때엔 혼침이 더욱 많이 찾아들었고
그러한 혼침이 찾아 들면서도 자성염불이 일여한 경계가 되자
나는 어쩌면 혼침 자체에서 벗어날려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슬슬 마구니가 더 크게 자신의 내면에서 불거져 올라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아만심>이라는 마구니이었다.
나는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이성을 이미 잃어버렸다.
어쩌면 이러한 장애는 처음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도 있었던 것 같다.
출가하여 3~4년 쯤 되었을 때도 밀교 수행을 하면서 큰 경계가 왔을 때,
당시에도 아만심이라는 커다란 마구니가 바로 나를 함몰시켜버린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또 같은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는데도 나는 당시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바로 마구니를 내 자신으로 오인하면서 공부는 끝장이 나 버렸다.
그리하여 공부가 더 이상의 진보를 가져오지 못하고 말았다.
항상 지난 뒤에야 돌아다 보면 후회 막급이지만, 어찌하랴.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것을...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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