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되지 않아 행복하다
조회수 11 추천수 0 2015.03.25 08:14:33
고양이 한 마리
오전의 햇살 맞으며
지붕 위에서 졸고 있다.
나는 욕망을 포기했다고
나는 욕망을 참고 산다고
지붕 위에 납작 엎드려
햇빛 속으로 파묻힌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길
나는 무엇을 위해 뛰어 왔던가?
고양이 한 마리
겨울 햇살 맞으며
지붕 위에서 졸고 있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고
나는 내 방식대로 산다고
지붕 위에 몸을 누이고
햇빛 속에서 웃고 있다.
휴일 아침. 도서관으로 일 주일 분량의 마음의 양식을 빌리려 가는 길.
옛날에 들은 바보 이야기가 생각났다.
옛날에 어떤 바보가 살았다. 그에게는 어여쁜 아내가 있었다.
어느 날 친구들이 바보를 놀리려고 이렇게 말했다.
"바보야! 네 아내가 과부가 되었어."
그랬더니 바보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슬퍼하기 시작하였다.
'아이고 우리 불쌍한 와이프, 이제 그녀는 우찌 살꼬.'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비웃었다.
"아니, 자네는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잖아!
자네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자네 아내가 어떻게 과부가 될 수 있겠나?"
그러자 바보는 말했다.
"내 친한 친구들이 그렇게 말했어!! 나는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을 믿어.
친구들이 내 처가 과부가 되었다고 말하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오늘 아침 도서관 가는 길을 걷다 문득 그 바보가 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외적인 상황에 너무나 동일시되어 있는 나를.
오래 전 학교 다닐 때 기억이 난다. 지리산 등반을 갔을 때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땀을 비 오듯 흘렸다.
힘들어서 마음속으론 수십 번 정상 오르기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했다.
이윽고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아래 계곡을 내려다 본 순간
갑자기 계곡으로 뛰어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마음은 다 사라지고.
만약 그때 나의 마음을 따라 뛰어 내렸다면
지금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너무나 마음이라는 것에 동일시되어 있다.
모든 일이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불평한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행복하다.
출처: 휴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