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맑은 자유게시판

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

작성자소판하우어|작성시간24.10.01|조회수82 목록 댓글 0

방금 밑에 백두대간3님의 글, '나의 고향 해인사'을 읽고서 해인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검색을 해보니 해인사의 스님들의 수행자로서의 비난 받을 수 있는 행동들이 검색되었다.

 

그것을 읽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스님들의 공부수준은 보지 않고, 술, 육식, 여자관계들을  더 크게 본다.

그 이유가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구도심이 간절하지가 않고,

그러하다 보니 그들의 관심사는 스님의 공부수준 보다는 술, 육식, 여자관계 등만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난 스님도 아니지만, 한 때 스님이 육식이나 술을 마시는 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간철한 구도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진리가 무엇일까를 깊이 탐구하는 수행자로서의 본연의 일이 중요하지,

까짓 먹는 것, 입는 것 등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심명'에 '호리유차 천지현격 (毫釐有差 天地懸隔)'이라는 말이 있다.

털끝만한 차이라도 있으면 하늘과 땅만큼이나 벌어진다는 뜻이다.

 

부처와 중생심이 싸우면 중생심이 이긴다는 말도 있다.

이 중생심이 얼마나 질기고 생존력이 강하냐면, 이 놈이 이 어마무시한 우주를 만들었다.

 

수행자가 "이 정도 일탈쯤이야. . . ." " 한번 정도야 뭐. . ." " 난 망상놀음인 줄 알고 하는 데 뭐. . ."

이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조그마한 일탈이라도 하면, 그 것이 바로 천지차이로 벌어지는 순간이다.

 

법성게에서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란 말도 있다.

한 생각 일으키는 순간 이 중생계가 그냥 순식간에 벌어지고 만다는 말이다.

그러니 생각단속을 얼마나 잘 해야겠는가 말이다.

 

수행이야 각자가 하는 것이니만큼, 남이 어떻고 저떻고를 뭐하러 돌아보냐는 말도 있을 수가 있다.

즉, 자기자신만 올바로 발심하고 치열하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남들이 일탈하든 말든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느냐는 이야기도 나올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수행자도 사람이다.

정말 간절한 구도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표가 되는 스승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과 생활형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구도자는 스승의 가르침으로부터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승의 생활형태로부터도 배우고

닮고 싶어 한다.

 

혜암스님이 왜 존경을 받는가?

그분은 수행자로서의 에누리 없는 생활을 하셨기 때문이다.

 

실로 구도심이 치열한 사람이라면 과연 일탈을 하고자 하는 욕망자체가 생기겠는가?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사의 고해로부터 탈출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가르침이라는 믿음하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실로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한발이라도 벗어나면, 벗어나는 만큼 괴로움이 반드시 돌아 오게 마련이다.

 

끝도 없는 이 고통의 바다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남들이야 어떠하든 나 자심만은 철저히 정도를 걸어야 

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 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