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꽃도 꽃이다
내 산방 앞마당엔
커다란
자목련 한 그루가 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꽃봉오리가
마침내
화려한 꽃을 피워
봄을 찬탄하더니,
며칠 전 비바람에
꽃잎이
무참히 떨어져 내렸다.
좀더 오래 두고 보며
봄을 즐기고 싶었지만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피는 꽃들만
있는게 아니다.
지는 꽃도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이나 열매도
그것을 위해 아름답게
몸을 내던진
꽃송이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줄기에 비해 유난히
꽃이 많이 피는 석류나무는,
피어나는 꽃들을 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가지가 약하다.
그래서
더 크고 실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 자신들을 내던진다.
고귀한 자비심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져 내리는
석류꽃이 있기에
주먹만 한
석류가 몇 개식 달려도
나무는 그 무게를
감당해 내는 것이다.
오후에
신도 한 분이 오셨다.
차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얼마 전 회사로부터
명예퇴직 권고를 받았다고 하셨다.
정년을 얼마 앞두고
차분하게
노후를 설계하던 분에게는
갑자기 닥친 일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자기는 나은 경우라며
젊은 친구들을 더 걱정하셨다.
지금
여기저기서 구조 조정과
감원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물론 외부적인 요인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경영진의 안목과
서로의 주장만 앞세운
내부적 갈등이
더 큰 원인일 수도 있다.
결국 서로
눈앞의 이익에만 현혹되어
전체를 살피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만일 석류나무가
화려하게 핀 꽃들만 좋아해서
그 숫자만큼의 열매들을
다 달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태풍에 가지가 부러지고
뿌리까지 뽑힐 일은 뻔하다.
석류나무는
본능적으로 전체적인
균형을 잡을 줄 아는 것이다.
꽃과 나무들이 선지식이다.
봄이 아프다.
이번에야말로 떨어져 내린
꽃들의 아픔을 깊이 새겨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지는꽃도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