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관음주력으로 고부가 화목하게 되다.
고산 스님이 조계사 주지로 있을 때 하루는 김 ㅇㅇ이라는 30대 초반의 여성이 찾아왔다.
"주지 스님, 제가 어떻게 하면 시어머니 등쌀에 쫓겨나지 않고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주지 스님이 말했다.
"관세음보살을 하루 만 번씩만 부르면 시어머니 생각이 너그러워지고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보살은 "잘 알겠습니다."하고 물러갔다.
그 후 3개월이 지나 보살이 다시 찾아와서 "주지 스님, 스님께서 시킨대로 하니 시어머니가 좀 덜한 것 같아요."라고 하였다.
주지 스님은 "보살,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108배 참회를 하고 관세음보살도 더 열심히 불러보세요!"라고 했다.
보살은 그 후로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했는지 약 1년 만에 다시 찾아와서 말했다.
"스님, 고맙습니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한 날은 시어머니가 저를 불러놓고 '아가, 미안하다. 내가 왜 그렇게 너를 미워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하시면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미워하지 않고 친딸처럼 여기고 잘 지내도록 하겠다고 하셨어요. 저도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이 제가 부족했습니다.'하고는 그 후로 밥도 같이 먹고 시장도 같이 보고 절에도 같이 가고 어떤 때는 잠도 같이 잘 정도가 되었으니 남편이 오히려 샘을 낼 정도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으로 업장이 소멸되니 이와 같이 변한 것을 누가 알리오. 불안에 초조한 세상 사람들이여, 너나없이 관세음보살에 의지하여 다함없는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183. 삼일 밤낮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름에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다.
부산 사직동에 사는 송여의심 보살이 한 날 혜원정사로 고산 스님을 찾아와서는
"큰스님! 제 아들이 3대 외동아들로서 중학생인데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영어도 잘해야 한다, 수학도 잘해야한다, 피아노도 잘 쳐야한다, 운동도 잘해야한다고 엄마 아빠가 하도 잔소리를 해 대니 그만 간다온다 말없이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평소에 아무리 급해도 철학관이나 귀신 들린 사람 찾아가지 말라는 고산스님의 법문을 들었기에 어디 물으러 가지 않고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스님, 어떻게 하면 제 아들이 빨리 집으로 돌아오겠습니까?" 하였다.
고산 스님이 말했다.
"삼일 밤낮으로 오는 전화 받지 말고 전화를 걸지도 말고 앞뒤 문 걸어 잠그고 정좌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세요. 그리하면 3일만에 제 발로 들어올 것입니다."
보살은 스님이 시킨대로 3일 밤낮으로 관음기도를 했다. 그런데, 아들이 정말로 3일 만에 고생을 실컷하고 돌아와서 용서를 빌었다.
"아버지,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행동 하지 않겠습니다."
그날부터 여의심 보살의 아들은 착실한 모범생이 되어 대학도 잘 마치고 장가들어 아들딸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184. 생계 유지가 막막할 때 보문품을 지송하여 생계를 유지하다.
부산 반여동에 사는 김ㅇㅇ이라는 처사가 혜원정사로 고산 스님을 찾아와서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큰스님, 제가 회사 직원으로 있다가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아내와 2남 1녀를 두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조금 받은 퇴직금을 다 쓰면 생계가 막막합니다. 평소에 배운 것이 없는데 어찌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고산 스님은 "아, 그야 노력하면 다 잘살 수 있지요. 다른 일이 생각이 안 날 때는 밥 먹고 문 걸어 잠그고 관세음보살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밤낮으로 관세음보살보문품만 읽으세요. 그리하면 틀림없이 무슨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 처사가 한 달간 쉬지않고 보문품만 지송했더니 하루는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뜻밖의 전화가 왔다.
"형님! 요즘 뭐하세요?"
"그냥 놀고 있지."
"형님, 제가 자그마한 회사를 하나 차렸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안되겠고해서 사방으로 형님을 찾았습니다.형님, 좀 도와주세요."
통사정을 하는 동창에게 처사는 좀 생각해보겠다하고 전화를 끊고는 고산 스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씀드렸다.
스님께서는 "처사가 지극정성으로 보문품을 지송하니 관세음보살이 살 길을 열어주신 것이니 사양하지 말고 가서 도와주세요."라고 했다.
처사는 사양하지 않고 동창의 회사로 갔는데 상무이사를 맡아서 회사 운영을 잘하고 가정 또한 잘 유지하게 되었다.
182~184 출처: 고산 큰스님의 관세음보살 영험록 소원을 이루는 법 (담앤북스 간)
189. 열심히 관음기도를 해서 이혼자가 재결합하다(2)
서울 서초동에 사는 이ㅇㅇ라는 30대 후반의 여성이 친정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무시를 당해서 홧김에 이혼서류에 도장 찍고 친정부모와 시부모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 고민하다가 조계사 주지 고산 스님을 찾아왔다.
"스님, 홧김에 이혼서류에 도장 찍고 한 달 정도 고민하다가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결합할 수 있겠습니까?"
스님은 그 여성에게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지 물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남편 생각뿐이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맞네요. 보살의 마음을 알았으니 남편의 전화번호나 불러보세요."
고산 스님은 남편의 전화번호를 받아 적은 뒤 보살에게 "오늘은 집에 가지 말고 종일 법당에서 관세음보살을 부르세요. 남편은 퇴근후에 내가 불러서 이야기할 테니 보살은 내가 부를 때까지 법당에서 기도하세요."라고 했다.
퇴근 시간이 되어서 주지 스님은 그 여성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저는 조계사 주지입니다. 당신 최근에 이혼했지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꼭 할 말이 있으니 퇴근하는 즉시 조계사에 왔다 가세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남편은 즉시 조계사로 주지 스님을 찾아와서 인사하고 왜 불렀는지 물었다.
주지 스님이 말했다.
"아직 당신 부인을 사랑하나요?"
"네, 사랑합니다."
"그러면 부인을 불러들이세요."
"아니 자기 발로 나갔으니 자기 발로 들어오면 받아주지만 그렇지않으면
절대로 받아 줄 수 없습니다."
주지 스님은 시자에게 법당에 가서 이ㅇㅇ 보살을 불러오라고 했다.
조금 있으니 이영희 보살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주지 스님이 말했다.
"부인이 자기 발로 들어오니 받아들이세요."
남편이 머뭇거리며 어찌 할 바를 모르자 주지 스님은 "조금 전에 자기 발로 들어오면 받아준다고 하지않았소?"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얼떨결에 일어나서 아내의 손목을 잡으려하니 이번에는 아내가 손을 뿌리쳤다.
주지 스님이 말했다.
'남편이 손을 잡을 때는 가만히 있는거요!"
그제야 아내가 손목을 잡혔다.
주지 스님은 두 사람을 앞으로 불러 세워놓고 말했다.
"오늘 내가 새로 주례사가 되었으니 나에게 절을 세 번하세요.
그다음 서로 마주 보고 재결합의 절을 한 번하고 자리에 앉으세요. 이혼서류
가지고 왔습니까?"
"네, 가지고 왔습니다."
주지 스님은 "두 분 다 그 서류를 내어 놓으세요. " 하고는 시자에게 쟁반과 성냥을
가져오게하여 직접 불사르게하고 말했다.
"오늘 두 분은 이혼없이 재결합을 하였으니 앞으로는 싸우지말고 화목하게, 부처님 말씀
잘 믿고 남은 생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하였다.
190. 관음기도 영험으로 두 시간동안 청명하다.
1995년에 고산 스님은 송광사 방장이신 보성 스님과 우룡 스님 등 15명의 스님과 중국으로 성지 참배를 떠났다. 당시 부산에서 직항으로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고산 스님이 일행의 단장을 맡게 되었는데 상해에서 박물관을 관람하고 진시황릉으로, 자금성으로, 만리장성으로 해서 길림성을 관람하는 날부터 많은 비가 왔다. 다음날은 백두산을 가기로 한 날인데 일기예보에는 3일간 계속해서 비가 온다고 했다. 현지 가이드가 이렇게 비가 오면 백두산을 못간다고 했다.
그러나 고산 스님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않고 있었다. 그날 관광을 끝내고 호텔에 들어가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단장인 고산 스님이 말했다.
"내일 장대비를 맞고서라도 백두산 갈 터이니 그리 아세요."
현지 가이드가 "비오면 가야 헛일입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어요. 며칠 쉬다가 비 개면 가도록 하세요."라고 말하고, 보성 스님과 우룡 스님도 "비가 개거든 가도록 하지."라고 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은 없고 모두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고산 스님은 잠을 자지 않았다. 단장으로서 책임이 있어 밤새도록 관음기도를 하고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께 '두 시간만 날씨가 개어 주소서.'라고 축원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고산 스님이 말했다.
"모두 양치질하고 화장실 볼일 보고 백두산으로 출발합니다."
그러자, 현지 가이드가 말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가면 안됩니다."
고산 스님은 큰 소리로 "단장이 가자면 가는 것이지 무슨 가이드가 이러쿵 저러쿵합니까?"하고는 일행을 인솔하였다.
장대비가 오는데도 일행 모두 버스에 탔다. 고산 스님은 마이크를 잡고 "모두 관세음보살을 부르세요. 염불하면서 갑니다."하고는 관세음보살을 선창하였다.
비가 억수같이 왔다. 버스 종점에 도착해서는 모두 지프차에 옮겨 탔는데 단장인 고산 스님이 제일 앞 차에 타서 큰 소리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출발했다. 백두산 상봉 1킬로 미터 지점쯤 가니 구름이 오락가락하더니 비가 그치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프차에서 내려 상봉까지 약 100미터 정도 걸어 올라가니 날씨가 활짝 개었다.
현지 가이드가 고산 스님앞으로 걸어와서는 절을 꾸벅하고 말했다.
"스님 혹시 제갈공명 후신입니까?"
"나 제갈공명 후신 아니오."
"그러면 혹시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부리십니까?"
"나 풍운조화 부릴 줄 모르오. 나는 관세음보살 기도만해요."
"제가 10년 동안 가이드 하면서 백두산에 오면 비가 오든지 구름이 끼든지 안개가 끼든지 바람이 불든지 한 가지 장애는 항상 있었는데 오늘은 이 네 가지 장애가 하나도 없습니다.이 어찌된 일입니까? 신기합니다."
부단장을 맡은 등명낙가사 주지 청우 스님은 샴페인을 터뜨리고 애국가를 부르고 신이 났는데 고산 스님은 정중히 시방삼보를 청해서 남북통일과 세계평화 축원을 하고 화엄신장을 청해서 역시 축원을 해 마쳤다. 그리고, 단체 촬영을 하고 자유 시간을 주면서 "두 시간입니다."라고 했다.
두 시간이 끝나기 10분 전이 되자 고산 스님은 큰 소리로 "관세음보살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내려가도록 합시다."하였다. 일행이 모두 지프차에 올라타고 딱 두시간이 되어서 출발하려는데 구름이 꽉 끼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폭우가 쏟아지던지 천지가 깜깜하고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장대비가 퍼부었다. 지프차에서 내려 버스로 바꿔 타는데 그새 옷을 다 버릴 정도였다. 호텔에 도착해서 각자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우룡 스님이 "이번에 단장 참 잘 내었네."라고 하였다.
송광사 방장이신 보성 스님 역시 '맞아. 이번에 단장을 잘 내었어!"라고 했다.
일생 동안 기도를 했으면 단체의 책임을 맡았을 때 대중에게 누는 끼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정성을 들여 노력하면 안되는 일은 없다.
노력에 노력을 더해서 보살도를 행하여 원만성불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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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생 동안 관세음보살을 칭함에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다 성취했도다.
낱낱이 원하는 일을 뜻과 같이 이루었으니
세세에 관세음보살 은혜를 갚을 수 없도다.
고산 대종사의 관음찬 제17송
191.
관세음보살 위신력으로 10리 주변만 비가 오지 않았다.
고산 스님이 혜원정사에 계실 때 부산 온천동에 있는 금천선원으로 보살계를 설하러 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절에 도착하니 그 절의 주지 스님이 비가 온다고 큰 걱정이었다.
고산 스님은 법당에 들어가사 정성을 모아 기도 발원하기를 "이 절 10리 주위만 비가 오지않게 해주사이다.' 하였다.
잠깐 기도하고 나와서 차 한 잔 마시고 있는데 그 절 주지 스님이 이제 비가 그쳤다고 좋아하고 있었다.
잠시후 오전 10시가 되어 보살계를 시작해서 12시 30분에 끝내고 점심 공양을 한 다음 혜원정사로 돌아오는데 연산 로터리를 지나는 길에 개울에 물이 흐르는 것이 비가 온 것 같았다. 혜원정사에 도착해서 물어보니 오전 내내 비가 왔다는 것이다.
평소에 관음기도를 열심히 하면 즉심이면 감천으로 원하는대로 성취한다. 이와 같은 기적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다.
187~191
출처: 고산 큰스님의 관세음보살 영험록-소원을 이루는 법 (담앤북스간)
추천 : 상방대광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