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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재(12)마음의 발견(과학편)P36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4.12.07|조회수56 목록 댓글 1

 

마음 ( 3 )

 

우리가 이 현상계에 태어나 경험한 지식이나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더욱 나은 인생을 보내기 위한 체험이 아니면 안 된다.

 

하지만 설사 인생 경험의 시간이,

60년이 되든 80, 90년이 되든

혼 생명(魂生命)의 영원한 전생 윤회의 과정에서 보면,

일순간의 불꽃같은, 짧은 경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은, 영원한 전생윤회를 하는 혼으로,

그 잠재의식의 보고(寶庫)에는,

과거세에서 체험해 온 위대한 지혜가 매장되어 있다.

이 지혜도, 인생 항로에서의 목적을 위해,

우리의 노력으로, 영감(靈感)으로 되어 현상화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이 위대한 지혜의 보고를 여는 법(),

자기 자신의 마음의 열쇠에 의한 것 이외에

달리 길이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이 열쇠는, 신리에 기초한 상념과 행위인 점은,

몇 번이고 설명한 대로이다.

이 현상계에서 배운 지식은,

자칫 자기보존을 위한 도구가 되기 쉽고,

또한 이것에 빠지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그 결과 학력이나 종이시험에 의해, 인간의 가치가 판정되어 버린다.

마음을 잃고 있어도,

시험에 통과하면 사회적 지위가 주어져,

지위를 얻은 자 중에는 권력의 자리에서 악덕을 쌓는 자가 있다.

또 그러한 권력자와 짜고 이욕(利欲)에 관계하는 자 등,

자기보존을 하고 타인의 일 따위는 돌아보지 않는 인간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인간도,

권력의 자리에서 한번 내려오면

육지에 올라간 물고기처럼 인생의 무상(無常)을 안다.

비위 맞추며 있던 아첨꾼도, 언젠가 멀어진다.

부패한 고기에 몰려드는 구더기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악덕업자들은 새로운 상대를 찾아 흩어진다.

 

인간의 교제는 이와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사회의 지도자가 외면적 판단으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해 버렸기 때문에 만들어진 마음의 왜곡이다.

그 결과, 마음의 존엄을 무시한 지식이,

인류를 물질문명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문명을 위해 인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물질문명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은, 인류사회의 조화와 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목적으로 하여,

자기 자신의 혼을 더욱 닦기 위한 것이며,

자유와 평등을 구하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신불의 자식다운 자각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에게는, 교양이라고 하는 지식이 있지만,

()를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자기 자신의 저항을 만들어 고통의 원인으로도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을 중심으로 한 지성이 아닌,

자기보존, 자아아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촉매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항상 중도의 입장에서,

자신의 상념과 행위를 반성하여,

주어진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실행, 노력하고 있다면,

현상계에서 배운 지성은,

잠재의식의 속에 기억되어 있는 위대한 지혜의 보고(寶庫)* 불지(佛智)와 조화되어,

인생을 더욱 좋게 진보시켜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것에 의해, 우리 마음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로 인해 혼의 형제들이랑 수호령, 지도령의 협력이 있어,

우리의 혼은 보다 정화되고, 지혜의 문호는 열려,

관자재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되어 간다.

 

학문적인 가치는, 이 순간에 더욱 발휘되어,

직업 여하에 관계없이, 신리의 길로 통해 가도록 되는 것이다.

 

마음을 잃어버린 지성은 파괴와 투쟁을 낳아,

원자폭탄은, 인류의 수행장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물질 경제 지상주의에 의한 고도성장은,

공해를 낳아, 농공업에 있어서

농약, 세제, 석탄, 석유, 가솔린, 광업, 식품에 이르기까지,

인생 항로의 육체주(肉體舟)를 파멸시키는 생활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은 모두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지식의 산물이며,

마음을 잃은 물질문명의 왜곡이다.

 

인류의 지식은,

이렇게 자기 자신의 수행장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농약, 이산화탄소, 사염화연, 황화물 그 밖의 공해에 의해,

많은 희생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 대책을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신리의 깨달음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여기까지 물질문명의 노예로 바뀐 인류의 모습은,

가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는, 경제력에 의해 기업을 지배하고,

마음을 잃어 이익 추구 주의에 빠지고,

노사의 불만은 계급투쟁을 낳아,

사회문명은 상부층과 하부층의 계급투쟁 속에서

발전해 간다고 하는 약육강식.

케냐의 동물적 그 자체의 사고방식을, 인류 안에 만들어 내고 만 것이다.

 

경제력으로 다른 기업을 합병하는 것도 가능한,

자본주의의 사고방식은 비정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기업은 중생에 의해 성립되고 있다는 것을 잊어,

어떤 시대에 있어서는,

중생은 경제 노예적인 가치판단으로밖에 취급받지 못해

일부의 독접 자본가의 품을 살찌우는 희생자가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다.

강자에 대해 약자는 단결로써 대항해,

계급투쟁이, 독점자본이나 권력자의 앞을 가로막도록 되어 간 것이다.

 

대다수의 중생은,

그 육체의 선조 대대로 그 시대 시대의 권력자가 만든

엄격한 계급제도 안에서 박해를 받아왔다.

그러한 마음의 투쟁의 역사가, 언제부턴가,

중생 스스로의 힘에 의해 자유 평등의 사회를 지향하여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다.

 

현대, 자유와 평등이어야 할 시대에 있어서조차,

현실은 단결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자유는 무시되고,

대다수의 중생은,

새롭게 태어난 노동귀족이라는 무리의 노예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물을 사물로 보는 유물론은,

마음을 잃은 가치판단에 근거하여,

그 지도자들은 지식으로 만들어 낸 계급투쟁을 중생에게 강요하여,

어떤 때는 무력,

어떤 때는 권력, 조직, 폭력을 배경으로 단결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유물주의의 사고방식에 근거하고 있는 많은 권력자들은,

마음을 잃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신뢰할 수 없다. 때문에,

<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인민의 배신자>

로 낙인을 찍어, 어제까지의 동료를 없애려는 짓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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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4.12.07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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