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힘으로 만들어 낸, 물질적인 단결은,
어떠한 사상에 의해 세뇌되어도,
생활이 충족되어 안락하게 되면 무너진다.
인간의 마음은 충족되면 자유를 갈망하고 불성에 눈 떠 가는 것이,
신불의 자식으로서 당연한 길인 것이다.
물질적인 사물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특정한 압력을 넣어 조직을 만든 지도자에게는,
항상 평안이 없다.
권력의 자리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몸을 지키기 위해,
부하를 믿고, 중요한 지위를 주어도,
아욕이 강한 그들에게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평안이 없는 부조화한 환경도,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낸 상념과 행위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 자신이 뿌린 씨는, 자신이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것은, 신리이며, 보상(속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을 추진하고 있는 지도자들은,
이 같은 행위로 상호 신뢰를 잃어,
내부의 투쟁과 파괴에 의해 고통받고,
마음의 평온을 잃어가는 것이 통상이다.
그들은 그 원인을, 독점자본가나 제국주의,
또는 권력자 타도에 대한 대중의 투쟁심의 결여에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 자기 자신,
투쟁에 지쳐 녹초가 되어버릴 것이다.
또 언젠가,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나,
마음의 평온은커녕, 고뇌가 많은 인생을 보내게 된다.
그러한 지도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한 사람들은 "인민을 위해" 라는 대의명분도,
자기보존을 위한 고통이외에 없었던 것을 마침내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투쟁심은, 자기의 마음을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독점자본가도, 자기보존을 위한 욕망으로부터 자기 마음을 해방하여,
자기에게 족(足)한 것을 깨닫고,
고뇌하는 많은 중생에게,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구원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명예를 위해서가 아닌,
태양의 열과 빛과 같은 평등한 자비로 기부하는 것이
인류애의 표현이란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처럼 인간의 환경이나 지위, 명예를 초월하여 노사는 평등하고,
서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 입장에 대해
인간 사이의 신뢰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고, 보은의 마음을 실천하고,
서로 족(足) 한 것을 알았을 때,
노사의 투쟁의 모습은 사라져 간다.
사실은 이러한 투쟁이, 물가의 안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무력이나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사회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고, 벌칙을 이용하여, 중생의 불만을 억누르고 있다.
물리적 정신적인 압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내부의 불만이 폭발하여, 부조화한 사상은 수정되어 간다.
시대에 따라서는, 마음이 있는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봉건적 사회의 개혁을 위한 방편으로서
엄격한 통제 경제를 구축하여,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희생자를 내어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
지도자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종종 자기보존을 위한 폭력 행위로 탄압을 강행하여,
반대 사상자(思想者)를 숙청해 버린다.
어떤 부조화한 권력자일지라도 언젠가는 권력을 상실한다.
그들의 마음은 더욱 가련하며,
오랜 세월, 범한 죄를 지옥계에서 반성하게 하여,
사상의 잘못을 수정하게 하여,
자신이 저질러 온 투쟁과 파괴의 행위,
신리(神理)에 반(反)한 사실행위를 혹독하게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지구상의 만생만물은, 신불의 자비에 의해,
만생의 혼의 수행장으로서
이 현상계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즉 육체라는 배를 타고 수행하고 있는 동안만의,
일시적인 차용물인 것을 우리들은 깨닫고,
언젠가는 대자연으로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차용물은, 본래 인간 어느 누구라도 독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회에 있어서 인류는, 모두 불성을 깨닫고,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신불에 의해 주어져 있는 것이니까,
이 차용물은, 인류의 보다 나은 조화와 발전을 위해,
의의있게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환경에 있어서,
인류는 그 마음의 조화에 의해,
신불의 몸의 일부인 지구상을,
평화로운 낙원, 유토피아로 완성시키는 것이
인류에게 부과된 수행의 목적이다.
그것을 잘 가슴에 새겨, 우리들은 정법의 실천 활동을 해야 한다.
타인의 행동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용기를 갖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조화에의 길을 열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질 경제는, 인간의 생활의 지혜이며,
유물주의도 자본주의도, 모두 물질경제 본위로 마음을 잃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되찾지 않는 한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다.
물질 경제 위에, 불성(佛性)인 자기의 마음을 단단히 자리잡게 하여,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우리의 손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노사 쌍방이, 투쟁과 파괴의 사상을 버리지 않으면,
서로 자멸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단결이라는 미명 아래,
일부 정신이상자나 자기보존의 마음이 강한 사람들이,
일부 양심없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투쟁과 파괴의 행동을 일으켜도,
그 행위는 언젠가 자기 자신의 불행으로 되어,
되돌아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또 폭력에 의해 인간을 지배해도,
언젠가 그 폭력에 의해 자신의 머리가,
자기 자신의 행위로 인해 목을 친다는 것을 우리들은 명심해야만 한다.
인간은, 부자연한 사상에 의해 세뇌되어도,
불성, 신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랜 인생 경험 안에서는
그 사상이 바른지 어떤지를 깨달을 수가 있다.
그리고 부조화한 사상으로부터는 마음이 멀어져 가게 된다.
폭력적 지배는, 이같이 인간의 마음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
투쟁과 파괴의 인생이, 얼마나 우매한 행위였었는지를,
인류는 이렇게 해서 모두 반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