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과 파괴의 인생이, 얼마나 우매한 행위였었는지를,
인류는 이렇게 해서 모두 반성하게 된다.
과거의 역사는,
표면적인 현상만에 의해 일어나는 부조화한 사회였지만,
내면적인 심적 관계가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대한 의의를 갖는지, 우리들은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 끝없는 전생 윤회의 수행을 계속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것으로,
인류는 모두 형제였던 점을 마음으로부터 알게 될 것이다.
오랜 전생 윤회의 과정에서 만들어 내고 만 인류의,
투쟁과 파괴의 " 업 "
을 수정하는 것에 의해,
이 지상에 낙원은 만들어져 갈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수도 없이 체험한다.
신리의 씨는,
그러한 고통의 극복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확실한 뿌리를 내려,
인간은 고독한 인생으로부터 구제된다.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차려서,
사람은 서로 도와주며, 즐거운 인생을 보냄으로써 인생의 의의를 깨달아 간다.
물질문명 때문에 잊어 왔던 마음을 되찾아,
혼란의 사회를 하나로 묶어야 할 조화의 길로의 고통을 경험해 성장해간다.
고통 속에서 인류의 지식은, 에너지 혁명도 하고,
공해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도 발견한다.
그리고 대자연의 자원 속에서,
한층 생활의 지혜를 늘려, 더욱더 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빛 에너지, 전기에너지, 자력 에너지 등을 응용한 교통편이 발명되어,
전자장의 안정된 교통편에 의해,
원거리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우주공간을 좁혀 가도록 된다.
물질지상주의는 전세(前世)의 유물로 변해,
그 노예화에서 해방되어, 언어도 통일되어 간다.
그리고 인류는,
자기보존과 자아아욕의 부조화한 생각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과
전인류의 상호협력과 조화 이외에 전진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두 형제임을 알고,
마음과 마음이 조화된 사회가 실현되어 가는 것이다.
원자 세포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육체라는 배는
그러한 정법을 깨달은 의식(혼)에 의해 지배되고,
육체와 의식의 상호관계도, 과학적으로 확실히 해명되어,
타는 배로서의 사명을 더욱 오래 수행하여 가도록 될 것이다.
또한 인류의 지혜는
다른 천체에 거주하는 장소를 발견하고,
그 천체에 이주하게 된다.
22세기, 23세기의 인류의 지혜는,
공간과 해저로 발전하여, 팽창하는 지구 국가적 환경으로 변해 갈 것이다.
그 사이에도, 인간의 검은 상념에 의한
몇 번인가의 국지적 천재지변이 일어나,
마음이 부조화한 사람들에게 대해서의 경고가
실재계로부터 행해지고,
현재의 국가군(國家群)의 눈도, 우주 조직으로 향해 갈 것이다.
우리들은 한시도 그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차원이 다른 세계로 진화되어 가는 것이다.
의식(혼)과 육체
의식(혼)은
저세상과 이 세상을 영원히 살아가고 있는 생명이다.
물질은 에너지 입자의 집중에 의해 고체화한 것으로서
일을 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 질량과 에너지는 공존하며 불멸이란 것을,
현대 과학은 실증하고 있다.
에너지 입자가 집중된 것은 보는 것이 가능하여도,
에너지 입자의 상태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기의 에너지, 빛의 에너지. 열의 에너지, 자력의 에너지. 중력의 에너지를,
우리들은 육안으로 보는 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그것들이, 우주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터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육체의 지배자인
의식(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육체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왜 잠자고 있을 때에
안이비설신의 오관이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는 것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시각도 청각도, 전기적 진동은 일정하게 주어지고 있지만 기억할 수는 없다.
우리들의 뇌세포가,
기억 연합령이라고도 불러야 할 유기질 세포 소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쩌면 눈을 감고 있을 때에도,
외부적인 일체의 현상을 기억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의식은 육체에서 분리되어 있는 상태로,
영자선(靈子線)이라고 하는 것에 의해 육체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의식이 육체로 되돌아가는 그 의식에 의거하여,
오관은 지배하에 놓인다.
또 오관은 객관적으로 현상을 포착해서,
대뇌에 전기적 진동을 일으켜 의식과 통신하고 있다.
의식의 지배는, 육체 전체에 미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도, 일하는 능력도,
모두 혼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
육체를 가진 생명이 이 지상계에 나와 공기와 접촉하면,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모유를 빤다.
이것은 신불에 의해 주어져 있는 본능임과 동시에,
전세에서 하여 온 습성의 반복으로서,
관성의 법칙과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유아가 과연 두뇌로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것은 의식의 작용에 의해,
본능으로서 현상화되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울고, 자고, 모유를 먹는다고 하는 세월을 거쳐,
유아는 성장을 계속한다.
잔다는 것은,
육체의 안식과,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의식이 신불의 빛을 받기 위해 필요한 상태이다.
일상생활에 있어,
부조화한 마음으로, 자비도 없고 사랑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의식이 차원이 다른 세계에 갔을 때,
생명의 분신이나 본체 또는 수호령에게,
의식을 닦이는 경우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무거운 듯한 경우는,
대부분 닦여진 후의 현상이다.
이 현상에 대해서는,
닦여진 그 원인을 추궁해 깊이 반성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