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여자
대부분의 남녀는
저항하기 어려운
육체적 매력 때문에
결혼을 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 성적 매력은
카르마의 함정이며
덫일 수 있다.
그 이유는 남녀가
이성에게 느끼는 성적 호감은
서로간의 업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견딜 수 없는
성적 매력과
충동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감정을 경계하고
또한 조심해야 한다.
한눈에 반했다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카르마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작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정의 종착점이
단순한
연애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훌륭한
결혼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자신의 결혼에 대한
신중한 태도와
그에 따르는
냉정한 관찰이 필요하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
그 부부는 서로의
카르마가 결합되어
그 영적인 상호작용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결혼이란 만나서
3일을 생각하다가,
3달을 열렬히 사랑하고,
결혼하여
3년을 싸움하고 다투다가
마침내 30년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차선희(가명)씨는
올해 52세의 여성이다.
그녀는
나이 30살의 만혼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자식 둘을 낳고 살아왔다.
결혼 당시
직업 군인이었던 남편은
결혼 후 얼마
안 있어 제대를 하고 나와서
지금까지일정한 직업 없이
아내의 사업(의류 도매업)을
도우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맹렬 여성인
그녀는 결혼할 당시에도
재래시장에서 옷가게를
경영하는 이모 밑에서 일을 했다.
그후 이모에게서 독립하여
지금의 사업을 하고 있는데,
처음 남편을 만나고 나서
사귀다가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남편의 주위 환경
---(키도 작고, 피부도 검으며,
여러 동생을 둔 장남에.
팔순이 넘은 어른이 있는) 때문에
집안에서는 심한 반대를 했는데
평소에는
그렇게 이해관계가
빠르고 분별심이 남달랐던
그녀가 그때는
누구 말대로 무엇에 씌었는지
남편의 묘한 매력에
끌려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이때까지 그녀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 사는 남편과
그 집안을 위해 평생을
바쳐 수고했다고 하는데
이제 나이 오십이 넘어
지나온 시간을 문득 되돌아보니
왜 자신이 시집과 남편을 위해
그렇게 죽자 살자 하면서 살아왔는지
그 인연에 대한 의문이 들어
그 연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리딩에서 밝혀진
차선희씨의 전생은 1590년경
일본에서의
삶의 무대가 그 배경이었다.
차선희씨는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세번째 측실
(정실부인이 아닌) 하쯔미라고 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에야스는 16명의 측실과
8남 5녀의 자식을
슬하에 두었는데
이 자식들의 결혼을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그 생에서 지금의 남편은
하쯔미가 기거하던
별당에서 그녀를 돌보고 지키던
센이치라는 이름의 하급 무사였다.
하쯔미는
이에야스의 측실이 되기 전에
재색이 뛰어난
어느 명문가의 미망인이었는데
그 집안에서부터
그녀를 모시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쯔미가
이에야스의 여자가 되었을 때도
함께 따라와서 그녀를 평생
곁에서 지키고 보호하면서 살았다.
그때 센이치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연민과 사모의 정으로 대했다.
그때
그녀를 사모했던 간절함이
지금의 생과 연결되어져 있고
그때의
희생과 봉사의 대가로
이번 생에서는 그녀의
남편이 되어
그렇게 보상을 받고 있다.
또한 그때 그녀를 위해 옆에서
시중들고 보살피던 여인들이
지금의 시집식구로
와있는 것이라고 했다.
복잡다난한 인간사 중에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관계가 결혼이다.
잘되면
한없는 보람과 행복이 따르지만
잘못되면 다시없는
무거운 짐이 되고 불행해진다.
거기에는
인간의 행복과
인간의 속박이라는 양극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 양극 사이로
온갖 행복과
불행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차선희씨는 평생을
직업 없는 남편과
그 시집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하게 불행하다거나
남편이 짐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냥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나이가
오십을 넘어섰고 뒤돌아보니
무언가는 모르지만 참 열심히
갚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간혹 있었다고 했다.
법률적으로 본다면
결혼은 하나의 계약이며,
사회적으로는 하나의 제도이다.
그러나 그것을
윤회론적으로 접근한다면
결혼은 두 영혼이 만나
각자의 카르마의
부채를 청산 지불하고,
그리하여 영혼이 새로운
인격을 가꾸어 나가면서
영적 이해력과 힘을 향상해
가는 기회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결혼은 어쩌다 만나 같이
살아가는
우연의 게임이 아니다.
우연은
필연이라는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실개천과도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카르마라는 한치의
빈틈도 없는
인과률의 법칙이 작용한다.
현생의 부부는 어떤 경위로든
과거생에서 서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라고
리딩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