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간디'를 180도 바꾼 사건 / 엄상익 변호사
세상은 법조인을 싫어하는 것 같다. 특권의식이 뼈속까지 배어 있다고 한다.
검찰청이나 법원에서 고양이 앞의 쥐였던 경험을 했던 사람은 치를 떤다.
‘좌파, 우파보다도 검사, 판사 그들만의 공화국을 깨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평생을 법 지식을 팔아 밥을 먹고 살아온 나 역시 법조인이 싫다.
밤늦게 조사가 끝난 검찰청을 나오면서 침을 뱉고 싶은 심정이었던 적도 있다.
왜 그럴까. 내게는 밥벌이 터로 감사해야 했다.
담당 검사 역시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한 걸 안다. 그래도 토할 것 같았던 적이 있다.
원인은 그들의 교만함이었다. 담당 서기는 더 건방졌다.
한번은 조서를 꾸미는 남자에게 왜 서기가 됐느냐고 물었다.
"내가 직급은 낮아도 이 방을 들어오는 순간 어떤 높은 놈도
나에게 머리를 숙이고 고양이 앞의 쥐가 되죠."
세상은 잠재적 쥐떼들로 가득 차 있다. 미움 받는 게 고양이의 운명이 아닐까.
사십여 년 전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을 때였다. 오랜 세월 법관을 지낸 연수원장이
교실마다 돌아다니며 이런 말을 했었다.
"이제부터 평생 여러분은 미움을 받을 겁니다. 세상은 겉으로는 대접을 해주는
척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은 증오로 가득 차 있을 겁니다.
이 세상에서 여러분 편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는 길 곳곳에 덫이 숨겨져 있을 겁니다.
그걸 깨닫고 한발 한발 조심해서 세상 길을 걸어가십시오. 사회의 턱없는 껍데기 대접에
홀려 자신을 기만하고 마네킹 같은 영혼이 없는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이어서 미혼인 연수생들에 대해 이런 주의를 주었다.
"미혼인 분들은 앞으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여러 곳에서 중매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선배 법관이나 검사들이 소개를 할 수도 있고 직업적인 중매꾼들이 좋은 조건을
내걸고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법조의 선배로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말합니다.
절대로 처가의 재산을 보면서 정략적인 결혼을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는 경제적으로 쪼달리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누가 아파트를 사 준다거나 경제적 후원을 해 준다면 우선 눈이 번쩍
뜨일 겁니다. 그러나 남의 도움을 받지 마십시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격증을 가지고 10년만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여성과 결혼하십시오.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변호사였던 간디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의사와 변호사의
두 길을 앞에 놓고 간디가 아버지와 의논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어떤 걸 하는 게 나중에 총리가 되는 빠른 길이냐?"
간디 아버지의 선택 기준이었다. 간디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변호사가 되어
인도로 돌아왔다.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런던의 피카디리가 양복점에서 맞춘
멋진 양복을 입고 금시계를 찼다. 화려한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어느 날 그는 한 사건을 맡았다. 런던에서 공부할 때 알고 지내던 영국인이 인도의
고위 관리로 와서 그 사건을 처리하고 있었다. 간디가 영국인 관리를 찾아가 부탁했다.
듣고 있던 영국인 관리는 안면을 이용해서 청탁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간디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 후 간디는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차의 일등석에서
쫓겨나는 경험을 한다. 영국인 마부로부터 채찍으로 얻어맞기도 했다.
그 후 간디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스스로 아래로 내려갔다.
기차는 삼등칸을 탔다. 양복을 벗고 인도의 평민들이 입는 옷을 입고 다녔다.
일등칸에서 쫓겨난 사건이 허영의 겉껍질을 걷어내고 마부의 채찍이 간디를
민중 속으로 몰았다. 마지막에 암살범의 총알을 받은 것을 보면서 십자가에 오른
예수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나는 간디에게서 법조인의 길을 배우기도 했었다.
많은 법조인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어떤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는 국민들이 어떤 지도자를 요구할까.
역사는 군사 대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독재에서 법치주의로 그 흐름이 변해왔다.
국가도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었다. 국민들은 자유를 원했다.
군인 대통령에서 경제인 대통령 그리고 법조인 대통령으로 바뀌어 왔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땅이 작아도 군사력이 약해도
일등 국가가 될 수 있다. 기술 대국의 개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좋은 나라의 기준을 경제력만 가지고 따지지 않는다.
휴가가 얼마인지 어느 정도 여행을 할 수 있는지 음악과 영화를 즐길수 있는지를
그 나라의 수준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문화 대국의 관념이라고 할까.
역사의 섭리에 따라 국민들도 지도자도 법조인도 바뀔 것이다.
고양이이던 법조인들이 이미 서비스맨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
갑과 을이 바뀌었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