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로
지금까지
아홉 명의 대통령이 있다.
그들은
과거생에서도 깊은
통찰력을 가진 영혼들로서
우리 민족과의 깊은
인연법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나라의 국운을
정화시키고 이끄는
앞선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깊은 영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영혼체들이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통치자로서의 모습에서는
각각 다른 의미의
역할 (긍정적, 부정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 소개하는
그분들의 전생의 모습은
역사가 평가하는
인간적인 삶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휠씬 높고 심오한
영적 의미에 대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분들과
우리나라와 민족이
경험해야 하는 카르마적
상호작용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다시
풀이해서 설명한다면
그들의 통치행위는
자신의 이념적 사고에
따른 개인의 일이 아니라
거대한 국운의 흐름에 따른
시대적 역할에
더 많은 의미가 있다는 밀이다
그말의 뜻은
그 통치자가
독재자의 역할을 했다면
그것 또한
시대의 국운이
원했던 역할이었고,
그 반대의 훌륭한
업적을 남긴 통치자는
그 역할의 시기가
긍정적인 국운의 시절과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의 통치행위를 두고
세속적인 평가로
논제하고 비판하는데,
그것은
인간 차원의 삶에서
그 통치행위가
역사가나 국민들에게
각각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
영적 의미에서의 관찰
(긍정과 부정의 의미보다는
국운의 흐름에 따른
역할론이 더 중요한)은
분명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분들은
조국의 운명을 젊어지고
우리나라가 가야 할
영적 차원의
진화와 발전을 위해
각각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는지도 모른다.
아래 글에서는
그분들이
우리나라의 통치자로 살게된
복합적인 원인을
가진 여러 과거생 중에서
가장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하나의 과거생을 찾아
옮겨본 이야기이다.
♠첫 번째
우리나라의 초대 지도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전생에 원 (2171~1388)나라를 세운
----'쿠빌라이칸' 의 영혼과 일치된다.
'쿠빌라이 칸'은 살아 생전에
고려를 원나라의 지배하에
종속시키기 위해
많은 침략을 일삼았다.
그러나
그는 고려를 완전하게
정복하기 전에 사망하게 된다.
그때 '쿠빌라이 칸' 은
고려에 대한 집착이 강했으며
그 정복욕이 원념으로 남아 있었다.
원나라는
'쿠빌라이 칸' 이 다스리는 동안에
동아시아 전역의 대제국이 되었고
몽골제국의
종주권을 계승한 그는
고려의 종주국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때의 삶에서
'쿠빌라이 칸이 이루지 못했던
고려라는 나라에 대한 집착이
그가 원나라를 건국했듯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던
이승만의 영혼적 인연과는
깊은 관계가
있다고 리딩은 전한다.
♠두 번째 지도자였던
윤보선 대통령은
---조선조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과 영적 자아의
동일체를 가지고 있다.
그 당시의 맹사성은
어질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술적인 안목이 높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같은 지역
(아산과 온양)에서 태어났는데,
어질고 착한
성품과 오직 백성을 위한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질적 소양 등 비숫한 점이 많다.
♠세 번째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의 분령 핵과
연결되어져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나라가
혼란하고 어지러울 때
구국의 신념으로 나라를
지켰던 점이 닮아 있지만,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국운의 배경과
국가의 가치관에 따라
그 공적이 다르게
평가되고 있을 뿐이다.
♠네 번째 지도자였던
최규하 대통령의 전생은
고려 시대 때 62년 동안
최씨 무신정권을 세웠던
----최충헌의
삶과 연결되어져 있다.
그때 최 충현은
당시의 권력자인
이의민을 제거하여
권력을 잡게 되고
그 이후에 그의 집안은
4대에 걸쳐
세습 정권을 잡는다.
그러나
그때의 부적절한
카르마(무신정변)가
현생의 삶과
연결되어져 있기 때문에
박 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대통령직을
승계한 최대통령은
현생에서
12. 12사태로
권력을 잡은 군부로부터
축출 당하는 수모를 겪음으로서
그때 자신이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던 카르마를
정화시키는삶을 살아야 했다.
최규하 대통령이 서거하고 난 뒤,
그의 묘비 뒷면에 기재된
최 전대통령의 일대기에는
--- '최 대통령은
평생 정당에 가입한 일이 없이
직업 공무원의 길을 걸어
대통령이 된 헌정사상 최초의
국가 원수' 라고 기록돼 있다.
최 전 대통령을 보필했던
사람들이 쓴 추모비 글에는
----"최 전 대통령이
국가보위와
경제발전에 헌신 봉사하고,
선공후사와 근검 절약을
온몸으로 실천해
국민 모두의
귀감이 됐다" 고. 적고 있다.
또 12ㆍ 12사태 등과 관련,
''국가변란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
국가원수로 사명의
짐을 지고 국권수호에 전력했으며
세속의 세찬 바람에는
태산 같이
의연함을 보였다." 고 새겼다.
그가 국무총리로 재직했을 때
그를 기리는
추모글은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외교의 거목으로
국위선양에 기여하고,
총리로 확인행정을 통해
국민과의 약속을
천금같이 여기는 공직자였고,
40년 간
하루도 결근하지 않는
근면성과 청렴결백의
미덕은 국민의 표상"이라며
''고매한 인품에 기개 있는
선비요, 큰 어르신" 이라는
내용으로 마무리했다.
앞의 이야기를
카르마의 법칙에
준하여 정리해보면,
이번 생에서 최규하 대통령은
그때 최충헌의 삶에서
자신의 부적절한
카르마를 정화시키기 위해
현생에서는 짧은 기간 동안
대통령직에 머물렸으며
그 때 이루지 못한
최고 통치자로서의
삶을 훌륭하게 채우기 위해
이 삶에 왔는지도 모른다.
♠다섯 번째 지도자인
전두환 대통령은
----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전생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고려시대 말의 장군으로
요동 정벌에 대해
4대 불가론을 내세우며
'위화도회군' 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했다.
이성계는 그때의 삶에서도
최영 장군의
수하에 있다가 항명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었던
무장 출신의 왕이었다.
그리고 20세기에 와서도
군인의 신분으로 항명하여
12.12사태를 통하여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정황이
그때의 이성계와
흡사하게 닮은 점이 많다.
♠여섯 번째 지도자인
노태우 대통령은 전생에
----대구 팔공산에 있는
동화사를 중창하신 심지 대사였다.
그는
신라 헌덕왕의 아들이었으나,
아버지인 헌덕왕이
조카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헌덕왕의 사후
왕위쟁탈전 과정에서
숙부인 흥덕왕에게
왕위를 양보했던 심지는
정치에
회의를 풀고 인생무상을
느끼며 출가했다고 전한다.
♠일곱 번째 지도자인
김영삼 대통령의 전생은
----조선시대의 문신 남익훈으로
형조판서를 지냈고
동래 부사로 있을 때
부산에 거주하던
왜인들의 작폐가 심하자
대마도주와 교섭하여
옛날의 협약 준수를 촉구하고
왜관에 비를 세워
불법행동을 금지시키고
단속을 엄하게 하였다.
♠여덟 번 째 지도자인
김대중 전대통령의 전생은
----강증산의 분령체와
일치된 영적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식과 집단의식은
언제나
개인과 그룹으로 나누어진,
보다 더 거대한
우주의식의 일부분이다
그들은
그 시대의 삶에서의 지도자가
다시 환생의 주기를 따라 태어나는
---같은 시대에 같이 태어나
그 지도자를 섬기는 경우가 있다고
리딩은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교조적 카리스마는
그 시대적 역할에 있어서는
그때(강증산)의 미완성을
이 시대에 와서 완성시키는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홉 번째 통치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전생은
----조선조 말의 동학혁명을
일으켰던 최제우와 연결되어져 있다.
최제우는 동학의 창시자로서
외세에 대항하여
유 불. 선의 교리를 토대로
우리나라 고유의
종교를 만들고자 하였고,.
그 중심사상으로
퇴폐한 기존
양반사회의 질서를 부정하고,
선민사상을 토대로
만민평등을 주창했었다.
그로 인해 기존의 질서가
흔들릴 것을 불안해하던
기존의 양반세력으로부터
제거되었던 인물이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최제우가 주창한 바는 현재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의 정신과 많은 점이 닮아있다.
환생의 전통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자아탐구의 열풍,
즉
---- "나는 과거에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하는
탐구의 흐름 속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나라의 통치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과연
어떤 과거생의 인연으로
지도자가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과연 자신의 과거생과 연결된
어떤
숙명적 근원에 의해
그 시대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증명할 수 있는
사실적 근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환생설에 의하면
그들의 통치 행위는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국가의 카르마와 무관하지는
않다는 설만 추측할 뿐이다.
한 나라의 통치자의 행위는
한 개인의 운명뿐만 아니라
국운의 균형에도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는
민족의 흥망성쇠에 관한
재료를 만드는
중요한 역할도 하지만
극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 국가의
카르마에 의해 조절되고
영향을 받는
부분도 적지 않을 수 있다고
리딩은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