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잃어버리다
정말 힘들게 가을이 왔다.
전염병과 긴 장마,
그리고 잇따른 태풍까지
부대끼고 치이느라
사람들은 지칠대로 지쳤다.
아침에
태풍 피해는 없었냐며
지인의 안부 전화가 왔다.
자기 집은 침수가 되어
가재도구를 거의
못쓰게 되었다고 했다.
전자제품이야
다시사면 되지만
소중하게 아끼던
음반들이 다 떠내려가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신
그 분의 평생 추억이
다 사라진 것이었다.
나도
가끔 음악 들으러
가곤 했었는데
마치
내 일인 것처럼
가슴이 아려왔다.
내겐 오래전 선물 받은
안경이 하나 있었다.
몇 번
안경테가 부러졌으나
고쳐 쓸 정도로
아끼는 안경이었다.
요즘 눈이 좀 안 좋아
렌즈를 다시 맞췄다.
그런데 찾아가라는
연락이 없어 전화를 했더니
안경을 분실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이럴 수가!
그 안경이 어떤 안경인데···.
화가 나는 것을 겨우 참으며
소중한 안경이니
다시 한 번
잘 찾아보라고 했다.
며칠 뒤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는 연락이 왔다.
허탈했다. 가슴이 아팠다.
아! 너를
이렇게 떠나보내는가?
아픈 마음자리를 살폈다.
나도 모르게 정들인
집착이 원인이었다.
안경은 다만 시절인연이
다해 내게서
떠났을 뿐이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보면
주인공이
무인도에서 배구공
'윌슨’과 대화를
나누며 친구처럼 지낸다.
외로운 섬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오직 윌슨뿐이었다.
드디어 뗏목을
만들어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표류 중
파도에 윌슨을 놓쳐 버렸다.
목숨을 걸고 헤엄쳐 갔지만
결국 구하지 못하고
뗏목으로 돌아와 통곡을 한다.
''윌슨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이 장면에서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아끼던 물건이든
이별을 고해야 할 때가 있다.
그 때가 오면 보내줘야 한다.
아프지만 보내줘야 한다.
만났으니
헤어지는 것은 세상이치다.
온갖 고난을
견뎌내고 살아남아
잘 익어가는
뜨락의 감나무를 보며
사람들의 아픈 상처도
빨리 아물기를 기도한다.
이제 드디어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