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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재(20)마음의 발견(과학편)p60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4.12.24|조회수37 목록 댓글 1

깨닫고 있는 선조의 영은,

이와 달리 현상계에 집착이 없기 때문에, 구애됨이 없다.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이 현상계에 나와 헤매고 있는 부조화한 영에게,

우리는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마음이 정법의 생활을 하고 있다면,

몸에는 신불로부터 빛의 보호를 받아,

부조화한 영에 빙의되는 일이 없다.

악령(惡靈)에게 빙의된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원인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잘 반성하는 것이 선결이다.

 

마음으로부터의 명상적 반성에 의해,

우리의 의식은 신불의 빛으로 뒤덮이고,

그렇게 했을 때, 부조화한 영도, 그 빛에 의해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

선조에 대해서는, 숭배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감사에 대한 보은 공양이 바람직하다.

몸이 건강하다는 것도,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조화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공양의 방법인 것이다.

 

현대 종교의 대부분은,

선조 신앙으로 되어버려서, 신심의 근본도 모르게 되고 말았다.

이 원인도, 신리가 오랜 세월 동안,

()와 의()의 해석으로 타력본원의 경향으로 되어,

그것에 얽힌 직업의식 등이,

불법(佛法)의 신리를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매몰시켜 버렸던 것에 있다.

 

대다수의 학자들 중에는, 본서의 기록에,

그런 바보 같은 것이 있을까.

라고 반론하는 것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지혜만으로는, 내가 설하고 있는 정법을 터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말해두고 싶다.

종래의 종교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

이것이 자기 자신을 깨닫는 지름길이다.

 

또 교조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행위를 자주 반성하지 않으면,

남의 일이 아니라, 마음이 동요되어,

마침내는 정법에 귀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사람들도 나올 것이다.

 

불교나 크리스트교의 신리를 잘 깨닫고 있는 승려 중에도,

내가 설()하고 있는 신리에 확신을 갖고

자신이 탐구하고 있던 법과 동일하다는 것에

기쁨을 금할 수 없는 사람들도 나올 것이다.

 

석가모니가 신리를 설하고 있던 당시도,

푸라나ㅡ 카사파, 아지타ㅡ케사칸파리ㅡ. 막카리ㅡ고ㅡ사라,

니간타나ㅡ푸타, 파쿠다ㅡ캇챠야나, 산쟈ㅡ 등의 교조가

대표적인 사람들로서 있었지만,

그 교의는 저차원적인 것으로,

그들 제자들의 대다수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불교에 귀의해 갔다,

는 사실도 있다.

카챠나ㅡ, 푸라나 캇사파ㅡ, 샤리푸트라ㅡ

와 같은 사람들도 다른 교단의 지도자였거나, 그 제자로서 있었다.

나는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수호령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우리가 설하고 있는 법은,

인류의 대다수가 일찌기 과거세에서 배워 온,

예수, 석가모니의 신리였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인생론 노트

 

조화에의 길

 

현대사회에 있어서 왜곡은,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잊어버리게 한 생활환경에 있다.

오랜 역사는, 인류가 만들어 낸 투쟁과 파괴,

희생으로부터 조화에의 길의 반복이었다.

그 시대 시대의 권력자는,

스스로 가진 무력이라고 하는 폭력에 의해 봉건사회를 구축하여,

자기의 번영과 안태(安泰)의 길을, 대다수의 중생의 희생 위에 만들어 갔다.

마침내 권력자와 손잡은 호상(豪商)들은,

물질과 경제력을 갖고 사회적 지위를 구축한다.

하지만 하나의 봉건사회는

스스로 뿌린 씨앗인 폭력에 의해,

타국에 멸망되어 새로운 권력으로 교체된다.

호상들은 곧 자본주의 사회에로의 길을 열어,

변함없이 그 경제력에 의해 대다수의 중생을 희생시켜

자기 보존과 자아아욕에 전념, 자기 보존의 집착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서,

중생은 마침내 사회주의 사상에 의해,

약한 중생의 단결이라고 하는 미명 아래,

그 힘을 자본가와의 대립적 투쟁이라고 하는 반작용으로 갖고 가버린다.

 

또한 대지주는 소작인을 이용하여

불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식으로,

약자가 면목이 서지 않는 사회 상태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물질문명의 환영에 사로잡혀,

스스로 만들어 낸 환경 속에서

점점 욕망의 충족이라는 방향으로만 마음을 빼앗겨,

노사에 있어서도 함께 만족하는 것을 잊고 아귀도에 빠져,

스스로를 물질 경제의 노예로 몰아넣고 만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잃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사회악을 만들고,

매스컴은 또 그 동물적 본능을 선동하여 올바른 보도를 잊고,

경제적 노예가 되어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교육자는 또 양극단적인 사상에 마음을 팔아,

자신의 목이 제자들에게 의해 조여지는 사람도 있다.

과연, 이와 같은 세상을 두고, 문명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사회,

말법의 사회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인이, 지금이야말로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을 잃은 물질 경제적인 자본주의,

사회주의에 의해서는, 조화가 있는 사회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물질 경제의 노예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하는 것이 선결은 아닐까

노사의 투쟁은,

양자(兩者) 스스로의 고통을 만들고 있다.

공해문제를 비롯하여,

물가 불안정, 동물적 본능, 무질서한 사회,

이것들이 마침내 인류 스스로의 목을 조이는 것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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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4.12.24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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