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매기의 산
전시회의 마감시간 무렵, 한산한 갤러리에 행색이 허름한 한 노인이
어떤 그림 앞에 오랫동안을 서있다. 다른 그림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가까이 다가서 보기도하고 멀리 떨어져보며,
뭔가를 한참 생각하는 듯하기도 하면서 …
이때 말쑥한 한 노신사가 다가와 ‘포레스터의 산’이라
제목 붙여진 같은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시간이 좀 지나, 이윽고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이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노인의 질문에
“아, 제 이름이 포레스터입니다. 그래서 옛 추억을 찾으려 이 그림을
보러 온 겁니다.”
“그래요? 참 영광입니다. 내 아내 매기도 이 산을 처음 등정한
포레스터씨를 만났다고 하면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사실은 아내와 함께 이 그림을 보고 싶었는데 … “
우리는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을 했답니다.
그러나 입장료가 모자라 한 사람밖에 들어올 수 없어, 나는 아내를
들여보내려 했으나 아내 매기가 한사코 내가 봐야 한다고 우겨,
나 혼자 들어오고 아내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이 그림을 잘 설명해 주기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보고 있는 것입니다.
- 중 략 -
“내가 산 정상에 이르자 발을 잘 디딜 수 있도록 사람이 바위를 깎아놓은
듯한 흔적 -암벽등반 전문용어로 step- 이 있어 협회에 보고했었습니다.
그러나 협회에서는 그 동안 수 많은 실패만 하였고 아무도 오르지 못했던
위험한 곳인지라 우연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결론짓고
내 이름을 그 산에 붙인 것입니다.
잠시 망설이던 노인의 눈이 번쩍 빛나며 신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산 정상에서 램프 같은 것은 못 보셨습니까?”
노신사는 깜짝 놀라며
“아니 노인께서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이제 생각해보니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녹이 슬고 형체가 잘 보이지도 않는- “
“나는 비행기에서 떨어진 것 인줄 알았었는데 … “
(스위스 마테호른)
“그 당시 산 너머 편에 살고 있는 약혼녀 매기에게 크리스마스선물을
해줄 돈이 없어 좋은 물건을 사주지 못하므로 뭘 해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음을 정하고는내 사랑 매기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매기! 크리스마스저녁 산 위를 보면 내가 당신께 드리는
선물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사실은 내가 매기를 위한 크리스마스선물로
산에 올라 정상에 호롱불을 밝혀놓은 것입니다.
며칠 후 약혼녀 매기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감동적인 선물을 받았습니다,’ 라고 … “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포레스터씨는 마침내
‘포레스터의 산’ 이라고 붙여진 그림의 제목을 떼어버리고
거기에 ‘매기의 산’ 이라고 새로 써 붙이고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40년 전쯤 어느 월간지에서 읽은 다이제스트로 된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다시 찾아보려 했으나 아마 국내에서는 출판이 되지 않은
소설인 듯 번역본은 물론 원본도 (호기심을 위해 제목을 달리했는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크리스마스시기를 맞으면 감동적인 선물로 생생히 기억되는
아름답고 신선한 글이 아닌가 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최소한 40년
전부터 대략 100년 사이, 서양의 산골마을인 듯하며,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현대를 사는 우리와는 많이도 다른 문화로 느껴집니다.
황혼까지 아름다운 사랑/용혜원
https://m.youtube.com/watch?v=tZHi8n1fB-I&pp=ygUT7JWE66aE64uk7Jq0IOyCrOuekQ%3D%3D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소지품은 핸드폰, 컴퓨터, 은행 신용카드, 폰 뱅킹 보안카드,
백화점 출입카드, 출입문열쇠, 자동차열쇠, 금고열쇠 … 가까이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참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방식, 일상의 도구들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스스로를 구속하고,
매어있게 하며 어쩌면 또, 화를 불러오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주민등록번호(여권번호), 주소지 지번(아파트 동 호수), 은행통장번호,
학번, 군번 … 이 시대의 우리는 인격체로서가 아닌, 복잡하고 다양한 숫자들
속의 한 숫자로밖에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글픔도 있습니다.
한편, 소설배경 속에서의 생활은 지금의 환경보다 과학적으로는 불편하기도하며,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기도 한, 좀 투박한 문화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자연환경처럼 - 글 속에서의 주인공들을 스쳐 지나면서 느껴지는
– 사람들 사이에 믿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가짐들이 신선함을 묻어나게 합니다.
우리는, 더 중요한 인간의 본성을 잃어가면서
안락함과 편리함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겸허한 바른 삶을 벗어나,
바벨탑을 쌓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