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 속에 서릿발 같은 경책
우화 큰스님은 일상 생활 속에서
어묵동정 행주좌와가
모두 천진무구하신 분이다.
가까이서 모시고 나면 바다와 같은
그 천진한 세계에 크게 감화를 받는다.
나주읍에 오일장이 서면
큰스님은 가금씩 장을 보러 가신다.
몇 십 년은 입었을
두루마기를 말끔하게 다려 입고,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짐작도
안 되는 오래된 하얀 운동화를 신고
절에 있는 부목에게 지게를
지워서 앞세우고 아침 일찍 그렇게
장 보러 길을 나서는 것이다.
나도 가끔 큰스님을 따라 나서 봤다.
절에서 학교를 다니는
일 학년짜리 아이가 하나 있었다.
노스님이 장 보러 가는 날에는
이 아이도 등교길에 같이 가게 된다.
아침 찬바람에 산길을 내려오니까
아이가 자꾸 콧물을 흘린다.
노스님이 슬쩍 슬쩍 곁눈으로
아이 콧물 흘리는 것을 바라보시더니
그만 당신의 그 깨끗하게 다려 입은
두루마기 자락 안 쪽으로 아이의
콧물을 쓱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집에서 입고 나오실 때는 혹시나
그 깨끗한 두루마기에 먼지
라도 묻을까봐 조심조심 하셨는데,
아이 콧물을 보는
순간 잊어버리신 것이다.
내가 “노스님, 그 깨끗한 두루마기
에다 어찌 아이 콧물을,” 하며
바라보면 슬쩍 나를 쳐다
보시고는 일 없다는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시는 것이었다.
천진한 성품이란 본래
어린 아이의 마음과 같다.
그래서 천진한 사람은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 역시
천진한 사람을 좋아하는가 보다.
노스님 역시 예외
없이 아이들을 좋아하셨다.
다보사에서는 그 당시 조석 예불
시간에 백팔 번씩 관음정근을 했다.
정묵 스님이
목탁을 잡고 염불을 하는데,
노스님이 옆에서 염주를 짜르르,
짜르르,, 소리나게 땡기신다.
이제 그만하라는 신호인 것이다.
사실 백팔 번 염불은 잠깐이다.
그래서 정묵 스님이 노스님의 이 같은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염불을 하면
노스님도 계속해서 정묵 스님 귀
에다가 대고 짜르르, 짜르르,
하고 염주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옆에 있던 다른 대중
들은 웃음이 나와 그걸 참느라고
킥킥거리고, 그렇게 하다가
정묵 스님이 정근을 끝내면
노스님은 정묵 스님에게 “아따,
그 짧은 시간에 스님은 염불삼매에
들었던 모양이요이.”하고 말씀하셨다.
대웅전을 지나서 나한전이 있고,
그 나한전을 지나서 우리가 사는
선원이 있는데 절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여름이라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으면 방안에서도
아래 절이 환하게 다 보인다.
오후 한낮이 되면 가끔 노스님이
등 뒤로 차담거리를 감추고
발뒤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아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올라오시는 모습이 보인다.
굳이 조심해서 올라오시는 것은
우리가 정진하는데 방해
하지 않겠다는 마음씀이실 것이다.
그렇게 올라오셔서 선방 안을 들여다
보시고는 우리가 좌선을 하고 있으면
들고 오신 차담을
가만히 내려놓고 내려가신다.
혹여 우리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시면
그만 실망하시고 섭섭해서,
“수좌들이 공부는 안 하고 웬 잡담들
인감” 하고 혼잣말을 하시면서 들고
온 차담을 그냥 가지고 내려가신다.
우리가 그 때서야 어이쿠 하는
마음으로 급히 노스님께 달려가,
“조실 스님, 우리가 내내 공부를
하다가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공부 시같이 되어 바로
입선을 할 것입니다.그러니
조실 스님 뒤에 감추고
계신 차담은 이리 주십시오.”
하면 그 때서야 들고 오신
차담을 못이기는 척 주고 가신다.
그러면서 노스님은 “이것
잡수고 공부 잘 하시오이.” 하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이렇게 매사를 천진한 아이같이
행동하시지만 그 속에는 매우
날카로운 경책이 들어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서릿발같은
매서운 질책이 들어있기도 하다.
그래서 내놓고
하시는 꾸중이 아니지만
우리는 다시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아 더욱 긴장하고
분발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다.
흡사 인자한 시골 할아버지 같기도
하면서 자상하고 친절한 선지식이다.
출처 ㅣ 효림 스님 /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