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울력
감자 캐는 울력이 있던 날이다.
여름 안거를 시작한 뒤 첫
율력이라서 다른 때보다 서둘렀다.
고무신은 흙이 잘 들어와 밭일을
할 때에는 오히려 성가시다.
양말이 흙투성이가 되는
게 싫어 운동화를 신었다.
절저고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밀짚 모자까지 쓰면 밭일
할 채비가 대충 끝나는 셈이다.
팔뚝에 토시까지 갖춘 스님네는
행동이 야무져 보기에도 좋다
대중 울력은 빠지는
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어른 스님네부터 행자님들
까지 팔목을 걷어
붙이고 땀을 흘리는 시간이다.
뒷방의 노스님들까지도
힘든 밭일을 함께
하는 것을 자주 보아 왔다.
이 곳은 아직까지 울력의
정신이 잘 지켜지고 있다
화엄전 뒤 넓은 채마밭
대부분이 감자밭이다.
위쪽은 들깨를 심고
아래쪽은 고추와 상추를 심었다.
감자밭은 일꾼들 몇 명이 며칠은
꼬박 일해야 할 만큼 꽤 넓다.
한해 동안 먹고도 남지 싶다. 그래도
살림을 꼼꼼히 하는 원주 스님은
"가뭄이 들어 감자 알이 작아졌어요"
하며 토실토실 살이 오르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사실 감자를 다 캐는 동안 주먹만큼
굵은 감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감자 캐는 일도 요령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호미로
파헤치다가는 감자가 상한다.
호미 끝에 감자가 찍히거나
상처가 나면 그 곳이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수가 없다.
그냥 푹푹 파내는 게 아니라
이랑 바깥 쪽에서 깊이
호미질을 하는 게 비결이다
그렇게 하니 알이 흙덩이째로
고스란히 드러나곤 했다.
또 한줄씩 맡아서 하는 게 수월하고
능률도 몇 곱절 난다는 걸 알았다.
그러지 않고 우왕좌왕하면 이랑
한줄 정도는 그냥 둔
채로 일을 끝내기가 십상이다.
그래서 원주 스님은 뒤쪽에서
괭이를 들고 다니며 이랑마다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곳에 여러 개 달려 있는 감자를
캐냄 때 보품을 찾은 것처럼 신나서
"스님, 여기 좀 보세요. 한 무더
기나 되요" 라고 한 걸로 보아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밭자락이 절반이 더 되게
비워지면서 스님네의
손놀림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일에 탄력이 붙은 것이다.
감자 줄기를 뽑아 내면. 그 이랑을
따라 호미질을 하고 뒤이어 감자를
주워 담는 동작을 계속 되풀이하였다.
한 가마니가 금방 채워질 만큼
일을 빠르게 한 것은 다들
제 일처럼 열심히 한 덕택이다.
이 이랑 저 이랑을 부지런히 뛰어
다니며 감자를 줍던 한 스님은
고무신에 흙이 차는 것이 귀찮은지
아예 맨발이 좋다는 식이었다
울력은 땀이 흐르지 않을
만큼 쉬엄쉬엄 하라는 말도 있지만
어디 그게 될 법이나 한가.
무엇보다도 비구 스님들은
무슨 일이든 후딱 해치우는 성질이
몸에 밴 까닭에 더욱 그렇다
오늘 같은 일을 느슨하게
하면 도리어 기운만 빠진다.
이런 살림살이는 일상의 공부에서
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치이기도 하다
날이 그리 뜨겁지
않아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감자 캐는 일을 마칠 수 있도록
알맞은 날을 정한 건 소임자 스님
의 오랜 경험 덕이 아닐까 싶다
때를 놓치면 대중의 공부
분위기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손발이 척척 잘 막아 하루
일감이 반나절로 줄어들었다.
그 사이에 넓은 감자밭이 빈 들판
이 되어 버린 게 믿어지지 않았다
감자를 담은 자루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서 일을 마무리지을 때에
햇살이 많이 엷어져 있었다.
오늘 같은 날에는 몸에서 끈적끈적
묻어나는 땀 냄새도 싫지 않다.
수행자로서의 내 삶이 당당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자기 일에
충실했다는 단순한 사실 덕분이다.
절 집안의 육력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수행이다
일도 늘 하던 사람이 잘 하는가 보다.
오랜만에 호미질을 반나절
했다고 손에 물집이
잡히고 어깨까지 묵직하다.
몸을 크게 움직이는
일을 자주 하지 않은 탓일 게다
일본의 어떤 스님이 우리 나라
절을 방문하고 세 가지
사실에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울력이 적다는 것과 일꾼을 사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불필요한 노임 지출이 그것이다.
스님들이 너무
편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흔히 소임자 스님들이
'울력을 꼭 사중 일로만 생각하는
자세 때문에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또 노스님들은 "큰절을
그저 묵었다 가는 하숙집쯤으로
여기고 남의 집 보듯 한다"
면서 꾸짖으신다.
이러한 지적은 내 생활만 돌아
보아도 십분 고개가 끄덕여진다.
차츰 타산적이고 이기적으로
굳어 가는 내 일상이 무섭다.
아무튼 수행자가 타성에
젖는다는 건 자기 질서에 둔감
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까 먹은 햇감자 생각이 자꾸 난다.
포슬포슬하게 잘 삶은
감자는 담백한 맛이 으뜸이다.
그리고 다른 식품보다 조리법이
여러 가지라서 물리는 일도 없다.
또 고혈압을 예방하는
건강 식품이기도 하다
여러 개 먹은 탓인지 지금까지
속이 거북하다.절식을 잘 못하는
것도 내게는 큰 병이다.
앞으로 삶고, 볶고, 튀긴 햇감자
요리를 공양 때마다
맛보는 즐거움도 괜찮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