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高僧). ‘덕이 높은 스님’을 가리키는 이 단어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다소 주관적이다. 어떤 기준으로,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 대상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승단(僧團)은 엄격한 규율과 위계질서(位階秩序)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동의하는 고승들을 열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한국 불교에는 보통 4대 종단으로 꼽히는 조계종·태고종·천태종·진각종을 비롯해서 많은 종단이 있다. 하지만 1700년 한국 불교의 역사를 사실상 계승하는 것이 조계종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조계종을 대상으로 고승들을 살펴본다.
우선 가장 먼저 꼽아야 할 불교계의 고승은 조계종의 5대 총림(叢林) 방장(方丈)이다. 총림은 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염불원(念佛院) 등을 갖춘 대규모 사찰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 해인사·통도사·송광사·수덕사·백양사가 있다. 일종의 종합 수행도량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사찰의 최고 어른인 방장은 소속 스님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주지 임명권을 비롯해서 사찰 운영과 관련한 전권을 가지며 종신직이다.
불교계에서 대단한 권위와 위상을 지니고 있는 5대 총림의 방장 중 가장 어른은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91) 스님이다. 조계종 제5대 종정(1974~1978)을 역임한 서옹 스님은 20세 때 백양사에서 만암(曼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표적인 선승(禪僧)이지만 양정고보와 중앙불교전문학교, 일본 교토 임제대학교를 졸업하여 불교 이론에도 밝다. 또 현대 철학과 사상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현대 물질문명의 한계를 선(禪)으로 극복하려는 ‘참사람운동’을 주창하여 아흔을 넘긴 고령에도 정정하게 활동하고 있다.
통도사 방장 월하(月下·88) 스님 역시 조계종 제9대 종정(1994~1998)을 지낸 불교계의 원로이다. 17세 때 금강산 유점사에서 출가했고, 25세 때 통도사에서 구하(九河) 스님에게서 비구계를 받았다. 1950년대 중반 비구승과 대처승이 분규를 벌인 ‘불교 정화’에 비구측 대표로 깊숙이 관여했으며 통도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감찰원장·종회의장, 동국학원 이사장 등을 두루 역임해 종단 행정에 아주 밝다.
해인사 방장 법전(法傳·78) 스님은 현재 조계종 제11대 종정이다. 10세 때 영광 불갑사에서 출가했으며 23세 때 백양사에서 만암 스님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1947년 성철(性徹)·청담(靑潭) 스님 등이 이끌던 젊은 선승(禪僧)들의 수행 조직인 ‘봉암사 결사(結社)’에 막내로 참여했고, 이후 성철 스님과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됐다. 오랫동안 경북 김천 수도암에서 수행했으며 1985년 해인사로 돌아와 주지·부방장을 역임한 후 1998년 방장, 2002년 종정에 추대됐다.
수덕사 방장 원담(圓潭·77) 스님은 15세 때 수덕사에서 벽초(碧超)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경허(鏡虛)-만공(滿空)-벽초(碧超) 스님으로 이어지는 수덕사의 선맥(禪脈)을 잇고 있으며, 현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法長) 스님, 전 중앙종회 의장 설정(雪靖) 스님 등 종단 내에 비중있는 제자들이 많다. 화엄사·수덕사 주지,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등을 지냈으며 특히 글씨에 뛰어나 이 시대의 대표적인 선필(禪筆)로 꼽힌다.
송광사 방장 보성(菩成·75) 스님은 현재 출가하는 스님들에게 계율을 전달해 주는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을 맡고 있다. 17세 때 해인사에서 구산(九山)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송광사 문중을 시작한 효봉(曉峰) 스님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모셨다. 통영 미래사, 광주 증심사, 송광사 등의 주지를 역임했으며 특히 수행자에게 있어 계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손님을 문밖까지 배웅하는 등 큰 사찰의 최고 어른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을 갖고 있다.
한국불교 중심은 어디까지나 ‘참선’
한국 불교는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통불교(通佛敎)를 표방하지만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참선이다. 조계종과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승(禪僧) 중 대표적인 고승으로는 흔히 ‘남(南) 진제(眞際), 북(北) 송담(松潭)’이 꼽힌다.
진제(70) 스님은 20세 때 남해 해관암에서 출가했고, 25세에 향곡(香谷) 스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으며 경허-혜월-운봉-향곡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잇게 됐다. 1971년 부산 해운대에 해운정사를 창건하여 도심의 참선도량으로 키웠고 동화사 조실도 맡고 있으며 조계종의 특별선원인 봉암사 조실을 역임했다.
송담(74) 스님은 선승들 사이에서 수행처로 유명한 인천 용화선원 선원장을 맡고 있다. 16세 때 출가해서 근대의 고승인 전강(田岡) 스님의 문하에서 수행했으며, 전강 스님이 그에게 기울인 정성은 불교계에서 유명하다. 송담 스님은 평소 멀리 떨어진 토굴에서 지내다 큰 법회나 행사 때만 잠시 얼굴을 나타내는 등 외부인들과의 접촉을 사양하고 있다.
불교 경전에 밝은 학승(學僧)으로 대표적인 사람은 동국역경원 원장 월운(月雲·75) 스님, 전 동국대 총장 지관(智冠·71) 스님이다. 두 사람은 한국 근대 불교의 대표적인 강백(講伯)인 운허(耘虛) 스님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로 스승의 뒤를 이어 각각 일가를 이루었다.
1964년 운허 스님의 주도로 동국역경원이 출범하고 대장경 국역 사업이 시작되자 이를 도왔던 월운 스님은 운허 스님 입적 후 역경 사업이 흔들리자 1993년 동국역경원장을 맡아 2001년 9월 318권의 ‘한글대장경’ 완간을 이끌었다. 지관 스님은 해인사 강원과 동국대 교수로 오랫동안 가르치고 연구했으며, 1991년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하여 ‘가산불교대사림(大辭林)’ ‘고승비문(碑文) 집대성’ 등 방대한 기초문헌을 간행하는 등 불교학의 토대를 놓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불교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분야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포교와 교화이다. 이 쪽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은 서울 칠보사 조실 석주(昔珠·94) 스님과 화계사 조실 숭산(崇山·76) 스님이다.
석주 스님은 20세 때 서울 선학원에서 출가한 후 불국사·은해사 주지, 중앙승가대 학장, 선학원 이사장,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글 서예도 빼어난 석주 스님은 불경 번역, 사회복지 등에 힘을 기울였으며 1970년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 초대 총재를 맡는 등 청소년 포교를 일찍부터 강조했다. 그는 몇 차례 종정 후보로 거론됐지만 그럴 때마다 “도심에 있는 중이 무슨 종정이냐”며 사양했다.
숭산 스님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한국 불교 해외 포교의 선구자이다. 20세 때 공주 마곡사에서 출가한 그는 1960년대 초 화계사 주지, 불교신문사장, 조계종 총무부장 등을 맡아 조계종의 틀을 짜는 일을 도왔으며, 1966년 재일(在日)홍법원 설립을 시작으로 홍콩·미국·폴란드·러시아·프랑스 등에 한국 불교를 알리는 데 힘을 기울였다. 특히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인 현각 스님을 비롯해서 많은 외국인 제자들을 배출하여 유명하다.
조계종의 고승 중 이채로운 사람은 곡성 성륜사 조실 청화(淸華·80) 스님이다. 일본 유학을 거쳐 23세 때 출가한 그는 주지 한번 맡지 않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행에 전념해 온 인물. 근대 지식과 세상의 변화에 밝지만 간화선(看話禪)이 아니라 염불선(念佛禪)을 강조하기 때문에 한국 불교의 주류에서 조금 비껴서 있다. 그는 조계종 원로의원, 남원 실상사 조실 등으로 추대됐지만 “나는 아직 공부하는 사람”이라며 이를 마다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