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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자유게시판

늙은 개의 추억/펌

작성자고은이|작성시간02.08.10|조회수117 목록 댓글 0



우리집은 내가 아주 어렸을때부터 개를 길러왔다.

처음 기른개는 메리라는 순수혈통의 진돗개였는데, 얼마나 정이 들었었든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아려온다.

초등학교시절, 동생과 내가 산등성이를 넘어 다니던 때, 등교때는 물론이거니와 하교때도 어김없이 학교 문앞에서 우리 남매를 기다리다 집까지 수행하곤 했던 충직한 보디가드였었다.

그시절 집안이 어려워 족히 삼십여길 떨어진 시골에 엄마는 식당을 혼자 운영하느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 새벽장을 보고 차비가 아까워 그 먼길을 걸어다니셨는데, 그때도 메리는 새벽장을 떠나시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그러다보니 메리의 하루는 몹시 바빴다.

새벽 4시면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서서 식당까지 임무완수한 후에 집으로 부지런히 돌아와 아침 8시면 나와 동생의 등교길과 하교길을, 다시 저녁엔 식당으로 가서 밤길 혼자오시는 엄마를 안전하게 모시고 오는 일과를 오랜기간 한결같이 수행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메리의 목과 등 여러곳에서 혹이 발견됐고, 수의사는 암이라고 했으며, 얼마안남았다고 했다.
너무나 애통해하는 가족들 때문에, 특히 매일 혹만보며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과 나 때문에 엄마는 메리를 더 이상 곁에 둘 수 없었다.

게다가 늘 곁에서 돌봐줘야 하는데, 어려운 형편이 하락지 않았으며, 그 몸을 이끌고 아무리 야단쳐도 따라나서는 메리를 위해 어쩔수없이 인근 과수원 노부부에게 메리를 돌봐줄 것을 부탁했고, 그렇게 메리와 이별했다.

떠나는날 자신의 운명을 순응했는지 평소 낮선 사람을 날카롭게 경계했던 것과는 달리 단 한번의 반항없이 눈물로 가득찬 슬픈 눈빛만 여운으로 남긴채 그 노부부를 순순히 따라나섰다.

그 뒤 나와 동생은 메리없이 학교다니는 것이 적응이 않돼 엄마 속을 태웠었고, 그런 엄마 역시 식당까지 그 길이 그렇게 먼길이었고 험난한 길이었음을 비로소 알게되신거고, 그렇게 메리의 부재를 우리보다 더 힘들게 겪으셨다고 하셨다.

그시에서 최초의 진돗개 직계 혈통이었던 영특한 메리는 가족마다 각자의 추억을 다르게 심어놓고 떠났기에 지금까지도 그리워하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개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몸집이 작은 외국종의 애완견을 주로 키웠다.

메리 이후, 우리집을 거쳐간 애완견들의 이름은 한결같이 "깐순이, 깐돌이, 방울이, 더펄이" 였고, 이 이름들을 거쳐 지나간 10여마리가 훨씬 넘는 개들은 모두 성별에 의해, 혹은 성격에 의해 이렇게 4가지로 분류돼 불리워졌다.

사람들에게 예민하고, 좀 사나운 암개는 깐깐하다해서 '깐순이'고, 숫개는 '깐돌이'이다.

누구에게나 재롱잘떨고 순한 개는 '방울이'이고, 아무데서나 먹을것만 찾는 푼수기질이 있는 머리나쁜 개는 더펄거린다 해서 '더펄이'이다.

이렇게 각양 각색의 개를 길러왔는데, 거의가 자연사했고, 지금 기르고 있는 "깐순이"는 약 13년동안 우리 가족과 동고동락한 아주 영리한 개이다.

처음 집에 왔을때가 태어난지 한달쯤 되었을땐데, 아파트에서 기르려다 주위 눈총받은 어느 노부부의 부탁으로 기르게 됐다.

기르는 동안 자녀들이 다 장성해서 나가있고, 지금은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아버지가 하시는 가게에서 기르고 있는데 가게를 어찌나 잘지키는지 동네사람들이 모두들 부러워, 더러 팔라고 흥정이 올 정도이다.

지금은 안하지만 예전에 오락실할땐 부모님이 가게를 비우면 금고통위에 올라가 앉아 있어, 아무도 접근 못하게 했는데, 평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어림없을 정도로 놈은 영특하게도 돈의 가치와 존재를 잘 알고 있다.

언젠가 모녀를 함께 오랫동안 키운적이 있었는데, 손주가 생기자 어미 몰래 틈틈히 손주를 품어주다 어미한테 들켜 자식한테 물려가며 무수히 쫓겨나는 수모도 당했지만, 그 어미가 태어난지 며칠안된 새끼를 두고 뭘 잘못먹어 죽었을땐, 손주를 다 클때까지 정성껏 젖을 먹여 키우는 극정스런 모성애는 누구도 못말릴정도이다.

아버지와 아침 저녁 곧잘 산책하는데, 누가 아는척하느라고 아버지를 툭 치기만 해도 즉각 바짓가랭이를 물고 잘못했다 할때까지 놓질 않는다.

언젠가는 좋은씨를 받기위해 다른집에 4일간 맡겨 두었었는데, 숫개는 물론이고, 아무도 접근못하게 하며, 물조차 안먹고 내내 굶었다 탈진까지 갔을정도로 주인외에는 누구도 거부하는 일편단심 민들레이기도 하다.

식취향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땐 자기팔자를 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스러울때가 있다.

식은 밥과 먹다 남은밥은 절대 거절이며,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밥통에서 김이 모락 모락나는 막퍼온 밥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보는 앞에서 직접 썩썩 비벼줘야만 조금 먹고, 고기조차도 어지간하면 쳐다도 안볼만큼 먹는것엔 도통 관심이 없다.

언젠가는 부모님께서 3박4일 여행가시느라 깐순이만 있게하고 가게를 잠그고 가시면서, 혼자있던 남동생에게 하루 한번씩 순대중 간만 사다가 아주 조금씩 주라고 당부했는데, 동생이 그만 깜박 잊다가 3일째되던날 순대를 사서 허겁지겁 가게로 달려가 그동안 물한모금 못얻어 마셔 지쳐있는 깐순이를 줬는데, 그게 그만 간만 먹는다는 사실을 깜밖해서 순대창자만 사왔던 것이다.

냄새를 맡고 이리 저리 킁킁대더니, 마땅찮은지 고개를 획~외로돌리고는 전혀 아무것도 입도 안댄채 쳐다보지를 않는 것이 아닌가?

"호오라...네놈이 아직 배가 덜 고픈 모양이네...네가 안먹고 배기나 보자" 오기가 나서 그냥 놓고 나와버렸고, 다 다음날 아침이 되서야 전날 밤에 오신 아버지가 가게를 나오셨는데 그때까지도 전혀 입조차 대질 않고 탈진으로 굶어죽기 직전이어서, 급하게 순대간을 사다 먹여 겨우 기운차리게 했던만큼 무려 5일동안이나 안먹고 있어, 굶어죽을지언정 자기 식취향의 음식외에는 절대 함부로 먹는걸 본적이 없다.

아직 그렇게 안먹는 개는 보도 듣지도 못할만큼 생명유지에 최소한만큼만 먹는 것이다.

그럼에도 딱 한가지, 그것 때문에 그 도도한 놈이 더러 구차스럽게, 꼬리 축내리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갖은 요령피며 얻어먹는게 있는데, 바로 아침, 저녁으로 기필코 마셔야 하는 커피다.

이렇게 조금도 굴하지 않고 10년을 넘게 매일 커피를 2잔씩 마시다 보니 이젠 중독증세까지 보이는데, 밥은 며칠씩 굶어도 끄떡 없지만, 커피는 하루만 안줘도 자리에 못앉아 있고 안절부절, 보는 사람마다 가게 앞 자판기로 끌고가서 끙끙대며 보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라 반드시 사람손으로 입에 맞게 기울여 주어야 하는데 그 뜨거운걸 훌훌대며 혓바닥으로 다 핥아마시고는 다 먹었다는 표시로 빈 종이컵을 물었다 떨어뜨리는등 제깐엔 의사표시를 분명하게 한다.

놈의 커피당번은 아버지인데, 조금 길게 가게를 비워 커피가 궁할때면, 자판기앞에 서서 평소에는, 아무리 낯이 익은 단골손님이라도 건드리지 못하게 사납게 굴다가도 먼저 접근해서 갖은 재롱을 마다않고 굽실거리며 얻어먹는 추태도 마다 않는다.

이렇게 하루 두번씩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의 의도를 100% 성공시켜 이젠 놈이 자판기에서 서성거리면 모두들 아버지의 부재를 금방 알아차릴만큼 동네에선 늘 화제가 된 오래된 수법이다.

자판기 놓기전에는 바로 건너 다방에서 배달시켜 먹었는데, 깐순이 전용 커피잔을 따로 다방에 마련해둘 만큼, 다방 아가씨의 인심을 얻었는데, 어쩌다 안시키는 날에도 다방아가씨가 깐순이만 한잔 배달해 주는 정성 덕으로, 놈은 절대로 커피를 걸른적이 없다.

3년전엔 엄마가 크게 아파서 병원에 한달정도 입원했다 집에 온적이 있었는데, 들어오는 엄마를 보고는 얼굴의 온털이 다 젖을정도로 눈물을 펑펑 흘려, 온 가족을 울게 만들정도로 주인에 대한 애정이 지극할뿐더러, 사람말귀를 기막히게 알아듣는 영리한 녀석이다.

지난 여름엔, 매일 가게에서 엄마와 담소하시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무심코 옆에 있던 깐순이를 가리키며, 농담으로"복날인데, 깐순이 잡아먹으면 맛있겠다"하며, 입맛다시자, 바로 다음날부터 가게 근처만 와도 무섭게 짖으며 물을려고 하고, 접근을 못하게 해서, 한 열흘동안 잘못했다고 빌어서 사면된적도 있다.

무엇보다 깐순이의 취미생활이 참 특별하고 재미있어서 곧잘 온 동네사람들의 화제가 되기도 하는 "쥐잡기"는 가히 경지에 다다렀다.

가게주위를 돌며, 큰 쥐를 잡아 아버지앞에 물어다 놓는 낙으로 사는데, 쥐를 발견하면, 잽싸게 뛰어 올라 쥐앞에 서서는 한참을 노려보다 정신없이 공중 회전돌기를 쥐가 어지러워 쓰러질때까지 계속해댄다.

이렇게 해서 기절한 쥐를 물고오는데, 행여 아버지가 자리에 없으면, 발견못할까봐 아버지가 앉는 의자 위에다 갖다 놓고는 오실때까지 바로 앞에서 감시한다.

제딴엔 칭찬받기 위해서 하는 짓인줄 아는 우리는 열심히 부추였고, 어느새 쥐란 쥐는 모두 자취를 감추자, 그만 흥미로운 놀이꺼리가 없어진 늙은 깐순이는 누가 우리집 커피자판기를 좀 두들기기만해도 '웬 껀수냐' 하며 눈에 쌍심지를 키고 달려들어 동네 웬만한 주정꾼은 안당한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게 또 참 재밌다. 자판기 바로 옆에 나란히 공중전화기가 있는데, 가게안에서 기계 두드리거나 꽝꽝 발로차는 소리가 들리면 번개같이 뛰쳐나왔다가도전화기면 그냥 모른척 슬그머니 들어온다.

또 가게에서는 커다란 육인용 쇼파중 가운데 아버지 바로 옆 쇼파자리가 자기자리라고 혼자 정했는지, 누가 그자리에만 앉으면, 짖어대는데 그래도 끄떡않고 내주지 않을 경우 이른바 힘겨루기로 돌입한다.

즉 앉은 사람 쇼파에 같이 올라가서는 엉덩이 뒤로 파고들면서 몸에 힘주며 그 사람을 쇼파 앞으로 밀어낸다. 이러니 천하의 누가있어 배겨낼까...이젠 그 자리가 깐순이 자리란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누구도 넘보는 사람이 없는 성역이 된 귀한 자리다.

늙어서 북실했던 털도 빠지고 눈에 눈꼽이 안낄날이 없으며, 짖는 소리도 둔탁해 졌지만 아버지는 "인생을 같이 늙어가는 동지란다"하며 의지를 많이 하신다.

살아가면서 보살핌을 받기도 하고, 또 보살펴주기도 했던 동고동락의 동반자인 깐순이는 늘 주인을 옆에서 지켜주고자 애쓰는 한결같은 충직성으로 우리를 감동시켜 왔다.

그러나 우리가족의 영원한 파수꾼이자 동반자인줄 알았던 13년동안 기른, 늙은 개 깐순이는 지난해 겨울 끝내 생을 달리했다.

아버지가 가게에 손놓으시면서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고- 집에선 아래, 위층에 심각한 환자가 있어 개를 기를수가 없기 때문이다-새 주인에게 각별히 부탁하고, 아침, 저녁으로 가게에 들러 잠깐씩 살펴보기만 했는데 그때부터 생기를 잃고 시름 시름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사람이 자기의 새주인이 된 것으로 오해한 깐순이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식음까지 전폐하며 지내다가 조,석으로 들리는 아버지 볼때만 움직임이 있더니 점차 기력을 쇠하다가 한달여쯤 지나 이내 죽어버린 것이다.

주인에 대한 상심과 그리움이 너무 커서 삶의 기력을 빠르게 소진시켰던건 아닌지, 그 무심함에 애를 태우다 끈을 놓아버린 것 같아 가족들 모두가 얼마나 자책했었는지...

아버진 저놈이 그러다가 곧 적응하겠지 하며 크게 대수롭지않게 여기시다가 정작 죽어버리자 한동안은 크게 상심하셨다.

그렇게 그 늙은개의 흔적은 아마도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슬픔으로, 더불어 정겨운 추억으로 늘 머물러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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