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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 사례

왕생을 내보(來報)한실예 (實例)

작성자향련|작성시간10.11.06|조회수970 목록 댓글 8

왕생을 내보(來報)한 실예(實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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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진나라 때에 궐공측거사가 여산(廲山)백련사(白蓮社)에서 염불의 정업(淨業)을 닦다가 극락에 왕생한 후에 그의 친구가 낙양의 백마사(白馬寺)에서 궐거사의 기제사를 지내는데 수목(樹木)과 전우(殿宇)가 문득 금색이 되고 공중에서 소리하여 말하되 [나는 궐공측이다 극락에 나기를 원하여 이미 왕생하였노라]하고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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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나라 때에 가구가 명주에 있으면서 항상 법화경(法華經)을 외우며 정토에 나기를 원하므로 사람들이 구법화(久法華)라 부르더니 1093년에 나이 八十으로 앉은 채로 왕생 하였다가 三일만에 다시 살아나서 [내가 극락에 가서 모든 뛰어난 아름다운 현상을 보니 불경에 말씀하신 내용과 같았고 이 세상에서 정업을 닦는 이는 그 곳의 연화대(蓮華臺)위에 이름이 표기(標記)되었는데 금대(金臺)에 표기된 이는 성도(成都)에 있는 광교원(廣敎院)의 훈공(勳公), 명주(明州)의 손십이랑(孫十二郞), 가구(可久)요. 은대에 표기된 이는 명주 (明州)의 서도고(徐道姑)]라 하고 말을 마치고 다시 화거(化去)하였다. 五년후에 서도고는 운명할때에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고 十二년후에 손십이랑은 운명할 때에 천악(天樂)이 울리어서 가구의 말이 모두 증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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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나라 때에 위세자(魏世子)가 자녀를 데리고 염불하였으나 그 모는 염불하지 아니하였는데 그 딸이 十四세에 병사하였다가 七일만에 다시 살아나서 그 모에게 말하기를 [내가 극락에 가서보니 아버지와 오빠들은 이미 연화가 있어서 죽은 뒤에는 마땅히 왕생할 터인데 어머니의 연화는 없어서 마음에 대단히 섭섭하므로 내가 다시 와서 알려 주니 염불하세요.]하고 눈을 감았다. 그 모는 이 말을 듣고 감동하여 곧 신심(信心)을 발하여 부지런히 염불하다가 죽은 뒤에 극락에 왕생하였다,

 

 


 극락에 왕생하였다가 다시 와서 중생을 제도(濟度)한 실예(實例)


 

각명묘행보살(覺明妙行普薩)은 중국 진(晉)나라 때의 사람으로 빈한한 집에 태어났는데 그 빈고(貧苦)로 인하여 발원하기를 [내가 전부터 지은 행업(行業)으로 이 빈궁고(貧窮苦)를 받는 것인데 내가 만약 아미타불을 뵈옵고 극락국에 나서 일체 공덕을 성취하지 못하면 설사 몸을 잃어버리더라도 마침내 퇴식(退息)하지 않겠다]하고 七일 七야를 일심(一心)으로 염불하다가 마침내 아미타불의 상호(相好)광명을 보니 부처님이 각명묘행(覺明妙行)이란 칭호를 주시며 친히 수기(授記)하심을 받고 그 후 75세에 앉은 채로 해탈(解脫)하여 극락에 왕생하였다가 다시 이 세계에 와서 비구 거사 왕 신(臣) 여인 걸인 등이 되기도 하며 혹은 현신(顯身)혹은 은신(隱身)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濟度)하였다.

 

 


극락삼성(極樂三聖)이 극락 왕생을 예보(豫報)



연종(蓮宗)의 초조(初祖)혜원대사(慧遠大師)가 여산(廬山)동림사(東林寺)에서 못에 백련(白蓮)을 심고 123인으로 더불어 백련사(白蓮社)를 설치하고 三十년 동안 염불의 정업(淨業)을 닦았다. 처음 十一년중에 극락삼성(極樂三聖)을 세 번 뵈었으나 대사는 발설하지 아니하더니 三十년 되던 七월 그믐날 저녁에 아미타불 신(身)이 허공에 가득하고 원광(圓光)중에 여러 화불(化佛)이 계시며 관음 세지 두 보살이 좌우에 모시고 서 계셨는데 아미타불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본원력(本願力)으로 와서 너를 위안(慰安)하노니 七일후에는 네가 내 나라에 왕생하리라]하셨는데 대사는 八월 초엿새에 대중을 모아 훈계(訓戒)하고 단정하게 앉아 화거(化去)하니 나이 八十三세이다.


극락삼성(極樂三聖)이 대중(大衆)을 내영(來迎)



  신라 경덕왕(景德王)17년 (서기 758년)무술(戊戌)년에 고성현(固城懸)원각사(圓覺寺 고려 때 에는 烈山縣 西鳳寺로, 현대에는 固城郡 乾鳳寺로 개명 하였다. 에서 발징화상(發徵和尙)이 승려 정신(貞信) 양순(良順)등 31인과 더불어 염불만일회(念佛萬一會)를 설치하고 염불하였는데 신도 1820인이 스스로 발심(發心)하여 그중 120인은 의복을 공급하고 1700인은 식량을 공급하더니

 

원성왕(元聖王)3년 (서기787년)정묘(丁卯)년에 도량(道場)문밖에 큰물이 나서 넘치며 아미타불이 관음 세지 두보살과 더불어 자금연대(紫金連臺)를 타시고 문 앞에 이르러 금색 팔을 펴시어서 염불대중을 접인(接引)하시니 대중이 크게 기뻐 뛰면서 좋아하였고 부처님은 대중을 거느리시고 반야선(般若船)에 올라 극락으로 다시 돌아 가셨는데, 

 

 이때에 도량승려 31인은 육신으로 하늘로 올라가  상품상생(上品上生)왕생하고 의복과 식량을 공급하던 염불신도 1820인 중 913인은 일시에 단정히 앉아서 화(化)하여 상품상생에 왕생하고 다른 18인은 상품중생(上品中生)에, 31인은 하품하생(上品下生)에 각기 왕생하였다.

 

 [蓮宗集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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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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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普泉 | 작성시간 11.03.04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굽신굽신굽신
  • 작성자모든님들 염불수행 하여 해탈 합시다 | 작성시간 11.05.13 관세음보살()()()
  • 작성자영상희상 | 작성시간 12.05.10 감사함니다
  • 작성자수미산. | 작성시간 13.11.26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金武璡 居士 | 작성시간 16.04.06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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