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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 사례

연지대사

작성자진여문|작성시간03.02.18|조회수736 목록 댓글 2

스님의 이름은 주굉, 자는 불혜, 호는 연지이시다.
속성은 심 씨로서, 1535년 고항의 인화에서 대대로 유업을
익혀 온 청렴한 가문의 후예로 태어났다.

17세에 제자원이 되어 무리 중에 혜업이 제일이었으나
과거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뜻이 출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물 일곱 나는 해에 아버지의 상을, 서른 한 살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슬피 울며 ‘어버이의 은혜는 망극하시다. 내가 이 은혜를
갚을 길은 바로 이것이다’하고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1565년 섣달 그믐날, 부인 탕씨와 찻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은애란 허망한 것이요, 생사는 대신해 줄 이가 없소.
나는 떠나려오. 그대는 스스로 갈 길을 정하오.”
탕씨는 놀라지 않았다.
“군께서 먼저 떠나소서. 첩은 천천히 가리이다.”

그 뒤 탕씨는 출가하여 이름을 주금이라 하고, 효의암에 살았다.
조행이 청정하고 도덕이 고상하여 보살비구니라고 일컬었다.
스님보다 1년 먼저 돌아갔다. 이는 후일의 일이다.

그리하여 스님은 서산의 무문성 화상에게 출가하고,
소경사 무진옥 육사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서른 두 살 때였다.
얼마 후, 단표척장으로 제방에 유행하며 선지식을 참견하여,
북으로 오대산에서 문수의 방광을 만났고, 복우산에서는 대중을
따라 연마하기도 하였다.

서울에 가서 변융·소암 두 분의 대노를 뵙고 마음을 열었으며,
동창이란 곳을 지나가다 홀연히 깨닫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이십 년 전 일이 의심스럽다 하여
삼천리 밖에선들 무슨 기특한 일 만나랴.
선·악이 모두 꿈인걸 마와 부처가 부질없이 시비하네

행각 중에도 모친의 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여 걸망 속에
위패를 항상 모시고 다니면서, 공양 때는 반드시 먼저 바치고 먹었다.
효성이 이와 같았다.와관사에서는 병이 들어 거의 죽었다가 다비에
부치려 하자 미소하며 “내 숨이 아직 남았네”
하고 일어났던 일도 있었다.

마흔 네 살 되던 해, 범촌에서 걸식하다 운서의 산수가 유적한 것을
보고 이곳에서 머물기로 결심한다.

암굴에서 홀로 지내면서 이레 동안 양식이 떨어진 적이 있었으나
벽에 기댄 채 단정히 앉아 있었고, 우글거리는 뱀을 내쫓아 인근
40 여리 백성의 호환을 면하게 한 적도 있었으며,
염불로 가뭄에 단비를 내리게도 하였다.

그리하여 근촌 백성들의 귀의에 힘입어 운서사가 이루어지고,
이로부터 도행이 크게 떨쳐 천하의 납승이 귀심하여 마침내
총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스님의 도행을 직접 피부로 느껴보기
위해서는 「운서공주규약」을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리라고 생각된다.

필요에 따라 일람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만력 43년에 돌아가셨다. 세수는 81세였다. 청나라 옹정 때
세종이 정묘진수라 시호하였다.변융진원의 법을 이었고,
정토종의 제 8대 조사로 꼽기도 한다.

스님의 저서 30여 종은 청나라 때 「어선어록」에 편입되어
돌아가신 후에 성광이 더욱 빛나 현재에도 「운서법휘」에
남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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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대사 권염불문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무릇 불도를 배우는 이는, 아무리 장엄한 모습과 자취를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오직 진실한 수행〔眞實修行〕을 귀하게 여길 따름입니다.

집에 있는 거사〔在家居士〕는, 반드시 잿빛 법복이나 도포를 입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머리를 기른 속세의 사람은, 평상복 차림으로
염불하면 되고, 꼭 목탁이나 북을 쳐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혼자 차분하게 조용히 염불하면 되고,
반드시 대중과 함께 모여 법회를 이루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번잡한 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홀로 집안에서 문을 닫고 염불해도 됩니다.

꼭 절에 나가 경전 강의나 설법을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글자를
아는 사람은 스스로 경전의 가르침에 따라 염불하면 됩니다. 천리 먼
길 찾아가 향을 사르는 일도, 편안히 집안에 앉아 염불하는 것만
못합니다. 삿된 스승〔邪師〕을 섬기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면서
홀로 염불하는 것만 못합니다.

악마같은 친구(魔友)를 널리 사귀는 것은, 홀로 청정하게 염불하는
것만 못합니다. 내생(來生)을 믿고 기대하는 것은, 현세에 복덕을
지으며 염불하는 것만 못합니다.

발원을 하며 재앙 해소를 기도하는 것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태어나며 염불하는 것만 못합니다. 쓸데없는 잡다한 글이나
기예를 배우는 것은, 한 글자도 모르는 까막눈으로 지성스럽게
염불하는 것만 못합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참선의 이치〔禪理〕를 함부로 지껄이는
것은, 착실하게 계율을 지키며 염불하는 것만 못합니다. 요정과
귀신의 영험스런 신통을 바라는 것은, 인과응보의 법칙을 올바로
믿으며 염불하는 것만 못합니다.

요컨대, 마음을 단정히 갖고 죄악을 소멸시켜〔端心滅惡〕 염불하는
이를 착한 사람〔善人〕이라 일컫고, 마음을 추스려 산만을 제거하고
(攝心除散) 염불하는 이를 어진 사람〔賢人〕이라 부르며, 마음을
깨달아 미혹을 끊고〔悟心斷惑〕 염불하는 이를 거룩한 사람(聖人)
이라 이릅니다.

지극히 한가한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하노니, 자녀들 시집 장가 모두
마쳐 집안 평안히 다져 놓고 한가하게 별 일 없으니, 정말 마음과
힘을 다해 염불하기 좋지 않습니까? 매일 몇 천 번부터 몇 만 번까지,
지성으로 염불하십시오.

반쯤 바쁘고 반쯤 한가한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하노니, 반쯤 끝낸 듯
완전히 끝나지는 않아, 비록 아주 한가한 것은 아니지만, 바쁠 때는
바쁜 대로 일 보고, 한가한 틈을 타서 염불해도 좋습니다. 매일 몇 백
번부터 몇 천 번까지, 형편 닿는 대로 염불하십시오.

지극히 바쁜 사람들에게도 염불을 권하노니, 국사(國事)나 공무(公務)
에 부지런히 종사하고 집안 일까지 분주히 돌보느라, 비록 한가할
겨를이 없겠지만, 바쁜 가운데도 한가한 틈을 엿보아, 염불을 꾸준히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매일 이른 아침 단 열 번의 염불이나, 또는
일과 중에 몇 백 번의 염불이라도 끊이지 말고 계속하십시오.


우리 모두 극락정토에 왕생합시다
『아미타경(阿彌陀經)』에는 “만약 사람이 염불하면 수명이 다할
때에 반드시 그 나라(극락정토)에 나게 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또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염불하는 사람이 그 나라(극락
정토)에 나게 되는 연화(蓮花)는 아홉 품계〔九品〕로 나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는 염불 법문이 남녀노소나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출가 승려와 속세 거사, 그리고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묻지
않고, 누구나 쉽게 수행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단지 한 마음 흐뜨러지지 않고(一心不亂) 염불을 계속하면, 수행
공덕의 크고 작음에 따라, 각자 아홉 품계의 연화에 나뉘어 왕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염불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부귀한 사람은 쓰고 지낼 재산이 넉넉히 갖추어져,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고, 가난한 사람은 집안이 단초롬하여
신경 쓸 일이 적으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또한 자식을 이미 둔 사람은 조상 제사와 가문을 맡길 수 있으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고, 자식이 없는 사람은 홀 몸으로 자유자재로우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으며, 자식이 효성스러운 사람은 편안히 봉양
받을 수 있으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고,

자식이 불효 막심하면 낳아 길러준 은애(恩愛)를 떨칠 수 있으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아무 질병도 없는 사람은 몸이 건강하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고, 몸에 질병이 많은 사람은 덧없음(無常:죽음)
이 절박할테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은 남은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고, 나이가 적은 젊은이는 정신이 맑고 기력이 넘치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한가롭게 여유있는 사람은 마음을 흐뜨릴 일이 없으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고, 바빠서 정신 없는 사람은 바쁜 가운데 틈을 내어
염불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출가 수행하는 사람은 세속 만물 밖에 소요유(逍遙遊)하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고, 집에 있는 거사는 세속 집안이 불타는 집〔火宅〕인 줄
알아 염불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총명한 사람은 정토 법문을 훤히 통달하여 염불하기에 정말 좋고,
어리석은 사람은 달리 특별한 재능이 없으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계율을 지니고 수행하는 사람은 계율이 곧 부처님의
법도이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고,

경전을 보며 수행하는 사람은 경전이 곧 부처님의 설법이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으며, 참선을 하며 수행하는 사람은 참선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고, 도를 이미 깨달은 사람은
깨달음이 곧 부처님의 증명이니 염불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두루 염불을 권하오니,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시급히 염불하여 아홉 품계의 연화에 왕생합시다. 연화가
피어 나면 부처님을 뵈올 수 있고, 부처님을 뵈오면 법문을 들을 수
있으며, 마침내는 궁극의 불도를 이루어 자기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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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위 스님의 저서인 "죽창수필"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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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롱치 | 작성시간 05.10.07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 작성자초행자 | 작성시간 08.04.23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위대한아미타불님의 미소의 광채는 삼천대천세계 곳곳에 없는 곳이없네.자비의 미소 대원력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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